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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사순 Jun 03. 2023

송별스파게티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

1년을 근무하던 선임자가 마지막으로 출근하던 날,

겨우 시간 맞춰 점심메뉴를 완성해 보았다.

혼자 여러 가지를 하더라도

간단하다고 해도 한 시간은 족히 잡아야 하는.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차린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맘이다.


2-3인분도 아니고 7인분을 넉넉하게 만드는 게 처음이라

결국 면은 조금 불었고,

우리 팀 두 명은 작업을 하다가 좀 더 늦는 바람에

부랴부랴 대형 전기밥솥에 만들어낸

이름도 거창한

“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점심일 거야~“

    - 한우로제 송별스파게티-

솥단지 안의 작품을 찍어 남기기도 전에

더 불기 전에 어서 먹여야 했다.

훈련소 느낌? 잘팔림

말은 선임자이지만, 나이도 4살이 어리고 이쪽 계통은 처음이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퇴사하는 덕분에 내가 3명의 업무를 당분간 해야 하지만

그전의 경력들에 비하면 뭐...

지금 일은 양반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이유 없는 생트집이나,

낙인효과로 인한 ‘네가 잘못했겠지’ 하는 말투,

가끔 뭔가 자기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애쓰는 언행들

나를 위해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자기가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한 구실들..


참.. 유치한 곳에

나만 남겨두고 가는 사람이 밉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후임자로서 동료로서 괜찮은 거 아니냐고 했을 때 매우 그러하다는 답변.


가는데 마다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

특별히 잘못한 게 없어도

왜 그리 못되게들 구는지.

이제는 내가 가고 싶은 회사 하고 싶은 일이

아니고

정상적인 관계형성이 가능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

아휴, 차라리 사람보다

개랑 고양이랑 일하고 싶어.

여사님네 깜복이

는 내 바람이고.


그만둔 김 선생은

고생하지 말고 힘들지 말고 돈걱정 안 하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길 바래.

나도 곧 그렇게 될 거니까.

막둥이님 재워드리는중

영혼 털리는 한 주를 보내고

누웠다가 앉았다가 혼자 놀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다가 도어록을 누른다.

미쳤나....?


목청 큰 아이랑 오줌싸개 녀석을 케이지에 들여보내고

현관문밖을 나가보니


전에 살던 사람이라며

두고 간 걸 찾으러 집안에 들어와 보겠다고 한다.

더러운 폐기물과 곰팡이에 쩌든 집에

얼마나 치를 떨고 살기 시작했는데..


상식 없이 도어록을 두들겨서

강아지들 짖게 만들지를 않나

이사한 지 1년은 된 것 같은데 폐기물을 놓고 간 건 언제고

이제 와서 집에 들어와서 찾아보겠다고

애까지 데리고 와서..

자긴 도어록을 삑삑 누른 적이 없다고

애가 그랬겠지...라는 말에

비상식 몰상식적인 상황에 참...

그와 더불어 옆집 할머니도 나와서

개만 사는 집이냐 시끄럽고 문 앞에 박스는 왜 안 치우냐..

자기는 잠 못 자면 신경질 난다며...


애들이 24시간 짖지도 않고

어쩌다 소리가 나면 짖을 수 밖엔 없는데

참 죄송하다고 하면서도

어쭙잖은 텃새에

나도 정말 떠나고 싶은 이번주다.

흙탕물을 정화하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고 사는 건지

나한테만 이런 상황들이 오는지

잘 모르겠다.


이런 울화에 찬 이야기를 안 하고 싶었는데

아주아주 활화산 같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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