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갑자기 학교 전화기 벨소리가 울렸다.
“명도 좀 바꿔주세요.”
엄마는 명도와 통화하고 싶었나 보다. 이 엄마는 수시로 명도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는 담임인 나에게 어떤 용건으로 전화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명도에게 은근슬쩍 물어봤지만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다. 오늘 학교를 마치고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엄마가 말해줬다고 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당황스럽다. 수업 시간인데 전화를 받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전화를 계속 받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전화를 받게 해 주지만 전화를 받는 아이도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명도 엄마는 아이가 학교가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고, 아침에도 복도에서 전화통화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아이는 마지못해 전화를 받으며 “네.”라고만 대답한다. 이 아이는 어딜 가나 핸드폰에서 떠나지 않는다. 엄마의 연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외부로 체험활동을 나갈 때든, 학교에 있을 때든 언제나 핸드폰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 엄마는 명도에게 관심과 사랑을 넘어 집착한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헬리콥터 엄마’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아이 주변에서 헬리콥터처럼 빙빙 맴돌며 무슨 일이든 나서서 과잉보호하는 엄마를 말한다. 아이가 친구와 조금이라도 싸우면 엄마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아이가 어떤 공부를 해야 하고 몇 시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사사건건 참견한다. 이 ‘헬리콥터 엄마’들은 아이들이 다 컸는데도 불구하고 아이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심지어 대학에 들어가서까지 자녀의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대학교수에게 전화하는 경우도 있고, 직장에 들어갔는데도 자녀가 잘 다닐 수 있게 상사와 만나거나 간섭하기도 한다. 이 엄마들은 나중에 결혼할 때, 결혼하고 나서 까지도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한다. 엄마들은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다고 말한다. 아이를 사랑해서 관심을 갖는 것이고,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행동하는 것이라 말한다. 결국 이 ‘헬리콥터 엄마’들은 아이 곁을 잠시라도 떨어지지 못한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불안해한다. 요즘 이런 엄마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독립심을 잃고 엄마에게 의존하거나 이런 사랑을 집착이라 느끼고 엄마 곁을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심리학 용어 중에 ‘회복탄력성’이라는 용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회복탄력성이란 쉽게 말해 역경이나 시련이 닥쳤을 때 이를 딛고 일어나서 원래대로 돌아가는 힘을 말한다. 보통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긍정적이고 감정을 잘 통제하며 도전정신이 강하다. 요즘 아이들에게도 이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회복탄력성은 1955년 하와이의 카우아이 섬에서의 한 연구로 등장했다. 이 섬의 사람들은 다양한 인종이 모여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이 섬에서 태어난 아이들 800여 명을 추적하여 연구했는데 이 중 회복탄력성이 높은 3분의 1의 아이들은 어려움 없이 자란 아이들처럼 정상적으로 잘 성장했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을 높여야 한다는 말이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의 지나친 보호와 사랑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본인들이 겪는 시련과 고통을 더 크게 받아들인다. 평소 어려움이 없이 살고 엄마가 언제든지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줬기 때문에 작은 시련이 오더라도 엄마를 바라볼 뿐이고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처음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그 사람이 고맙고 일을 하는데 수월하다. 하지만 이 도움이 계속 반복되고 지나치게 되면 좌절감이 들기도 하고 무력감이 든다. 반발이 생길 수도 있다. 아이에게도 사랑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도움을 주거나 대부분의 일을 대신해주려 한다면 아이는 결국 반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원할 때마다 모두 들어주는 행동도 자제해야 한다. 아이에게 원하는 것들이 즉각 공급이 되어 버릇하면 아이는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어진다. 이 아이들은 절제나 통제하는 능력이 없어지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을 더 크게 느낀다. 그러므로 아이가 절제력을 기르고 회복탄력성을 키우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사랑은 거두어야 한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첫사랑을 한 번 떠올려보라. 처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다. 그 사람 옆에서 잠시라도 떠나고 싶지 않고 수시로 목소리를 들으려 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지치게 된다. 예전보다 조금이라도 소홀해지면 그 실망감은 더 크다. 결국 이런 사랑은 길게 가지 못하고 끝이 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엄마들은 아이를 평생 사랑한다. 간혹 행동이 밉거나 짜증이 날 수도 있어도 결국 엄마는 아이에게 사랑을 선택한다. 그런데 아이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다 보면 첫사랑처럼 아이에 대한 실망감도 더 커진다. 사랑을 받는 아이도 집착이라 생각한다.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사랑 표현의 방식이 잘못되면 아이는 사랑이라 느끼지 않는다.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는 팬들 중에 ‘사생팬’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연예인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캐내고 밤낮없이 따라다닌다. 심지어 연예인이 사는 집에 침입하기도 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사생팬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연예인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지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한다. 뭐든지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를 놓아줄 때에는 놓아주어야 한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무조건 최고라고 과대평가하는 사랑도 아이에게 좋을 것이 없다. 작은 문제가 생겨도 아이를 감싸고돌고 아이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키운다면 아이는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배우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 받으며 좌절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아이를 감정적으로 사랑해 주어야 한다. 감정을 벗어나서 아이에 대한 사랑이 아이를 통제하거나 아이에게 집착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게 된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은 꽃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고 한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꽃 저 꽃들을 뽑아서 한 데 모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꽃다발도 만들고 화분도 만든다. 그 꽃을 가꾸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잘 자라지 못하고 시들어버린다. 반면에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길에 가다가 그 꽃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는다. 꽃과 마음으로 대화하면서 꽃이 피어있다는 존재만으로 감사하고 그저 지켜봐 준다. 아이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꽃을 사랑하듯이 아이의 존재 자체에 감사하며 지켜봐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지나친 사랑은 서로를 지치게 만든다. 부부 사이도 권태기가 올 때에는 며칠간 방을 따로 써보면서 연애하던 분위기로 돌아가 보는 것을 추천하는 전문가도 있다. 아이에게도 밀당이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아이에게 지나치게 사랑을 표현하다 보면 엄마도 지치고 아이는 이를 집착이라고 느낀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자주 주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음으로 사랑해주자. 이 사랑이 집착이 되지 않도록 가끔은 아이를 놓아주고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쓰려고 하지 말자. 아이에게 사랑을 조금 놓는 순간 아이는 엄마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