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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남 yenam Aug 23. 2019

21. 아이를 믿는 느긋한 엄마가 되자

국일이 엄마가 쓴 일기이다.


우리 아들은 욱하는 성격이 아빠를 많이 닮은 것 같다. 평소에 기분이 안 좋으면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거친 말도 나온다. 아직 초등학교 4학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걱정이다. 나는 우리 아들이 착실하고 공부 잘하는 그런 아이로 자랐으면 한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또 같은 반 친구와 싸웠다는 전화였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 화가 나기도 하고 우울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아이한테 “제발 싸우지 좀 마라.”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자기를 화나게 하는데 어쩌냐'라고 그런다. 그런 아이의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힘들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고, 안경은 부러져 손에 들고 있었으며 얼굴은 벌겋게 상처들이 나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속상해서 아들에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러자 아이는 서럽게 울면서 자기 방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잠시 뒤 선생님께서 다시 전화를 주셨다.

“어머님 많이 속상하시죠? 저희 반에 장애를 가진 친구가 한 명 있어요. 그 아이를 자꾸 괴롭히는 한 학생이 있는데 아무도 말리는 친구가 없었대요. 그런데 오늘 국일이가 친구를 괴롭히지 말라며 싸운 거예요. 그러니 국일이에게 너무 뭐라 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아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멋진 아이 었다니. 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나고 말았다. 나는 앞으로 아들을 좀 더 믿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 않거나 믿지 못해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국일이 엄마도 아이의 말을 한 번 먼저 들어봤더라면 화를 내고 소리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이에 대한 믿음은 무조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느끼면 아이는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아이는 믿음을 주는 사람을 배신하는 일은 없다. 아이를 전적으로 믿으면 불안도 줄어들고 아이를 재촉할 일도 없어진다.

TV를 보고 있는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면,

 “엄마, 이것만 보고 공부할게요.”

대부분 이렇게 대답한다. 이럴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혹시,

“한 두 번 속는 게 아냐. 맨날 공부한다고 말만 하고 안 하잖아. 당장 TV 끄고 들어가서 공부해.”

라고 말하지는 않는가. 엄마는 아이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거꾸로 아이도 자신이 하는 말을 엄마가 믿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엄마에게 내 진심을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고,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엄마는 우리 ○○이가 하는 말을 언제나 믿어. 이 프로그램 끝나면 TV를 끄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네? 엄마와 약속할 수 있겠니?”

이런 식으로 아이의 진심과 의견을 물어본다면 아이가 어떻게 움직일까? 만약, 평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갑자기 한다면 소용없을 것이다. 엄마가 지속적으로 진심을 다해 느긋한 마음으로 믿어주는 모습을 부여 주고, 이 마음을 아이가 느끼도록 전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믿음 관계는 한두 번의 말로 쌓이는 것이 아니다. 일관된 믿음으로 아이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밖에는 없다. 처음에는 불안하기도 하고 답답할 것이다. 아이가 ‘내 마음을 이용해 먹고 내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거나 자기 맘대로 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드는 것조차도 아이에 대한 불신이 전제된 생각이 아닌가.


실제로 아이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연구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젠탈은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로젠탈 효과’에 대해 실험하였다. 그는 지능이 비슷한 초등학생 두 그룹을 비교하였는데, 한 그룹의 담임선생님에게 ‘그 반 학생들이 다른 반 학생들보다 IQ가 높다.’고 말해줬다. 다른 그룹의 담임선생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개월 뒤에 다시 두 그룹의 IQ를 측정했는데 담임선생님에게 IQ가 높다고 말한 그룹의 실제 IQ가 높게 측정되었다. 이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IQ가 높다고 믿고 있었고, 공부도 더 잘할 것이라 예상했다. 선생님의 기대와 믿음이 아이들에게 투사되어 아이들도 기대에 부응하려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하게 된 것이다. 즉, 로젠탈 효과는 ‘기대와 믿음이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는 말이 있다. 아이에 대한 믿음이 아이를 성장하게 한다. 나는 수업을 할 때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과학 시간에는 여러분들이 과학자가 되어 보는 거예요. 이 실험은 실제 과학자들이 하는 방법과 똑같이 하고 있어요.”

아이에게 믿음을 주고 스스로 기대하게 만들면, 아이는 열심히 수업에 참여한다. 정말 자신이 과학자인 것처럼, 학자가 된 것처럼 고민하고 공부한다. ‘너는 맨날~’이라는 말을 할 때에는 조심히 하자. 아이는 실제로 자신을 그런 아이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아이가 하는 선택과 결과를 이해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는 말은 핑계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아이를 마냥 믿고 기다리는 것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가 바라는 대로만 자라지 않는다. 결국 모든 선택은 아이가 하기 때문이다. 속상할 때도 있고,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아이를 평가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격려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자. 아이가 선택하는 결정을 존중해주고 응원해주며 믿어주자. 그 결정이 죄를 짓는 행동이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만 아니라면 어떤 결정이든지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선택이 잘한 선택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가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아이돌 학원에 한 번 다녀보게 하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면 축구를 한 번 시켜보는 것이다. 그 경험들 속에서 아이는 분명 배우는 게 있고,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아이들은 엄마가 든든하게 믿어주는 존재로 있어주기만 해도 행복한 길로 나아갈 거다.


아이를 키우는 건 꽃을 키우는 것과 같다. 화분에 있는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물을 주고 햇빛을 쫴야 한다. 그런데 꽃을 빨리 보고 싶거나 잎이 조금 시들한 것 같아서 물을 매일매일 계속 줘보라. 그 꽃은 시들어버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면서 빨리 죽이는 이유가 물을 너무 많이 줘서, 너무 성급해서라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를 믿지 못하고 너무 성급해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자. 아이가 꽃을 피울 것이란 굳은 믿음을 가지고 조금만 더 느긋하게 아이를 기다려 주는 엄마가 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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