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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측, 또 관측

세이렌의 노래에 홀린듯한 시간들...

by 김은석

어둠이 땅 끝까지 내려앉은 시간. 주위의 등불이 모두 꺼진 시간. 모두가 쉬고 있는 그 시간에 안시관측자는 일을 시작한다. 초저녁도 아니고 새벽도 아닌 아주 어두운 시간, 아주 캄캄한 곳에서 별을 본다. 그래야 잘 보이니까. 집중해 별을 보는 시간은 대체로 밤 11시 이후부터 새벽 세시 정도. 어쨌든 밤을 새야 하는 취미이고 아무 때나 나갈 수 있는 취미가 아니다 보니 하늘이 맑고 형편이 되면 무조건 나갔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별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려면 대부분 차로 두 시간 이상을 가야 했다. 강원도 산골짜기까지 가야 그나마 은하수도 보이고 쏟아지는 별들도 보였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관측하면 잘하는 건데 멀리 가서라도 깨끗하고 투명한 하늘을 만나고 싶었다. 달이 기울고 별을 볼 수 있는 월령이 시작되면 날마다 날씨 앱을 들여다보며 밤에 구름이 끼는지 맑은지를 점검했다. 내게 날씨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밤에 별이 보이는 날씨냐 아니면 별이 안 보이는 날씨냐. 추위나 더위는 두 번째 문제였다. 날이 맑으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별을 보러 갔다. 한 달에 서너 번을 나간 적도 있다. 밤을 새우고 잠시 눈을 붙였다 다시 밤을 새러 간 적도 있고 어떤 월령엔 아예 관측지 인근에 방을 잡고 이틀을 밤을 새운 적도 있다. 때론 다음날 출근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강원도로 향한 날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밤하늘을 빨리 잘 알고 싶었다. 하늘을 보면 저게 어느 별인지, 어떤 별자리인지, 내가 찾는 대상이 저 하늘 어디쯤 있는지 이런 것들을 빨리 알고 싶어 안달이 났다. 퇴근길에도 날이 좋아 별이 보이면 별자리를 찾았고 행성들을 찾았으며 친구들과 강원도로 놀러 가서도 밤에 혼자 가벼운 쌍안경을 들고 숙소를 나와 하늘을 보다 새벽녘에 들어갔다. 주위에서 보면 제정신이 아닌듯한 시간이었다. 한가하게 살 처지도 아니고 생업에 몰두해야 할 형편인데 정신은 온통 밤하늘에 팔려있었다. 밤샘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고 후유증에 시달린 시간도 적지 않았는데 뒤늦게 바람이 난 것처럼 못 말리는 중년 아줌마의 극성스러운 별 보기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사진과 달리 흐릿한 솜뭉치처럼 보일지라도 대상을 확인하고픈 열망으로 가득 찬 시간들. 그 시간들이 남겨준 건 무엇일까. 내 뇌세포는 어떤 전기적 자극을 받았길래 이런 중독성을 보이는 걸까 늘 궁금했다. 내게 새롭게 지펴진 열정의 불꽃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사실 내가 운용하는 100mm 쌍안망원경으로는 대부분의 대상들이 너무나 작고 흐릿하게 보인다. 산개성단이나 커다란 성운 정도나 되어야 모양을 인지할 수 있는 정도지만 작은 구상성단이나 은하들은 그저 아이피스 안에서 별보다 흐릿한 작은 솜뭉치 정도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고 더 작은 대상들은 주변시로 슬쩍 눈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정도였다. 틀림없이 성도를 확인하고 제대로 별들의 배치를 짚어가며 목적지까지 갔는데도 있어야 할 자리에 대상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흔적만 확인하면 도파민이 마구 분출되었다. 처음 아이피스 안에서 별과 별 사이를 헤매다 무언가 별이 아닌 다른 형상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의 전율을 잊을 수가 없다.


쌍안망원경이 작은 구경의 장비지만 그래서 오히려 대상을 찾기가 쉬운 측면이 있다. 큰 망원경을 이용한 고배율 관측은 또 다른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호핑의 편리함이 있는 장비였기에 많이 부족한 초보의 별 보기가 가능했다. 일단 이 바닥에 입문해 별을 보기 시작하면서 찾게 되는 목록이 있는데 앞서 언급한 메시에 목록이 대표적이다. 110개의 유명 대상을 추려놓은 목록을 별자리별로 하나씩 찾아갔다. 계절별로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자리들이 다르기에 메시에 목록을 다 찾으려면 계절을 돌아가며 찾아야 했고 미처 놓친 대상은 다음 계절을 기약해야 했다. 관측을 한 번 나가려면 차에 망원경을 비롯해 온갖 것들을 잔뜩 싣고 나가야 했는데 당시 살던 2층에서 차로 5-6번을 왔다 갔다 하며 짐을 싣고 내렸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누가 돈을 주고 하라 해도 하기 힘든 일들을 미친 듯이 했던 시간들. 까만 밤을 하얗게 불태웠다는 게 이런 걸까? 관측지에서는 전혀 졸렵지 않았고 새벽녘이 되면 이름 모를 충만함과 뿌듯함이 가슴을 꽉 채웠다. 물론 밤을 지새우고 난 후의 하루는 제정신이 아닌 반혼수상태로 지냈지만 말이다.


주변시 : 직접 대상을 보지 않고 대상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시선을 두어 대상을 보는 기술. 우리 눈이 컬러를 담당하는 원추세포와 밝기를 담당하는 막대세포의 분포가 달라 어둡고 흐린 대상은 막대세포의 밀도가 높은 곳을 활용해서 대상을 인지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한 곳을 집중해서 보면 오히려 잘 안 보이는데 그 주위를 돌아가면서 보면 희미한 빛도 잘 감지하는 막대세포의 작용으로 안 보이던 대상이 보이기도 해서 작은 은하나 희미한 성운은 주변시를 이용해서 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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