*제일:여럿 가운데서 첫째가는 것(표준국어대사전 기준)
제일 친한 한 명을 떠올리는 것이 예전엔 쉽고 당연했다.
단짝, 절친, 소울메이트 등의 다들 한 명씩은 있는 그런 존재.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날, 초급 교재 속 예문에는 단어 '이름'을 활용한 질문이 여럿 있었고 우린 서로 묻고 답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키우는 반려견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
그리고 이어진 질문,
제일 친한 친구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내 대답은 '없어요'.
있었다, 한때는.
단짝이라 부를만한 유일한 사람이 있었고 특별한 존재였다. 다만 내가 속한 집단에 따라 딸, 직원, 친구 등으로 지위가 변하듯 그 존재 역시 여러 번 변했고 지금은 없을 뿐이다.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면 경험으로 쌓인 방어기제인 것 같다. 상처를 받고 주는 걸 반복한다. 덜 아프고 싶어서 벽을 쌓는다. 그리고...
난 통증에 이렇게나 취약한 사람이었나?
요즘은 다시 깨닫는 중이다. 깊은 관계를 맺기까지 생각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최근 몇 년간 내 주변 친구들은 비교적 잘 맞고 안정감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과의 관계도 시간을 두고 쌓은 것이고 여러 번 만나면서 더 깊어진 것이다. 친분 역시 일정 부분은 상대적인 것이라 새로운 사람을 적게 만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관계는 시작하는 건 쉽지만 유지하긴 어렵다. 환경이 바뀌면 주변을 이루던 인간 관계도 바뀌었다. 올해 친하게 지냈다고 그 관계가 내년도 똑같지는 않다. 애인을 포함해서 절친했던 관계를 하나씩 잃으면서 회의를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깨달았을 것이다. 결국 남는 건 나 혼자구나. 제일 친한 친구는, 언제나 그 역할을 수행하는 이는 나 자신이구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고민과 기쁨을 공유하는 친한 친구들은 많다. 비슷한 농도의 사람들, 내가 좋아하고 잘해주고 싶은 지인, 친구는 있지만 결핍을 느낀다. 그들에게 나도, 나도 그들에게도 그저 '나이스'하기만 한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 한정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충만하다고 그리고 충분하다고 느꼈던 마음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랫동안 공석이었나.
이제는 다시 채워 넣을 시기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