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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쌍안 망원경

드디어 내 장비가 생겼다.

by 김은석

무언가에 마음을 뺏기면 그다음은 갈증의 시간이다. 밤하늘에 관심을 가진 후 천문대를 방문해 1m 망원경으로 본 밤하늘은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산개성단, 구상성단, 은하 같은 심우주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몸에선 각종 흥분 호르몬들이 쏟아졌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느낌들. 암흑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도 아름다웠으나 나는 반짝이는 것들 뒤의 어둠에 눈길이 갔다. 깊고 깊은 심연의 공간. 나는 앞으로 이 어둠의 공간에 흩뿌려진 별들을, 은하들을 보려고 한다.


대체로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이 살았다. 넉넉한 형편도 아니라 저절로 미니멀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무언가 물건이 집안에 쌓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어서 선뜻 뭘 사는 성격이 아닌데 별 보기와 관련된 물품은 두 번 고민도 안 하고 주문을 했다. 사실 이제까지 그 흔한 목걸이 반지 같은 귀금속이나 보석류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집집마다 몇 개씩 있다는 명품 가방엔 눈길도 준 적이 없었는데 망원경은 이상하리만큼 갖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아니 밤하늘의 별을 내 망원경으로 꼭 봐야 했다. 나이 든 아줌마의 수상한 집념은 조용하고 헐렁한 집에 한동안 택배가 쉬지 않고 날라들게 했다. 이렇게 장비를 준비하는 사이 관측지에 나가 다른 사람의 망원경으로 이것저것 얻어보면서 갈증을 달랬으며 한겨울날 차에다 담요와 보온병을 싣고 화천의 산꼭대기 천문대 주차장에서 밤을 새우며 맨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다 새벽녘 돌아오곤 했다. 그때만 해도 무슨 정신과 무슨 힘에 그랬나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본격적인 관측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그 정도는 껌 씹으면서 하는 연습 게임 정도였다. 정말이지 이 취미의 험난함이란...


문과 출신 기계치, 장비치가 천체관측과 관련된 외계어 같은 글들을 해독해 내 장비를 마련하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다른 분야보다 더욱 선배들의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한 분야가 이곳이다. 다행스럽게도 오프에서 만난 선배들을 통해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처음 별을 본 지 일 년이 넘어서야 내 망원경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실 엉겁결에 샀던 80mm 망원경(테이블 돕)은 한계가 너무 명확해 내 욕망을 채우려면 그것보다는 훨씬 커야 했다. 관련된 지식을 쌓아가는 중에 내가 원하는 걸 보려면 어느 정도의 장비가 필요한지, 초보의 첫 장비로는 어떤 게 적당한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천체 관측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천체 사진을 찍는다. 망원경으로 들여다본다고 허블 우주 망원경이 찍은 멋진 사진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별은 망원경으로도 여전히 한 점 별로 보인다. 제법 큰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봐도 몇몇 커다란 성운이나 성단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상이 사진과는 달리 작고 흐릿하게 보인다. 보이는 건지 안 보이는 건지 모르는 은하들이 허다하다. 이런 참을 수 없는 간극 때문에 사람들은 사진을 택하는지도 모르겠다. 천체 사진을 찍는 사람의 장비와 사진을 찍지 않고 밤하늘을 보기만 하는 사람의 장비 구성은 다르다. 간단히 말하자면 천체 사진을 찍는 부류는 '사진파' 망원경으로 하늘을 보기만 하는 부류는 '안시파'로 나뉜다. 망원경이 한두 푼도 아니고 제법 가격이 나가다 보니 둘 다 구입하기도 힘들고 둘 다 만족하게 할 수도 없어서(프로들도 둘 다 하기는 어렵다) 그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는데 장비를 검색하는 중에 내 취향은 사진과는 어떤 접점도 없음을 알았다. 그저 맨 눈으로 하늘을 보고 날 것의 밤하늘에 있는 물리적 실체를 직접 보는 것, 중간에 어떤 디지털한 개입도 없이 아날로그한 방식으로 천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사진도 아니고 영상도 아니고 그냥 렌즈를 통해 저 먼 우주에서 달려온 빛다발을 내 눈에 담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철저하게 순도 높은 '안시파'였다.


내 취향을 파악하고 장고 끝에 마련한 망원경(이걸 첫 망원경이라고 하고 싶다)은 100mm 배율 변환식 쌍안 망원경이었다. 일반 망원경보다 쌍안 망원경이 하늘을 볼 때 입체감이 훨씬 좋은 데다 양 눈으로 볼 수 있어 눈이 편안한 이점이 있다. 게다가 쌍안경이지만 배율변환식이라 배율을 바꿔가며 관측이 가능하다. 아이피스(접안렌즈)를 바꿔 장착하면 저배율과 고배율 사이에서 선택적으로 배율을 바꿀 수 있다. 지금 생각해도 초보의 장비로 꽤 좋은 선택을 했던 것 같다. 100mm 구경에 초점거리가 500이 넘으니 길이가 500mm가 넘는 쌍안경이라 생각보다 부피도 크고 무겁다. 이동을 위해 커다란 특대 사이즈 캠핑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녔다. 장비의 안전을 위해 가방 안에 스펀지로 완충을 제대로 해야 했다.


망원경을 마련했다고 끝이 아니다. 쌍안망원경을 올려놓을 아주 튼튼한 삼각대가 필요하고 삼각대와 망원경을 연결할 부드러우면서도 제어가 잘 되는 경위대가 필요하다. 그뿐 아니라 각 배율에 맞게 구성된 아이피스가 필요하다. 저배율에서 중배율, 고배율까지 다양한 아이피스가 있어야 대상을 적당한 크기로 볼 수 있다. 게다가 한 밤에 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소소한 장비들이 많이 필요한데 심지어 편안한 관측을 위해 높낮이가 조절되는 관측 전문 의자까지 구입해야 했고 겨울밤을 노지에서 보내야 하니 방한복과 방한화도 구입해야 했다. 텀블러 하나 없이 살다가 보온병을 서너 개 마련했다. 추위에 뜨거운 물은 있어야겠고 밤새 추위에 떨다 보면 열량도 필요했으니 말이다. 별도 보기 전, 좁은 집 한 구석엔 나날이 관측 관련 장비가 쌓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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