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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남 yenam Aug 14. 2019

18. 관심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서점에 가면 자녀 교육 책들이 넘쳐난다. 책뿐만 아니라 인터넷에도 자녀 양육에 관한 각종 정보들이 정말 많다. 내용을 얼핏 보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서로 반대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칭찬은 독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합니다.”

 아이에게 칭찬을 하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건지 헷갈린다. 어떤 책에는 칭찬을 하되 구체적으로 하란다. 내가 엄마라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책은 책일 뿐이고, 이론은 이론일 뿐이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나도 교육심리, 상담, 정신분석까지 공부하지만,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말이 딱 맞다. 아이의 기질과 성격, 엄마와 선생님의 성격 등에 따라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를 키울 때는 더 힘들다. 엄마들은 육아를 이론으로 무조건 키우지 않는다. 자신이 어렸을 때 받은 육아를 무의식적으로 재현하기도 하고, 주변의 경험이나 조언으로 양육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아이는 왜 이렇지?’

자꾸 비교가 된다. 다른 엄마를 따라 해 보기도 하고, 전문가들을 따라 해 봐도 내 아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왜 그런 걸까? 육아에 정해진 답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엄마와 아이에게는 A라는 방법이 맞을 수 있고, 어떤 엄마는 B의 방법이 좋을 수도 있다. 아니면 A와 B의 방법을 적절히 섞은 방법이 통하기도 한다. 자기 나름대로 아이를 키우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원칙에 맞는 양육 방법들을 적용해보고, 원칙과 맞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치워두자. 아이가 계속 문제가 보이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원칙의 범위를 좀 더 넓혀 다른 방법들도 하나씩 적용해 봐야 한다. 엄마의 양육에 대한 원칙이 있고, 그 안에서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면 어떤 방법이라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엄마들이 아이를 대할 때,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은 꼭 가졌으면 한다. 이 원칙들은 많은 전문가들과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첫째, 절대 아이를 때리지 말자. 세계적인 심리학자인 피아제(Piaget)는 아이에게 처벌하는 것을 한 마디로 말했다. “처벌은 도덕적 자율성이 기능할 수 없게 한다.” 아이가 스스로 도덕적인 생활을 하도록 하려면 처벌만큼은 피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욱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우리가 어렸을 적만 해도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맞으면서 자랐다. ‘사랑의 매’라고 하면서 때리는 것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사랑의 매를 우리나라 교육의 전통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옛날 선조들은 사랑의 매를 옆에 두지 않았다. 멀찌감치 두고 아이가 잘못을 하면 아이에게 직접 매를 가져오거나 구해오도록 했다. 그동안 아이에 대한 본인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였다. 홧김이나 욱해서 아이를 때리면 절대 안 된다. 이는 폭력이다.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고 아이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된다. 누구에게 맞은 기억은 평생 간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두려움도 생긴다. 그 두려움 속에서 사랑은 물론이고 존경심 역시 싹트지 않게 된다.


둘째, 아이에게 관심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아이가 느낄 수 있게 하자. 관심은 사랑이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엄마도 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표현하는 게 실례라고 배워온 우리나라 정서상 더 그렇다. 관심 표현은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다. 말로 하면 더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아이가 언제든지 엄마를 내 편이라 생각하게끔 만들어주면 된다. 그러한 방법들은 뒤의 4장에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아이의 눈을 보고 미소 한 번 지어주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느낀다.


셋째, 엄마가 사과할 일은 사과하자. 엄마도 아이에게 실수할 때가 있다. 생각이나 판단을 잘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자존심이 상할까 봐, 부모로서의 권위가 무너질까 봐, 아니면 아이가 나를 무시할까 봐 사과 대신 변명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일전에 엄마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말했다.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자. 나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내가 잘못 생각하거나 행동하면, 바로 아이들에게 사과한다. 그러면 아이들도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내 입장을 이해해준다. 본인은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상대가 잘못했을 때 사과시키는 행동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과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 사과할 일을 너무 자주 만들어 사과로만 그 상황을 넘기려 하면 아이는 더 이상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이는 엄마에게 “맨날 말로만 미안하대.”라는 소리를 할 수도 있다. 같은 실수를 계속 저지르면서 사과만 하면 그 사과의 진정성이 떨어진다.

 

위의 원칙들은 내 생각을 정리한 것일 뿐이니, 엄마들도 스스로 양육에 대한 원칙을 세 가지 정해봤으면 좋겠다. 양육 원칙들을 세우고 실천할 때, 일관성이 중요하다. 원칙이 자주 바뀌고 이랬다 저랬다 하면 아이가 혼란스러워하고 불안에 빠질 수 있다. 나도 학급을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을 ‘일관성’에 둔다. 아이들과 규칙을 정하고 학급 운영을 위한 약속들을 여러 가지를 만들어 놓아도 일관성이 없으면 흐지부지 되어버린다. 아이들은 무질서해지고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상태가 되어버린다. 나도 초창기 교사 시절에는 그랬다. 지켜야 할 원칙과 규칙들을 너무 많이 세워놓는 바람에 하나하나 신경 쓰기 너무 어려웠다. 나조차도 우리 반 학급 규칙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자 몇 개월 가지 못해서 학급 규칙들은 일관성 없이 적용되기 시작했고 결국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그 이후로는 학급을 운영할 때, 중요한 규칙 몇 가지만 정해서 이것만큼은 꼭 지키고자 노력한다. 엄마가 원칙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너무 구체적이고 많은 원칙을 세우는 것보다는 일관성 있게 몇 가지 원칙들만 세워서 ‘이것만은 꼭 지키자’는 신념을 가졌으면 한다.


아이 키우는 게 두렵다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 나한테 와서 자기 아이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엄마도 있다. 아이와의 관계가 언제부턴가 틀어지고, 이제는 자기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아이와 마주치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고 아이를 피하고만 싶었다. 이러한 두려운 상황까지 가지 않기 위해서 이때 엄마의 양육 원칙이 필요한 것이다. 원칙은 신념이 되고 이 신념이 엄마를 흔들리지 않게 한다. 힘들다면 원칙에 많이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아이를 놓아줘보자. 나도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두려울 때도 있다. 아이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슴이 철렁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아이들이 나한테 또 배울 거리를 만들어 주는군. 이번 문제는 어떻게 하면 잘 해결할 수 있을까? 분명 좋은 해결 방법이 있을 거야.”

 나를 스스로 응원하고 도전하는 정신으로 어떻게 하면 아이가 좋은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두려움은 사라지고 해결 방법들이 떠오르게 된다. 아이가 두렵거나 문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면 스스로를 응원하면서 ‘분명 아이가 좋은 방향으로 될 수 있도록 해결 방법이 있을 거야.’하는 생각으로 아이를 바라보자.


지금까지 아이들을 수 백 명 이상 만나봤지만, 아이들은 하나 같이 다 다르다. 외모는 물론이고, 아이의 성격, 생활습관, 집안 분위기 등 모두 다르다.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한 마디로 엄마 노릇에 답은 없다. 다만, 원칙을 가지고 엄마와 아이가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아이는 분명 제대로 성장할 것이다. 오늘 한 번 자신만의 육아 원칙을 한 번 종이에 써 보자. 너무 구체적이지 않게, 아이와 이것만은 서로 지키고 싶고, 우리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세 가지 정도의 원칙을 한 번 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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