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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별 보기 입문

호핑의 즐거움

by 김은석

입문자들이 거의 그러하듯 망원경을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장비를 세팅하고 홀로 관측지를 나가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 과정에서 주위 분들의 많은 도움을 얻었다. 내 수준에 독학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저질 체력에 운용할 수 있는 무게의 한계와 금전적 한계를 고려해야 했다. 이렇게 간신히 장비를 마련해 관측지로 나가기를 수차례 거듭하는 동안 몇 가지 깨달은 게 있는데 첫째는 나갈 수 있는 한 자주 나가야 한다는 것. 둘째는 가능한 한 좋은 하늘로 나가야 한다는 것. 셋째는 관측 준비를 제대로 할 것. 안시 초보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밤하늘과 친해지는 것이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과 성단, 성운들의 위치를 알고 망원경으로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여러 가지 한계 상황을 고려해 마련한 망원경으로는 그간 다른 분들의 대형 망원경으로 눈동냥해서 본 드라마틱한 모습을 기대하지 않아야 마땅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별들은 모두 우리 은하 내의 별들이다. 북반구에서 안드로메다 은하가 별 비슷하게 맨 눈으로 보일 때가 있는데 이런 외부 은하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 은하 안에 있다. 별들이 모여있는 성단이나 성간 먼지로 구성된 성운, 외부 은하는 아주 유명하고 큰 대상 몇 개를 제외하면 맨 눈으로 거의 안 보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망원경으로 보려 하는 것이다. 요즘은 망원경에 고투(goto) 기능이 있는 망원경이 많다. 고투 기능이란 찾고자 하는 대상을 입력하면 알아서 망원경이 찾아주는 기능이다. 망원경이 상하좌우로 회전하며 하늘에 있는 적경 적위축을 따라 거의 정확히 목표물 근처까지 찾아간다. 우리는 그냥 아이피스에 눈을 갖다 대면 대상을 볼 수 있다. 더없이 편리한 기능이지만 대상을 찾는 맛을 느낄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낚시에서 손맛을 빼고 그저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느낌이랄까. 진정한 안시관측자는 대상을 향해 별을 징검다리 삼아 한 걸음씩 찾아나간다. 파인더와 아이피스에 보이는 별의 배치를 확인하면서 천체를 찾아가는 과정을 '호핑'이라 하는데 호핑은 맨 눈으로도 잘 보이는 별을 기준 삼아 저배율의 파인더 안에 도입한 다음 파인더에 보이는 별들과 성도에 보이는 별들의 모양을 맞추어가며 찾고자 하는 대상이 있는 방향으로 옮겨가면서 목표물을 찾는 방법이다. 파인더에서 1차로 목표물 가까이 접근한 다음 파인더보다 훨씬 배율이 높은 아이피스를 들여다보며 정밀하게 대상을 추적하는 테크닉이다. 넓디넓은 밤하늘에서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집중력이 필요하다. 한 걸음씩 확인하며 찾아가다 길을 잃을 때도 있지만 차근히 나아가다 어느 순간 렌즈 안에 원하는 대상이 떡하니 모습을 보일 때의 희열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찾는 기쁨이 생각보다 매우 크다. 한 번 호핑에 성공하면 다음에 그 대상을 찾아가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 이렇게 하나 둘 대상을 찾아가는 기쁨과 만나는 반가움이 호핑의 맛이고 이렇듯 애써 만난 대상을 차근히 뜯어보는 즐거움이 이 관측의 묘미다. 보고픈 사람 만나러 가듯 초집중력을 발휘하여 정확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 호핑이야말로 안시관측의 기본이자 백미가 아닐까 싶다. 관측을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고투 기능이 부러운 적이 없었고 호핑도 이내 어렵지 않게 익숙해졌으며 익숙해지니 제법 빨라졌다.


밤하늘의 별을 보는 일은 보고 싶다고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먼저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낀 날씨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백수가 아닌 이상 쉬는 날과 좋은 날씨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더하여 대부분의 관측은 상현에서 보름달을 거쳐 하현달이 되는 기간에는 피하고 있다. 달은 밤하늘에서 가장 막강하게 빛나는 천체다. 처음 호핑을 한 곳이 안성의 한 공동묘지 꼭대기였는데 일찍 도착해 장비를 세팅하고 이것저것 준비를 하는 동안 산등성이 너머로 달이 떴다. 갑자기 하늘에 밝은 가로등이 켜진 듯 하늘이 환해졌다. 달이 뜨자 별들이 많이 사라졌다. 달 자체를 관측하는 게 아니라면 모든 관측은 달이 얇을 때, 달이 없을 때가 정답이다. 한 달에 두 주 정도가 관측 가능한 월령이다. 이 두 주 안에 날씨도 맑아야 하고 시간도 있어야 하는 취미가 천체 관측이다. 낮동안 구름 한 점 없다가 밤만 되면 구름이 하늘을 온통 덮는 경우도 허다하다. 온갖 장비로 무장하고 나서지만 천체관측이 결국 운을 바라고 하늘에 맡겨야 하는 취미라는 걸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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