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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맨' 김사랑, 락덕후 내 청춘도 저물어간다

락 꼰대가 '슈가맨'을 보고 마음 울렁일 줄이야

by 아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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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기획사에서 근무 중이지만, 나에게 '아이돌'이란 크게 와 닿지 않은 단어였다. 지난 금요일 JTBC '슈가맨 3'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김사랑. 대부분 아리따운 여성 배우 김사랑을 떠올리는 반면 내게는 가수 김사랑으로 내 마음속에 새겨진 이름이다.


1999년,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당시 김사랑의 첫 앨범이 나왔다. 손으로 꼽아도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도 없는, 발가락까지 동원해도 20개가 넘어가는 21년 전 김사랑이라는 가수를 처음 접했다. 따지고 보면 김사랑이 데뷔했으나 '처음 접했다'는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김사랑이 데뷔한 시절을 운 좋게도 함께한 것이다.


어느덧 까마득한 시절이 돼서 그런지 '어떻게' 김사랑이라는 가수를 알게 된 것인지는 뚜렷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중학교를 입학하고 사춘기에 접어들 때쯤 난생처음 락(rock) 음악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김사랑의 앨범에도 관심이 생겼을 테다.


'나는 18살이다.' 앨범명 또한 패기 넘치는 김사랑의 첫 앨범이었다. 길게 늘어뜨린 장발에 세상에 무심한 듯한 표정의 김사랑 얼굴이 앨범 표지를 장식했다. 소년의 반항기가 묻어 나오는 앨범 재킷과 앨범명은 강렬했다.


모든 곡을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했다는 김사랑은 외국에서만 접했던 아티스트의 느낌도 물씬 났다. 락 덕후의 첫 발을 내디딘 시기였으니 김사랑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기에 한창 밴드 음악의 색깔이 짙었던 서태지의 솔로 앨범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제2의 서태지'라고 불린 김사랑이었고, 이 또한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됐다.


중고등학교생 때를 지나 대학생 시절까지 밴드 음악에 한창 취해있었다. 그때까지만 대중가요는 그저 시시한 음악이라고 생각한, 말 그대로 락만 음악으로 쳐주던 '락 꼰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에 반항하는 '락 스피릿'이 사춘기 시절의 나의 마음과 같아서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여러 나라의 신인 밴드의 음악이나 생소한 EDM 음악을 굳이 찾아 들을 정도였다. 음악에 대한 콧대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그때에도 내 플레이 리스트에는 항상 김사랑의 앨범이 있었다.


짧기만 한 주말이 시작되는 토요일에 무심코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검색어에 '김사랑'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배우 김사랑이 열애설이라도 난 건가, 결혼이라도 하는 건가.' 곧바로 검색어를 클릭했다. 이후 항목에 펼쳐진 건 '슈가맨 2' 기사들과 동영상이었다. '슈가맨.' 기대하지 못한 단어였다. 다시 자세히 보니 10대 시절을 함께했던 그 가수가 '슈가맨 2'에 출연한 것이었다.


'김사랑이 왜 '슈가맨 2'에 나와?' 슈가맨이라는 뜻은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를 뜻한다. '김사랑'이라는 가수와 '슈가맨'이라는 단어가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영상 속 김사랑의 눈가에는 주름이, 얼굴에는 살이 좀 붙어 보였다. "나는 마흔 살이다." 프로그램 영상 중 김사랑이 농담 섞인 말로 자신을 소개한 멘트였다. "나는 18살이다"를 외치던 소년이 불혹의 나이가 됐다. 자신의 대표곡 'Feeling' 부르는 김사랑의 목소리는 여전히 청아 했으나 세월의 흔적은 그대로 느껴졌다.


김사랑은 마흔 살이 됐고, 나는 서른다섯이 됐다. 중고등학교 시절과 풋풋한 대학교 새내기 때를 함께하던 가수와 나이를 함께 먹은 셈이다. 김사랑의 무대와 인터뷰를 보니 덩달아 내 10, 20대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김사랑의 노래가 몇 곡 더 나왔다. 그 노래들 안에는 잠시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이 담겨 있었다. '이래서 '슈가맨'을 보고 추억이 젖는구나.' 세 번째 시즌 중인 '슈가맨'을 보며 비로소 처음으로 이 프로그램이 왜 인기가 있었는지 실감 났다.


김사랑은 미처 내가 몰랐던 사이에 나만의 아이돌로 20년을 함께하고 있었다. 몇 년 전 기대를 안고 록 페스티벌에 무대에 오른 김사랑을 보고 실망한 적이 있었다. 음정이 불안하고, 크게 성의 없는 듯한 무대였기 때문이다. 물론 기대가 그만큼 컸던 탓도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김사랑'이라는 존재는 내 청춘을 함께한, '락 꼰대' 시절을 버티게 한 가수다. 이제야 조용필을 '오빠'라고 부르던 나이 지긋하신 팬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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