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엄마가 갑자기 연락이 와서 나를 찾아오겠다고 하셨다.
“6학년에 올라와서 학기초 친구들이 어색했는지 좀 안 어울렸었나봐요. 우리 애가 처음에는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 이제 12월이 다 되어가는데 갑자기 저한테 ‘엄마, 애들이 놀 때 나를 안 끼워줘.’라고 말하더군요. 제 앞에서 엉엉 울며 말하는데 제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미는 평소 내성적인 아이로 다른 친구들이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5학년 때까지는 별 문제없이 지냈는데 6학년에 올라오면서 아이들이 무리지어서 놀기 시작하고, 어느 무리에도 끼지 못한 영미는 왕따처럼 되어버린 것이었다. 아이들의 생활 반경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끼리 놀고, 같은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친하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라도 비슷한 평수에 사는 아이들끼리, 부모의 직업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노는 지역도 있다. 아이들의 이런 무리짓기는 고학년이 될수록 더욱 심해진다. 영미 엄마처럼 아이가 소외되지 않도록 요즘 엄마들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만들어준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같이 지낼 친구를 만들어주어야 입학해서도 놀 친구가 있다며 엄마들끼리 모임을 만든다. 엄마들 모임의 자녀들끼리 친구가 되는 것이다. 유치원도 같이 보내고, 학원도 같이 보내며 함께 놀러도 다닌다. 이런 문화가 익숙해진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이런 모임이 더 많아진다. 처음 입학하면 보통 학급 회장 엄마를 중심으로 ‘반 모임’이 생긴다. 단체 SNS방을 개설하고 모임이 구성된다. 아이의 생일이 되면 반 모임 엄마들은 인근 태권도장 같은 곳을 하루 동안 임대한다. 같은 반 아이들을 초대하고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불러 생일파티를 연다. 만약 반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엄마들은 소외당하기 마련이고 잘못하면 그 아이까지 소외되기도 한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도 어떻게든 반 모임은 참석하기 위해 애를 쓴다. 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연차를 쓰는 엄마들도 주변에 있다.
요즘은 엄마들이 친구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엄마가 친구 관계를 지금처럼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집 밖에 나가면 친구를 쉽게 만날 수 있었고 같은 학교, 같은 동네 친구들과 그냥 뛰어 놀았다. 친구들이 몇 평에 사는지, 부모님의 직업이 뭔지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 아이들은 친구를 새로 사귀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전학을 안가려는 아이들이 많다. 우리 반에도 끝까지 전학을 가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집이 이사를 가서 학교에서 멀어졌다. 새벽같이 등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학교에 가서 친구를 사귈 자신이 없기 때문에 불편해도 그냥 다니겠다고 했다.
엄마는 아이가 소외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친구는 잘 사귀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하나 하나 다 말해주는 아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다. 한참을 고민하다 버티기 힘들 때가 되어서야 엄마에게 말을 꺼내는 경우도 있다. 아이는 왕따가 되어버리고, 이 상황까지 온 아이의 정신적인 충격과 상처는 크며, 다시 친구를 사귀도록 돕기가 정말 쉽지 않다. 학교에서 한 번 왕따라고 낙인 찍힌 아이는 새 학년에 올라가도 왕따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렵다. 그 아이가 왕따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계속해서 따돌림이 되풀이된다. 또한, 따돌림을 당했던 아이가 간신히 관계를 극복하고 나서 다른 아이를 따돌리는 주동자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왕따는 예방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한다. 아이가 다른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고 큰 따돌림이 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에 대한 관심이 가장 필요하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고민하지 말고 담임선생님과 연락을 해보자. 담임선생님은 하루 종일 아이들을 지켜본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소외당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나는 학기 초와 중간에 친구 관계 조사를 실시한다.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 중에 하나인 짝을 바꾸는 것과 관련지어 관계를 조사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와 짝을 하고 싶어하고, 싫어하는 친구는 피하고 싶어서 안달이다. 이 때 친구 관계 조사를 해보는 것이다.
“지금 나눠주는 종이에다가 앉고 싶은 동성 친구와 이성 친구 한 명씩, 가장 앉기 싫은 동성 친구와 이성 친구 한 명씩을 적어주세요. 이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비밀로 쓰는 거예요.”
아이들이 써온 명단을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친구 관계가 드러난다. 종이에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아이도 있고, 가장 앉고 싶어하는 친구에 많은 이름이 나온 아이도 있다. 그리고 가장 앉기 싫은 친구에 이름이 많이 적힌 아이도 있다. 나는 가장 앉기 싫은 친구에 이름이 적힌 아이들에게 신경을 쓴다. 이 아이들은 따돌림을 받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도 아이에게 비슷한 방법으로 친구 관계에 대해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다. 아이에게 “이번 생일파티에 초대하고 싶은 친구가 누구야?”, “집에 데려와서 놀고 싶은 친구가 누구야?” 하고 한번 물어보자. 초대하거나 집에 데려오고 싶은 친구가 없다고 말하는 아이는 대개 두 가지 경우일 것이다. 아이가 친구들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고 있을수도 있고, 반대로 친구들과 두루 두루 친하게 지내고 있을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상관이 없겠지만, 전자의 경우라면 아이와 함께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질문들을 시작으로 자연레 친구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러다보면 아이의 친구 관계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아이에게 “넌 친구도 없니?”, “이 친구랑은 놀지 마.” 같은 평가나 간섭의 말은 절대 하지 말자. 그리고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인다면 작은 모임들을 자주 만들어주면 어떨까? 아이들은 거창한 파티가 아니더라도 친구를 집에 초대해 같이 놀거나 라면을 끓여먹는 것만으로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렇다고 해서 파티를 갑자기 억지로 열지는 말아야 한다. 오겠다는 친구가 한 명도 없어서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한 명이라도 좋으니 집에 한 번 초대해서 같이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엄마가 아이들의 공부뿐만 아니라 친구 관계까지 신경써줘야 하는가 싶을 것이다. 가뜩이나 직장에 다니느라, 집안일까지 지쳐있는데 아이를 위해서 얼마나 더 신경써야 하는지 답답할 지경이다. 그런데 엄마가 일일이 신경쓰지 않아도 친구와 잘 지내고, 관계를 잘 맺는 아이들도 있다. 과연 이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우리 반에도 이런 아이가 있다. 준수라는 아이는 전학을 왔는데도 불구하고, 오자마자 아이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준수는 아이들의 감정을 잘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가 기분이 나쁜지 좋은지를 잘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항상 웃음이 많았다. 준수는 친구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배려하고 자기 고집을 크게 부리지 않았다.
내 아이가 혹시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 다른 아이들이 봤을 때 싫어할만한 모습을 집에서도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 아이가 툭툭 내뱉는 말이 감정을 상하게 하는지, 자기 말만 옳다면서 고집부리는지 대화를 해보자. 아이가 평소에 가족 안에서도 어떤 말과 행동으로 생활하는지 가만히 관찰을 한 번 해보는 것이다. 평소 자기의 행동이나 말투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이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투를 갖고 있는지 잘 모른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갑자기 따돌림을 당하면 아이에게는 상처만 남게 된다. 아이는 점차 흔들리게 되고, 친구 관계뿐만 아니라 공부와 생활 모두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주자. 관심의 시작은 바로 대화이다. 대화를 통해 아이와 엄마가 제대로 관계를 맺는다면 아이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흔들리더라도 엄마라는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학교에서 뭐가 제일 즐거웠는지 한 번 물어보자.
그리고 아이가 힘들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담임선생님과 함께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면 된다. 엄마의 작은 관심이 아이를 흔들리지 않게 만든다는 것을 명심하자. 바로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