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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작이 절반?

밤하늘을 본다는 것

by 김은석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은 어디서나 통용되는 문구가 아니었다. 이 세계에 입문하는 순간 그 말은 완전한 구라, 새하얀 거짓말이라는 걸 반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시작은 그냥 말 그대로 시작일 뿐이었다. 별 보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망원경에 대해 알아가야 했고 이는 광학계에 대한 이해와 각종 장비에 대한 기초적 지식의 습득, 성도를 통한 별이나 성운, 성단, 은하 등의 위치, 별의 진화 과정 등등에 대한 것들을 공부해야 했다. 이 시간까지도 시작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처음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불가해한 우주를 눈으로 느낀다면 부조리한 인간사쯤은 옷깃 먼지 털듯 털어버리 수 있을 거라는 착각도 들었다. 광막한 우주에서 티끌보다 못한 존재의 고민은 한낱 깃털처럼 가벼워질 거라는 막연한 희망도 기대했다. 하지만 간신히 마련한 망원경으로 쳐다본 밤하늘은 희망이 아니라 어떤 인지적 절망감도 함께 선사했다. 망원경으로 바라본 밤하늘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했지만 그 아름다움의 끝엔 상상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광막한 거리를 망막에 가둔 채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바라만 보아야 하는 처연한 무력감이 느껴졌다.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것을 바라보는 일. 짐작도 하기 힘든 세계를 서성이듯 바라보는 일이 안시관측이다.


밤하늘을 본다는 건 어떤 종류의 욕망일까 생각해 본다. 사람마다 별을 보는 이유가 조금씩 다르겠으나 나는 상상조차 힘겨운 거대한 공간과 그 공간을 가로질러온 빛이 아주 엄청난 과거의 빛이라는 사실이 주는 흥분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이해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스케일의 우주, 인간이 인지할 수조차 없는 규모의 시공간, 먼지보다도 작은 지구, 크기로 보면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인간이 그 큰 세계를 조망하려 애쓴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마도 작은 잎사귀 하나가 나무 전체를 알려고 뿌리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될까. 혹은 내 뇌세포 하나가 '나'라는 전 존재를 알기 위해 용을 쓰는 듯한 느낌일까. 뿌리에서 비롯되었지만 평생 뿌리를 볼 수 없는 나뭇잎처럼 우주 안에서 우리의 존재 이유와 근원을 도저히 알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평생 이런 호기심을 품은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욕망할 것이다. 뿌리를 향한 잎새의 로망을.



'빛은 물체가 현존한다는 증거가 아니라, 한 때 그곳에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흔적일 뿐이다'라는 과학자 브라이언 그린의 말처럼 별을 본다는 것은 빛이 내 동공에 닿기까지 달려온 긴 시간과 그 빛이 가로질러온 공간을 인지하는 경험이다. 빅뱅 이후 한참 후에 생겨난 지구라는 별에서 태어나 내가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생성된 별에서 출발한 빛과 조우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밤하늘엔 온갖 과거의 시간이 빛나고 있었고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져보지만 결코 알 수 없는 질문들. 초현실적인 공간이지만 실재하는 현실인 우주. 밤하늘을 탐색하는 시간에는 머릿속의 논리나 말랑한 정서보다는 경이로움과 더불어 어떤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고 심지어 약간의 분노(?)까지 복잡다단한 감정이 물결치곤 했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이 한낱 먼지라는 사실을 아주 명료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건강한 허무주의자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하는데 별 보기는 이런 허무주의자의 알량한 허세를 단번에 눌러 압도했다. 작은 아이피스가 보여준 세계에는 온통 허무가 묻어있었다.


별을 보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밤하늘을 탐색하는 일의 특별함이 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모여있는 성단이 있고 성단은 별들이 무작위로 흩어져 있는 산개성단과 공처럼 중심을 향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구상성단으로 나뉜다. 하늘에는 별이 폭발한 초신성 잔해도 있고 다양한 모습의 성운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 은하 외부엔 당연하지만 수많은 은하들이 있다. 처음 이 취미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새삼 놀랐던 것은 우주의 크기였다. 비약적인 과학의 발전은 우주의 크기를 상상 이상으로 확장해 놓았다. 무한대에 가까운 우주라는 머릿속 인식은 막연하고 추상적이었을 뿐이지만 망원경을 통해 몇백만 광년 거리의 혹은 몇 억 광년 거리의 천체들을 실제로 보는 일은 막연하지 않았다. 그 먼 거리의 대상이 내 눈에 보이는 경험은 특별했다. 이런 실체적 경험은 우주 공간에 대한 내 인식의 지평을 감당할 수 없이 넓혀놓았다. 아이피스라는 동그란 창을 통해 보이는 은하가 너무나도 작고 희미하다는 사실은 그것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얼마나 큰지, 얼마나 오래전의 빛인지를 말해준다. 별을 보는 일은 찰나를 사는 인간이 영원을 보는 경험이다. 티끌보다 작은 존재가 너무나도 거대한 전우주를 조망하는 일, 내 뇌세포는 이런 아찔한 간극과 심연을 도무지 처리할 방법이 없다. 상상조차 불가한 크기의 우주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순식간에 '나는 무엇인가'로 바뀌어버린다. 우리는 별 먼지에서 온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별을 보는 순간이다. 그리고 별에서 태어난 우리는 종국에 별 먼지로 돌아간다. 우리가 왔던 곳, 시간조차 무의미한 그곳으로.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 :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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