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빠랑 너무 달라. 아빠는 친절하게 말해주는데, 엄마는 맨날 소리만 질러. 좀 친절하게 말해주면 안 돼?”
딸이 이 말을 하자 엄마는 더욱 화가 나서 더 크게 소리쳤다. 엄마는 ‘내가 자기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생각하며 너무 억울했다. 엄마와 딸은 서로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엄마는 우리 아이가 바르게 자라도록,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중에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엄마는 다 우리 아이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말한다. 아이의 숙제를 챙기고 아이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 관심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태도가 지나치면 '간섭'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려고 하기도 한다.
“엄마 말 들어. 다 너를 위한 거야. 말대꾸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엄마가 니 말을 어떻게 믿어. 잔말말고 학원이나 가.”
라며 아이를 못 믿는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엄마는 이런 말들을 하기까지 얼마나 참고, 얼마나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는가. 하지만 이런 말들이 지속되면 아이에게 독이 된다.
우리 반에 수희라는 아이가 있었다. 수희는 매우 밝은 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울면서 배가 아프다고 했다. 수희는 그 날 이후로 매일 같이 배가 아프다며 일찍 조퇴하고, 학교에 빠지는 날도 많아졌다. 어느 날, 수희 엄마가 학교로 찾아왔다. 엄마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각종 검사를 다 해봤지만 특별한 원인이 없다고 했다. 의사들이 심리적인 이유로 수희 배가 아플 수 있다는 얘기를 전해주셨다. 엄마는 속상한 마음을 내비치면서 나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수희 엄마는 매사에 열정적인 커리어 우먼같이 보였다. 본인이 하고 있는 일과 공부, 육아까지 완벽을 추구하는 분이셨다. 지금까지 수희는 별 문제없이 자기가 계획한대로 자라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겨 매우 당혹스러워 하셨다.
결국 수희 엄마는 휴가를 내고 수희와 함께 일주일 정도 여행을 다녀왔다. 그 후 학교에 돌아온 수희는 배가 아프다고 말하는 횟수가 점차 잦아들었다. 몇 달 뒤, 수희는 더 이상 배가 아프지 않게 되고 다시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돌아온 이유는 바로 엄마의 간섭을 줄이면서부터였다. 수희 엄마는 수희를 본인의 열정만큼 완벽하게 키우고 싶었다.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었고, 친구들과 놀 시간도 거의 주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는 수희의 생활을 만들어나갔다. 수희 엄마는 나에게 찾아왔던 날 이후부터 수희에게 조금씩 자유를 주었다. 친구 집에서 마음껏 놀다오게도 허락하고, 텔레비전도 볼 수 있게 했다. 원래 수희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은 아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학교에서 아이돌 가수 얘기를 많이 하던 아이였다. 이런 아이에게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못하게 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렇게 수희는 엄마의 간섭이 줄어들자 배가 언제 아팠냐는 듯 다시 밝은 아이가 되었다.
아이가 이유 없이 아플 때는 심리적인 이유인 경우가 많다. 아이도 스스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존재다. 엄마가 지나치게 간섭하고 감시하듯 통제한다면 아이에게는 독으로 다가온다. 엄마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 아이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아이가 좀 더 잘 됐으면 좋겠고, 미래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유라는 말이다. 이런 태도를 심리학에서는 엄마의 '동일시'라고 말한다. 엄마 자신을 아이와 동일한 존재로 여기고 엄마가 원하는 대로 아이에게 투사하여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면 스스로 삶의 주인공이 되도록 도와줘야 한다. 삶은 누군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극구 반대하는 연예인의 꿈에 도전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성공하기도 한다. 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큰 사람들이다. 아이가 성공하기를 바라는가? 그리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가? 그러면 아이가 스스로 행동하고 삶을 선택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에게 '자유'를 알려주고 대신 '책임'을 묻게 하는 게 중요하다. 엄마의 간섭은 아이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고, 삶을 빼앗는 행동이다. 결국 아이와의 관계도 망치게 된다.
한 남자 아이가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고민을 썼다.
“엄마 잔소리 때문에 미치겠다. 맨날 엄마는 공부만 하라고 말하고 내 행동을 하나 하나 감시한다. 매일 문제집을 몇 장 풀었는지 검사하고, 매 시간 어디에서 뭘하고 있는지 핸드폰으로 감시한다. 시험 점수가 안 나오면 뭐라 그러고, 컴퓨터 한다고 뭐라 그러고, 핸드폰 한다고 뭐라 그런다. 정말 미칠 것 같다. 엄마는 맨날 소리치면서 나보고 게임중독이라 그런다. 이제는 엄마가 컴퓨터를 뒤져보고 게임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해서 게임 한 시간까지 체크한다. 너무 힘들다.”
이 아이는 자신이 평소 게임을 많이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지나친 간섭이 너무 힘들고 답답하다고 말한다. 그럴수록 이 아이는 게임에 더 집착하게 되고, 점점 집에 들어가기 싫어진다고 한다. 어쩌면 게임에 중독된 상황까지 온 것은 엄마와의 관계도 분명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중독이란 결핍에서 오는 공허함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아이를 간섭하고 믿지 못하는 엄마는 점점 아이를 고립시키고, 결국 집이라는 공간을 의미 없는 곳으로 만들어버린다.
핸드폰이 생겨나면서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의 연락을 한시라도 놓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밖에 나가면 엄마와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학교를 마치면 친구들과 놀이터나 공원에서 뛰어 놀다가 저녁 먹을 즈음 들어가곤 했다. 요즘에는 학교를 마친 아이가 연락이 안 되면 엄마들은 불안해 한다. 혹시 우리 아이가 낯선 사람에게 납치를 당한 건 아닐지,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별의 별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엄마가 아이를 걱정스러워서 연락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게 지나치면 걱정이 아니라 간섭이 되고 집착으로 느껴진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아이를 좀 더 믿고 여유를 줄 필요가 있다. 아이가 일어나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일거수 일투족을 신경 써야하는 엄마들은 정말 피곤하다. 그러나 그 간섭을 받는 아이는 더 피곤하다. 회사의 상사를 생각해보라. 처리할 업무의 기획부터 실행 과정, 결과까지 하나 하나 간섭하면서 계속 재촉한다면 정말 일할 맛이 안난다. 속으로는 ‘이럴 거면 당신이 하시지’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계속 ‘이거 했니? 저거 했니?’, ‘공부 할 시간이야. 운동 할 시간이야.’ 하다보면 아이는 마음 먹었던 것도 사라진다. 엄마의 걱정스러운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아이에게 관심을 넘어 간섭인지는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법률스님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간섭과 조언’의 차이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언은 상대에게 자기 의견을 말했는데 그 말을 들으면 좋고, 안들어도 그만인 걸 말한다. 그런데 상대방이 내 말을 안 들어서 괴롭다면 그건 간섭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의견을 조언하고 바른 길을 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런 조언을 듣지 않고 아이가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이 보여 엄마가 괴로워하고 자꾸 아이를 재촉하거나 채찍질하면 그건 간섭이다. 간섭이 점점 커지면 엄마도 괴롭고 아이도 괴로워진다. 독이 되는 지나친 간섭은 엄마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오늘은 아이에게 간섭이 아닌 조언을 해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