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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남 yenam Aug 18. 2019

19. 엄마가 매달릴수록 아이는 멀어진다

“쉴만하니깐 벌써 돌아왔네요.”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돌아왔는데 학교에 마중 나온 정수 엄마가 나에게 한 말이다. 정수는 친구 관계가 좋고 운동도 잘하며 공부까지 잘하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다. 나는 평소에 ‘엄마가 얼마나 신경을 쓰고 관리했길래 정수가 저렇게 다 잘하지?’하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정수 엄마는 생각했던 것보다 정수에게 그리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놀랐다. 정수는 많은 부분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기 의견을 존중받는 모습이었다. 정수가 스스로 선택해서 원하는 학원에만 다니고 있었고, 방과 후에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많았다.


나도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집에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각종 캠프에 가거나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일도 많았다. 고등학교 때에는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 입학했을 때는 기숙사로 들어가는 내 모습이 어색하기도 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금세 친구들과 동거 동락하며 즐겁게 보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진심을 다하여 감사 편지를 써서 보냈다. 편지에 엄마, 아빠께 “사랑한다.”라고 쓴 것 역시 처음이었다.

아이는 멀어질수록 부모와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가까이 오래 있으면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잘 모른다. 나도 집에 있을 때에는 잘 몰랐다. 집에 나와 떨어져 살아보니,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이 커졌다. 요즘은 대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도 부모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부모 집 근처에서 살기도 한다. 가까울수록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에 익숙해져 버린다.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이 독립심을 기르고 부모에 대한 사랑을 좀 더 느낄 수 있도록 특별한 방학숙제를 내준다. 요즘 아이들은 방학 동안에도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듣느라 바쁘다. 그래서 방학을 싫어하는 아이도 있다. 오히려 학교에 와서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이 더 즐겁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아이들에게 공부를 더 시키거나 문제집을 풀게 하는 방학 숙제를 내주기는 싫었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방학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다음과 같은 숙제를 내주었다.


첫 번째 방학숙제는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기’이다. 예상외로 친구 집에서 함께 놀다가 자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많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 집에서 많이 잤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자고 가기도 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밤늦게까지 함께 놀면서 친구와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고, 같이 자면서 친구들과 더 깊어지는 우정의 감정을 느낀다.

두 번째 방학숙제는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을 돌아보기’이다. 이 숙제는 저학년 아이들한테는 내지 않는다. 고학년 아이들에게 내주는데, 위험할 수 있어서 혼자 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집 주변이라도 버스를 타고 돌아보는 경험을 해 보라고 한다. 매일 집과 학교, 학원만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이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경험만으로도 굉장한 도전이고 배움이 될 것 같은 마음에서이다. 요즘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 시간을 주면 대부분 컴퓨터에 앉거나 스마트폰을 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없이 어떻게 놀아야 할지도 모르고 밖에서 놀 수 있는 장소도 마땅치 않다. 이런 아이들에게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며 한 바퀴 돌아보는 작은 여행이 소중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에너지다', '사람을 향합니다' 등 유명한 카피라이터 광고인 박웅현 씨는 자기 자녀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고 한다.


“삶을 여행처럼 해. 이 도시를 3일만 있다가 떠날 곳이라고 생각해.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서 3일밖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이야.”


아이들에게 버스 창가에서 주변을 돌아보며 삶을 여행처럼 느끼게 해 주는 작지만 소중한 경험을 줘 보자. 이 외에도 '가족과 함께 텐트를 치고 야영해보기', '엄마와 함께 장보기', '혼자 힘으로 밥 차리기' 등의 숙제를 낸다. 이들 중에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해서 느낀 점을 일기로 써온다. 매년 아이들은 적어도 하나 이상 숙제를 해온다. 그리고 숙제를 하면서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고 또 하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런 경험들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시켜주지 않으면 잘할 줄 모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와 집에서도 떨어져서 지내보고, 스스로 뭔가 도전해보는 경험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성장한다.


엄마는 아이들에게서 조금 떨어져서 관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이를 방치하거나 모른 척하라는 말이 아니다. 특히 남자아이들이나 사춘기가 찾아온 아이들은 조금 더 놓아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혼자 일을 해내는 데서 성취감을 느끼고, 자기만의 시간 속에서 내적으로 성장한다. 요즘은 빠르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사춘기가 오기 시작한다. 사춘기가 오면 아이들은 대화를 피하려 하고, 자신만의 비밀도 생긴다. 이런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꼬치꼬치 캐물으면 아이는 입을 더 꾹 다문다. 엄마는 진심 어린 말과 조언이었다 하더라도, 아이 귀에 들어가는 순간 잔소리로 변하고 만다. 이럴 때일수록 아이와 조금 떨어져서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자세가 좋다. 아이와의 관계가 너무 멀어진 것 같고 대화가 잘 되지도 않는다면, 함께 야영장에 가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해 보는 경험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매년 아이들과 캠핑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텐트를 치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서로 정을 나눈다. 아이들은 텐트를 직접 쳐보면서 성취감을 느낀다. 그리고 고기를 직접 구워서 함께 쌈을 싸 먹고, 냄비에 스스로 밥도 하며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 밤에는 바닥에 철퍼덕 누워서 고개를 들고 한참 동안 쏟아지는 별을 감상한다. 가족과 함께 이런 경험을 자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매달릴수록 아이는 점점 멀어진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의 공부에 매달린다. 공부를 시키는 것은 아이들 본인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나오면, 취직을 하거나 직업을 갖는 데 유리한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공부는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한다. 아무리 아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말해도 아이가 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엄마의 기대가 클수록 실망은 더 커지고 아이와 관계만 나빠진다. 우리가 매일 마시고 있는 공기나 물처럼, 엄마의 정성과 관심을 아이들은 잘 몰라준다. 공기와 물이 없을 때 그 소중함을 알 듯, 엄마가 없을 때나 엄마의 사랑을 뒤늦게 진심으로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엄마가 아이를 떠나거나 아이를 내보내라는 말은 아니다. 바둑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이 바둑판을 더 잘 보듯이, 아이에게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고 아이가 엄마에게 먼저 다가올 수 있도록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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