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8. 별 보기의 어려움

극한 취미로서의 별 보기

by 김은석

별을 보는 게 뭐가 어렵나 생각하기 쉽지만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하면 별이 일 것 같지만 내가 사는 서울 같은 도심에서는 하늘을 아무리 올려다봐도 별 몇 개 보기가 쉽지 않다. 세상이 밝아져도 너무 밝아졌다. 산골 구석구석 led 가로등이 번쩍 거리며 휘황찬란함을 뽐내고 있는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건 은하수 짙게 흐르는,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이다. 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천체 사진을 찍는 분들은 희미한 빛을 살뜰히 모아 사진을 완성하지만 그냥 맨 눈으로 천체를 보면서 빛을 모을 수는 없기에 안시 관측자들은 어두운 곳으로, 더 어두운 곳으로 향한다. 가로등이 없는 곳, 근방에 건물이라고는 없는 곳, 그러다 보니 외진 강원도 산골짜기를 주로 찾아 나선다. 무엇보다 짐이 워낙 많아 차는 진입할 수 있어야 하지만 주변에 차량 운행이 잦으면 암적응이 깨지기에 차가 수시로 다니는 도로와도 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이런 곳이 흔하지 않다. 강원도에선 운 좋게 그런 곳을 발견했다 싶어도 군사제한 구역인 경우도 많다. 그러면 힘들게 장비를 설치했다가도 쫓겨날 수 있다. 나는 아직 군사제한 구역에서 쫓겨난 경험은 없다. 아무튼 무거운 장비를 싸 짊어지고 집을 나서도 편안하게 관측을 할 수 있는 멋진 장소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래서 내가 가는 곳은 대부분 고도가 높은 산 꼭대기인 경우가 많았다. 차량이 간신히 진입할 수 있는 곳, 거의 1000m에 육박하는 고도에서 밤을 지새우다 보면 한여름만 빼고는 겨울 패딩을 입어야 했다. 6월 밤에도 기온이 떨어져 옷을 몇 겹 껴입고도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이 있다. 한마디로 관측지는 춥다. 그것도 많이 춥다. 깜깜하고 추운 곳, 그곳이 관측지다. 빛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하기에 차에 시동도 켤 수 없다. 약간의 불빛만으로도 암적응이 깨져 아이피스 안의 어두운 대상을 식별해 내기 힘들어진다. 그러니 밤새 한 겨울 추위를 그대로 감내해야 한다. 영하 10도의 추위에서 밤샘 관측을 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마다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껴입었고 온몸 여기저기 핫팩을 붙였으며 영하 40도를 버틴다는 방한화를 신었음에도 발가락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시렸다. 물론 내가 추위를 심하게 타는 체질이라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대부분 화장실도 없다. 요령껏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 분야에 여성들이 거의 없다. 아가씨들은 꿈도 못 꾸는 환경, 나 같은 극성스러운 아줌마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살면서 뭘 이렇게 억척스럽게, 극성스럽게 한 일이 없는 나로서는 도무지 밤하늘 밑에서 이러고 있는 나를 설명할 길이 없다. 파도가 철썩대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던 어느 소설가의 문장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날, 캄캄한 고도 천 미터의 산 꼭대기에서 이러고 있는 너는 누구냐...


이런저런 준비를 다 마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망원경을 펼치고 대상을 찾는 일은 파인더와 아이피스에 고개를 박고 석고상처럼 서있어야 하는 일이다. 전자 성도의 별 배치와 파인더, 아이피스가 보여주는 별 배치를 비교해 한 걸음씩 대상을 향해 이동해야 하는 게 호핑이다. 미동도 없이 성도와 아이피스를 번갈아 쳐다보는 일이다 보니 온몸은 추위에 점점 굳어지기 마련이다. 아이피스 안에 대상을 포획한 후에는 흔들림 없이 대상을 더 잘 보기 위해 호흡도 멈춘 채 대상을 주시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세상 몰골이 따로 없다. 이런 어려움도 캄캄한 밤에 함께 할 별 동료가 있다면 너무도 기쁜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없이 혼자 나가서 캄캄한 산 중에서 혼자 밤을 지새야 한다면? 그때는 심호흡을 가다듬고 담력 테스트를 할 준비를 해야 한다. 혼자 외딴곳에 있다 보면 사람이 없어도 무섭지만, 사람이 나타나도 무섭다. 고라니 울음처럼 이상한 소리들과 짐승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들에 머리칼은 쭈뼛 서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수십 차례 관측을 나가보니 개인적으로는 바닥에 아스팔트만 깔려 있거나 바닥이 정돈되어 있기만 하면 일단 아늑해서 덜 무섭다. 지방의 국립공원 주차장이라든지, 공원묘지나 천문대 주차장 등이 그러하다. 낮에는 쾌적하고 좋아 보이지만 한밤에 이런 곳을 가보라. 완전 딴 세상이다. 어쨌든 귀신이 나오든, 유령이 출몰하든 바닥의 안정감은 내겐 꽤 중요한 요소다. 음습한 기운을 상쇄하고도 남는 공원묘지의 쾌적함 때문에 관측 초기에 경기도 안성에 있는 공원묘지를 비교적 자주 갔다.


장비는 어떤가. 무겁기 그지없고 대부분 금속성의 재질이라 차가운 겨울밤에 조작하기 쉽지 않다. 파손될까 조심조심 다루어야 하고 생각보다 비싸 신줏단지 모시듯 해야 한다. 게다가 그런 것에 앞서 장비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과에 공학도면 모를까. 순정 문과 출신이 나사를 조이고 풀고 유격을 맞추고 얼라인 하는 일이 도무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광학에 대한 기본 지식도 갖추어야 하니 망원경으로 별을 보기 전에 배워야 할 것들이 차고 넘친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워낙 기계치, 장비치 이기도 하고 이 분야에 기본은커녕 근본도 없이 무식하기 때문에 더 어렵게 느껴졌다. 남들은 즐기면서 장비를 다루고 튜닝하고 즐겁게 별 보기를 하고 있는데 내 경우는 태생의 한계이니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다. 이 분야의 무식과 무지 때문에 별을 보는 동안 숱한 주위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평생 팔자에 없던 인복이 별 보면서 생겼는지 주위엔 넘치게 도움을 주시는 분들 덕에 이 취미에 연착륙하는 게 가능했다. 이렇듯 진입 장벽이 높은 취미라 중간에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꽤 많다.


별을 보면서 느끼는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수많은 대상 중에 무엇을 봐야 할지를 선택하는 것도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다. 생각 없이 망원경을 하늘에 들이대면 그저 무수한 별들만 보일 뿐이다. 관측지로 나가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항상 머릿속을 맴돌았으며 나는 왜 이 일에 이렇게 몰두하는 가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반복되었다. 이토록 힘든 일을 단순히 취미를 통한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뭐라 말할 수 없는 다른 느낌이 나를 휘감았다. 짙은 밤공기, 움직이는 별들을 제외하고는 마치 정지된 것 같은 시간들, 두 눈에 가득 담은 심우주의 흔적들, 새벽녘 온몸을 휘감는 이슬과 밤을 지새운 뒤 온몸이 나른한 느낌까지 어느 것 하나 일상에선 경험할 수 없는 감각들이다. 우리 인간의 상상력으로 가늠도 안 되는 거대한 크기의 은하. 그 은하가 내 눈에 모기보다 작게 보인다는 사실은 그 은하가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 먼 거리를 달려와 내 망막에 닿은 빛다발을 대뇌 속 경이로움을 저장하는 기억 창고에 깊이 저장하는 밤. 감각적으로 경험하면서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세계. 이런 느낌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관측을 나갔다 올 때마다 관측기를 써보지만 언어의 한계는 자명하다. 다만 부실한 기록들이라도 그날의 경험을 상기시킬 수만 있다면 그 자체로 내겐 귀한 기록이 되기에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관측 기록은 꼭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