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이랬다
50대 중반 아줌마가 난 데 없이 밤하늘의 별을 보겠다고 하면 뭐라고들 할까. 그냥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아니고 망원경을 마련해서 밤하늘을 보겠다고 작심을 했으니 말이다. 내 안에 밤하늘에 대한 관심의 씨앗 한 톨이 무려 오십 년을 넘게 잠을 자다가 깨어 굴러다닌 걸까. 애써 변명해 보지만 발현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주위엔 아무리 꼬셔도 별 보는 일에 손톱 밑의 때만큼도 관심 없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 나이에 별을 보고 싶다니까 밥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냐, 사춘기 소녀도 아닌데 별을 따고 싶냐며 빈정거림도 많이 당했다. 하지만 인간은 밥벌이와 상관없는 '놀이'를 하는 존재고 나는 생존보다 놀이에 관심이 많은 종자다. 그런 연유로 나는 남들은 하던 일도 그만두는 나이에 새로 발견한 놀이에 발을 담그게 되었고 이내 푹 빠져버렸으며 지금도 여전히 밤하늘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문과 출신인 내가 어쩌다가 교양 물리학 책 몇 권을 읽고 내 본성이 그쪽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 건 비극이자 희극이다. 이런 인생의 실수가 있나. 하지만 성향과 지능은 별개이니 어느 쪽을 선택했든 별 볼일 없는 인생인 건 매한가지다. 제목에 '코스모스'가 들어간 책을 연이어 읽던 중 점점 커지는 우주에 대한 관심은 급기야 수학 강의를 들으러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책마다 등장하는 간단한 수식도 이해를 못하니 갑갑함이 극에 달한 것이다. 다행히 이 강의가 천문학 기본을 이해하기 위한 수준이라 기본이 없었음에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고 두어 달 과정을 마치고 나니 과학책을 읽으면서 이해의 폭이 좀 넓어진 것 같다. 뭔가 조금이라도 이해해 가면서 읽는 것과 아예 몰라 건너뛰고 읽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무식한 아줌마의 물리학 도전기는 이렇듯 솔솔 냄새를 풍기다 어느 틈에 밤하늘에 대한 관심으로 담장을 넘어가버렸고 그즈음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충동적으로 구입한 80mm 작은 망원경은 이러한 관심을 급발진시켜버렸다. 그러니까 그 작은 망원경으로 처음 보름달을 봤던 바로 그 순간, 이후 전개되는 모든 일은 운명이 되고 말았다.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보름달은 눈이 부셨다. 달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오렌지처럼 보였다. 반짝이는 달의 표면 무늬가 디테일하게 보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참 후에야 이름을 알게 된 티코 분화구는 오렌지의 꼭지처럼 보였고 여기에서 뻗어나간 광선들은 신비하다 못해 기이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마치 달을 처음 본 사람처럼 넋이 빠진 채 바라보았고 한참을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뒤이어 목성을 찾아보았다. 목성은 한 점으로 보이는 일반 별과는 다르게 아주 약간의 면적이 있는 점처럼 보였고 주위엔 4개의 위성이 줄지어 있었다.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이 날 이후 나는 좀 더 커다란 망원경을 마련해 목성의 줄무늬도 보고 토성의 고리도 보고 안드로메다 은하도 보고 싶다는 욕망을 꾸역꾸역 가슴이 터지도록 품어버렸다. 이때부터 천체 관측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관련 자료를 검색하는 일에만 장장 6개월의 시간을 바치게 되었는데 그 기간은 이 분야의 기본 지식이 전혀 없는 내가 어떤 망원경을 구입해야 하는지 하늘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관측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아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기도 했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 되면 하늘을 자주 쳐다본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선사하는 붉은빛 황홀함. 이윽고 어두워지면 하늘엔 별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낮동안 태양 빛에 가렸던 존재들이 자기를 드러내는 시간이다. 밤하늘에 관심을 가진 이후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게 있는데 그건 바로 밤하늘이 기본 모드이고 낮 동안의 푸른 하늘은 태양 빛으로 인해 밤하늘이 잠시 가리어진 상태라는 사실이다. 지구와 가깝게 있는 너무나 밝은 별 태양은 디폴트 값인 어두운 하늘을 볼 수 없도록 우리의 눈을 빛으로 가리고 있다. 이런 생각의 전환은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주었는데 가령 우리에게 있어 삶이 디폴트 값이 아니라 죽음이나 무(無)와 같은 것이 기본이고 삶이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밝은 낮과 삶이 디폴트 값으로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어느 순간 암흑의 밤하늘과 먼지로 돌아간 우리가 기본 모드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찰나를 사는 삶의 특별함 그리고 낮의 특별함에 대해 신기해하는 머릿속을 가지게 된 거다. 태양빛이 강렬한 하늘은 그 빛이 모든 걸 감쪽같이 숨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밤이 되면 진짜가 나타난다. 밤하늘은 실재하는 진짜 세계다.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들이 감성적 대상이 아닌 물리적 실체로 인지되는 경험을 나는 별 보기라는 극한의 취미를 통해 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