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스웨덴에 온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오늘 오랜만에 집 정리를 하다가 구석에서 비타민D를 발견했다. 겨울의 스웨덴은 해가 떠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하루에 한 두 알씩 꼭 비타민을 챙겨 먹곤 했는데 여름이 되니 비타민이 생각나지 않았다. 겨울은 하루가 너무 짧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해가 질 정도였으니 4달이 넘는 겨울 내내 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길고 혹독한 겨울에 대한 보상은 확실했다. 스웨덴의 봄, 가을, 석양은 다른 곳과 달리 길었다. 봄에는 꽃들이 종류별로 서서히 피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가을에는 단풍이 한 잎 한 잎 물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름인 지금은 해가 지지 않는다.
스웨덴에 오기 전 한국에서의 석양은 언제나 불과 몇 분만 누릴 수 있는 짧고 아련한 황혼의 시간이었다. 4호선 이촌 동작 구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 었는데, 지하 터널 속에서 나와 한강 다리를 건너는 그 순간 해가 지는 한강과 여의도가 보이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백야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해가 지는 건지 뜨는 건지 모르게 산 바다 너머 어딘가에 그냥 머물러있다. 스웨덴의 시간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어쩌면 이 곳이 트루먼쇼의 세상 끝 벽처럼 가짜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갑자기 늘어난 시간은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벼락부자가 된 느낌이지만 사실 하루는 24시간 그대로일 뿐이라 가끔은 시간을 펑펑 낭비하고 아쉬운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백야에도 밤은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스웨덴이 내가 지금 경험하는 스웨덴과 조금 달랐듯 백야 역시도 내가 기대했던 그대로의 밝고 하얗기만 한 밤은 아니었다. 푸르고 모호한 스웨덴의 여름밤은 낯설고 어색하지만 여전히 신비롭고 아름다운 순간인 것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