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성운을 찾아보다
나의 첫 호핑 대상은 고리 성운 m57이었다. m은 메시에 목록을 뜻한다. 프랑스의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가 혜성을 찾다가 하늘에서 혜성과 혼동할 것 같은 천체를 골라내어 목록을 만들어 번호를 붙였는데 하늘에서 비교적 잘 보이는 대부분의 성운, 성단, 은하 등이 메시에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안시관측을 시작한 사람들이 필수로 찾아보는 대상들 역시 메시에 목록이다. 57번 고리성운은 말 그대로 고리처럼, 반지처럼 생긴 행성상성운이다.
앞서 언급한 호핑이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첫 관측에서 초보가 처음 호핑을 하려 하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이피스 안에 보이는 별들과 전자 성도에 보이는 별들의 개수가 달라 전자 성도의 별들을 조정해 눈에 보이는 것과 비슷한 비율로 맞춰야 한다. 내 쌍안 망원경에는 레드닷 파인더가 달랑 하나 달려있는데 레드닷 파인더에 길잡이 별을 도입한 후 아이피스를 통해 찾아가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완전 생초보의 눈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진 많은 별들의 모습을 비교해 패턴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게다가 망원경 조작도 쉽지 않았다. 쌍안 망원경은 장비 설치와 조작이 아주 쉬운 편인데도 워낙 이쪽에는 소질이 없어 매 번 헤매었다. 삼각대를 잘 펴서 수평으로 고정시킨 후에 쌍안 망원경과 삼각대를 연결할 경위대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경위대에 망원경을 연결해야 하는데 겨울철에 시작한 관측은 이 모든 것을 어렵게 했다. 별을 보려면 불빛이 없는 어두운 곳으로 가야 하니 외딴 산 꼭대기 혹은 중턱쯤 시야가 탁 트인 곳을 가야 했다. 그런 곳에서 무겁고 차가운 망원경을 들고 나사를 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추위는 모든 작업을 힘들게 했다. 영하 10도가 넘어가는 한 밤중에 금속성의 망원경을 들었다 놨다, 나사를 풀었다 조였다 하는 일은 무척 힘들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내가 체력이 저질이라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지금 생각해 보니 이후의 어려움에 비하면 엄살에 불과했다. 게다가 미동도 없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아이피스를 들여다보는 일 또한 온몸을 굳게 만드는 일이었다. 반복해 휴대폰과 아이피스를 번갈아 들여다보며 호핑을 하는 자체가 한 겨울엔 쉽지 않았고 추위에 휴대폰 배터리는 쉽게 방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호핑을 시작해서 원하는 대상을 하나씩 찾아 나섰다. 안되면 될 때까지 찾았다. 주위에 불빛도 없는 외딴 고지대에서 호핑을 하고 있노라면 시간이 훌쩍 잘도 흘렀다.
m57은 거문고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별 베가에서 시작해 찾아간다. 베가와 그 아래의 평행사변형 별 네 개로 이루어진 거문고자리는 봄철 밤하늘의 대표 별자리다. 거문고자리의 베가와 처녀자리 스피카,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가 이루는 커다란 삼각형을 봄의 대삼각형이라 부른다. 베가 밑의 평행사변형에서 한 변의 중간쯤에 위치한 m57을 처음 찾은 순간을 잊지 못한다. 지금은 맨 눈으로도 어디에 있는지 아는 대상이지만 낑낑대며 별을 찾아가다 길을 잃어 다시 베가로 돌아오곤 하는 여정을 반복해 드디어 도달한 m57. 아이피스 안에서 숱한 별들의 배치를 대조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 시야에 들어온 행성상 성운을 보는 순간 말로는 형언하기 힘든 성취감과 함께 신비한 고리성운의 모습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하늘에 저런 게 있다니 신기했다. 행성상성운은 별의 진화 과정에서 별이 자신의 외곽층을 날려버리며 폭발해 남긴 잔해다. 모양이 행성처럼 생겼다 해서 행성상 성운이라 불리지만 딱히 행성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다. 내 망원경이 대구경의 큰 망원경이 아니라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지만 하늘에서 별이 아닌 다른 걸 본다는 느낌은 남달랐다. 심우주에 한 걸음 다가간 느낌과 함께 내 몸은 지구에 있지만 내 정신은 우주 한가운데를 유영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엔 참 많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날마다 떠올랐다 지는 별과 달과 태양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하늘엔 온갖 형상의 우주 먼지들, 폭발한 별의 잔해들이 차고 넘친다. 개인적으로 천체 사진들 중 광시야 사진을 좋아한다. 한 대상을 크고 디테일하게 찍은 사진보다는 한 시야 안에 별들이 가득 들어차고 성운들이 보이고 은하들이 보이는 사진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이런 광시야 사진이 주는 감동이 따로 있는데 마치 허블 망원경이 찍은 울트라딥필드를 볼 때처럼 우주의 스케일이 가슴에 훅 들어오는 느낌이 있다. 한 화면에 은하들이 몇십 개씩 보이는 사진들, 오리온자리가 다 보이고 오리온성운이 보이고 마녀머리 성운과 버나드 루프가 한 장에 보이는 사진들, 혹은 여러 성운들과 성단, 별자리 별들이 콕콕 박혀있는 우리 은하수를 찍은 사진들이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저런 것들이 하늘에 있는데 다만 우리 눈의 한계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 눈에 망원렌즈를 이식할 수만 있다면 나는 저런 것들을 늘 보고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별 보기를 하고 새삼 깨달은 사실은 하늘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게 있었고 밤하늘을 보는 일은 아이피스라는 열쇠구멍을 통해 마치 범접불가한 신의 세계를 훔쳐보는 듯한 스릴과 긴장을 가져다 주었다.
행성상 성운(planetary nebula) : 별의 진화 과정에서 비교적 질량이 작은 별들이 백색왜성으로 진화하면서 방출하는 성운. 행성과는 별 상관이 없지만 과거의 관측자들이 작은 망원경으로 보았을 때 행성처럼 보였다 해서 붙은 이름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베가(Vega) : 거문고자리의 알파성. 직녀별이라고도 하며 밤하늘에서 매우 밝게 빛나는 별이다.
레드닷 파인더(Reddot finder) : 조준경. 보는 방향에서 레이저포인터로 대상을 표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