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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울 령 May 29. 2022

제대로 '탓' 해보기

5.18 망언을 한 김진태가 더 나쁠까,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이광재가 더 나쁠까?


엘리트들은 권력형 비리로 처벌받은 정치인들이 다시 부활하도록 용서해주는 '국민 의식'이 문제라고 지적하나, 실상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그들을 용서하고 말고 할 선택지를 제시해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동안 선거 국면에서 '후보'라는 선택지는 시민이 아닌 '정당'의 마음대로 정해 왔다.


독일의 정치 전문가 얀 베르너 뮐러는 역사적으로 서구에서 나치와 같은 우익 포퓰리즘이 정권을 잡는 데는 항상 기성 보수 엘리트의 협조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문구를 인용했다. 


‘이제 보니 민주주의를 끝내기로 결정한 건 시민이 아니라 엘리트였구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언론'과 '정당', '시민'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건 정치 상식이다. 그러나 뮐러 교수는 현재 민주 정치의 위기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쉽게 '평범한 시민'의 의사결정 기능을 제한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현상을 '데모포비아(대중 혐오자)'와 유사한 감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8년 한 방송국 기자는 저널리즘 강연에서 '한국 언론의 기능이 서구에 못 미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한국 시민들의 의식 수준도 서구 시민 의식에 못 미친다고 애둘러 답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고난 이후인 현재도 같은 생각일지 궁금하다.


아마도 역사적 사건들 때문일 것이다. 가령 87년 민주화 이후 치뤄진 첫 직선제에서 군부 정권의 핵심 인사가 당선되고, 참여정부가 시스템 정치를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기록했던 결과들을 보며 평범한 시민의 판단 능력에 불신을 갖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매우 '협소한 사고'에 따른 결론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단편적 사실'에 따른 매우 비약적인 결론이 아닌가?


생각해보자. 민주화 이후 치뤄진 첫 직선제에서 시민들에겐 어떤 '선택권'이 부여됐었나? 또한 모든 걸 시스템으로 해결하려 했다고 평가 받던 참여정부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어떤 노력을 했나? 시민과의 소통 창구인 '언론'과 싸우기 바빴는데, 이를 단순히 보수 언론지의 문제로만 몰아갈 수 있을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게다가 SNS가 없었던 당시에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은 '투표'가 유일했다. 오히려 민주 정치 발전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실질적 권한을 쥐었던 쪽은 엘리트 정치인과 법조인들 아니었나? 그러나 현재 정치 상황을 우려하고 걱정하는 많은 명문대 출신 엘리트 '장년'들은 그 당시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다. 그러면서 '반지성주의' 내지 '언론'만을 탓하며 시민만 노려본다면시민들의 입장에선 참 당황스러울 뿐이다. (언론을 탓하는 것 역시, 시민들이 특정 언론의 잘못된 프레임 선동에 놀아난다고 보는, 데모포비아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당선된들, 양쪽 진영의 정치인 내지 지지자들은 강원도의 무고한 시민들에게 함부로 '탓'의 화살을 던져선 안 된다. 대신 이런 제한적인 선거 국면에서도 시민의 의무인 투표권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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