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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별자리 탐색

아! 오리온!

by 김은석

안 그래도 노안으로 나빠진 눈이 온종일 컴퓨터를 쳐다보며 검색하는 일로 더 나빠졌다. 망원경과 하늘의 천체들 그리고 관측 요령에 관한 검색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선배들의 조언대로 우선 작은 쌍안경 하나를 마련해 밤하늘의 별자리를 탐색하며 한 해 겨울을 보냈다. 8x42 쌍안경, 8 배율에 42mm 구경의 작은 쌍안경이다. 도심의 하늘엔 별이 얼마 없는 것 같아도 쌍안경을 눈에 대면 제법 많은 별들이 눈에 들어오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오리온자리, 마차부자리, 황소자리, 카시오페이아, 큰곰자리 등 겨울철 별자리부터 익혀갔다. 겨울 밤하늘에 위풍당당하게 펼쳐진 오리온자리의 오리온성운은 맑은 날 내 작은 쌍안경으로도 어렴풋한 성운기가 느껴졌다.


오프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어 아마추어 천체관측가들과 만날 수 있었고 그 인연 덕에 다른 사람들의 망원경으로 몇몇 천체를 얻어보는 기회가 있었는데 오리온 대성운을 눈에 담은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백과사전에서나 보았던 천체들이 내 눈에도 실제로 보일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목성 토성도 아니고 오리온성운이라니 그런 건 허블 망원경이나 천문대의 망원경으로만 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두 눈으로 처음 만난 오리온성운은 내 머릿속에 지진을 일으켰으며 마치 솜사탕을 가늘고 부드럽게 찢어놓은 듯한 성운의 모습은 경악에 가까운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오리온을 처음 만난 날 나는 마치 뒤를 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굳어버린 채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마도 겨울이 아니라 봄철이나 여름철에 이 취미에 진입했더라면, 그래서 오리온성운을 보지 않고 시작했더라면, 이런 강렬한 감정을 품지 못한 채 관측을 시작했더라면 이 험난한 취미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을까.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대상 중 가장 막강한 위용을 뿜어내는 오리온성운을 본 순간 밤하늘을 향한 내 욕망은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부풀었고 제대로 된 커다란 망원경으로 오리온을 꼭 다시 보고야 말겠다는 결기마저 품게 되었다. 마음을 온통 오리온성운에 뺏긴 그 해 겨울, 나는 별 보기라는 험난한 취미의 늪으로 발이 점점 잠기어갔다.


오늘 쳐다보는 밤하늘은 어제 본 밤하늘과 달랐다. 별자리들이 날마다 조금씩 위치를 바꿔 움직이는 통에 오랜만에 하늘을 보면 낯선 별 배치로 이전에 기억했던 별자리들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별들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지지만 북극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움직이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별자리들이 뒤집혀 있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반쯤만 돌아서있기도 하니 나 같은 생초보의 눈엔 날마다 다른 하늘이 펼쳐져 있는 것 같다. 전자 성도인 "스카이사파리'라는 신기한 천체 앱을 휴대폰에 깔고 밤만 되면 옥상에 올라가 실시간의 하늘 모습과 대조해 가며 별자리를 익혔다. 별자리 모양과 별자리를 구성하는 별들의 이름을 외우는 일도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이 수직낙하하는 내 머리로는 힘겨운 일이어서 어제 외운 걸 오늘 까먹는 일은 다반사였다. 휴대폰 화면에 보이는 모습과 하늘의 별자리들을 반복해 대조하면서 모습을 익혔고 변화하는 하늘에 익숙해지도록 밤이면 시도 때도 없이 하늘을 쳐다보며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시절 옥상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했던지...


별자리 탐색을 하는 시간엔 동쪽에서 올라와 서쪽으로 움직이는 별들로 인해 지구의 자전을 느낄 수 있다. 겨울이 지나가고 밤하늘이 봄철 별자리들로 새롭게 바뀌는 걸 보며 지구의 공전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전엔 그냥 해가 뜨고 해가 지고를 무심하게 보아 넘겼지만 본격적으로 밤하늘에 관심을 가지자 가장 먼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실감 나게 느껴졌다. 땅에 납작하게 붙어 사느라 몰랐던 많은 것들을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알게 되었다. 어떤 게 행성이고 어떤 게 별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별을 나침반 삼아 항해하던 옛사람들의 방향 감각 또한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늘에도 동서남북이 있었고 별들은 변함없이 규칙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지구가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밤하늘을 쳐다보는 동안 내 시선은 무한대를 향한다. 끝도 없이 광막한 곳에 내 눈길이 가닿는 동시에 가늠할 수도 없이 멀리 있는 별들이 내 눈에 와닿는다. 밤하늘을 쳐다보는 일은 지구가 한없이 작아지고 나는 먼지가 되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는 일이다. 저 많은 별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질문조차 무의미했고 우리는 이 넓디 넓은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아주 짧은 찰나를 살아가는 존재라는 느낌만 선명해졌다.


오래전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이천 년도 즈음에 강원도 북한강변에 살았었는데 마당 평상에 앉아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시야에 들어오는 별들의 갯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마치 흩뿌려진 모래알처럼 보였다. 지금보다 훨씬 밤하늘도 어두웠고 별들도 잘 보였던 시절 목이 꺾어져라 하늘을 쳐다보며 셀 수없이 많은 별들에 시선을 준 밤, 하늘엔 왜 그렇게 많은 별들이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밤하늘은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이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세상에 자료들이 지금처럼 넘쳐나진 않았고 검색을 통해 할 수 있는 일도 지금보다 제한적이어서 망원경으로 하늘을 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고 그런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 시절 밤하늘에 제대로 빠지지 못한 아쉬움이 늘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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