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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 홍보팀의 하루는 짧다

읽고, 쓰고, 묻고, 답하면 훌쩍 지나는 하루

by 아홉수

쉽게 봐도 너무 쉽게 봤다. 가요 담당 기자로 지내던 당시 연예 기획사 홍보팀의 업무는 단순해 보이기만 했다. '대강 보도자료 쓰다가 기자 미팅하겠지.'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 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언제나 밝은 웃음으로 맞아줬던 홍보팀 직원들의 고충을 이제야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다.


기획사 홍보팀은 어떻게 돌아갈까. 우선 기획사는 규모에 따라 홍보팀에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 범위가 제각각이다. 규모가 작을수록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한 팀에서 담당하는 영역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홍보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앨범 소개서를 작성하는 것부터 홍보를 위한 SNS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한 사진 촬영까지 해야 한다. 그나마 지금 근무 중인 회사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소규모 기획사보다 일하기 수월한 건 아니다.



<오전 8시~오전 10시>

기획사 직원들의 하루는 다른 회사보다 늦게 시작되는 편이다. 오전 9시 30분~10시 사이가 출근 시간이긴 하지만, 출근 시간에 맞춰서 하루가 시작되는 일은 드물다. 사건 사고는 물론 작은 단독이라도 터지는 날에는 시간에 상관없이 기자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 오전 8시에도 배포되는 보도자료가 있을 때는 이 시간보다 더 일찍 서둘러 준비할 때도 많다.


주요 외신도 꼼꼼하게 확인한다. 최근에는 K팝 그룹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미국 영국 등의 매체에서 K팝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졌다. 외신은 주로 구글을 통한 키워드 검색을 한다. 이렇게 기사를 찾다 보면 세계 곳곳에서 K팝을 꽤 비중 있게 다룬다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권에서는 K팝 가수들의 아주 작은 이슈들까지도 다룬다. 오히려 한국에서 찾지 못하는 소식까지도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기획사 홍보팀에서는 영어, 중국어 등 다른 국가의 언어 실력도 중요하게 본다.


국내 기사 모니터링도 실시간으로 한다. 일간지는 물론 인터넷 매체 등의 기사를 시간이 있을 때마 검색한다. 인터넷 기사와 더불어 커뮤니티들도 틈틈이 봐야 한다. 요즘에는 커뮤니티 사이트의 글 하나가 엄청난 파급력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커뮤니티 글 중에는 연예인들을 향한 악의적인 루머가 꽤 많다. 루머 하나가 커뮤니티 사이트를 몇 개를 돌면, 그 글은 한순간에 진실이 된다. 반면 연예인의 과거 잘못을 폭로하는 글, 목격담이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오전 10시~오후 12시>

당일 오후나 다음 날 나가는 보도자료를 작성한다. 가수 팀이 컴백할 때는 2주 전부터 여러 티저들이 공개되며 프로모션이 진행된다. 티저는 주로 포스터, 영상 등의 형식으로 이뤄진다. 하나의 콘텐츠가 공개될 때마다 팬들의 기대감도 덩달아 높아진다. 티저들은 가수와 팬을 연결해주며 분위기를 점차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에 맞춰 홍보팀도 티저 콘텐츠들을 보도자료로 작성한다. 갖가지 콘텐츠에 따라 작성하다 보니 보도자료 양 자체가 다른 산업에 비해 많은 편이다. 사진, 영상 티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글로 표현하는 보도자료의 한계가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트렌드를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소속 연예인들의 방송, 광고 보도자료를 검토한다. 방송사 혹은 홍보 대행사에서 나가는 보도자료 내용 중 소속 연예인의 정보가 틀리거나 누락된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한다. 간단한 업무인 듯 보이지만, 여러 팀에서 요청이 쏟아질 때도 있다. '틀린 정보가 그대로 나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 뉘앙스로 보도자료가 나가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기준을 갖고 보도자료를 살핀다. 잡지 인터뷰나 해외 행사 주최사 측에서 전달하는 질문지 또한 검토한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언제나 바짝 신경이 곤두서는 업무다.



<오후 1시~오후 3시>

소속 배우나 가수들의 다음 작품, 앨범이 정해지면 여러 팀이 모여 회의를 한다. 기획사 규모가 클수록 팀마다 맡은 역할이 뚜렷해서 분업을 통해 일이 진행된다. 팀마다 담당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서로 정보 공유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회의를 하는데, 배우나 가수의 활동을 준비할 때면 각 팀들이 바쁘게 돌아가는 탓에 회의할 짬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럴 때에도 홍보팀은 메신저를 통해서라도 각 팀의 정보를 계속 물어보고, 모아야 한다.


외부 정보에도 귀 기울인다. 이따금씩 담당 기자들과 만난다. 서로의 근황을 살핀 뒤에는 언제나 기자들의 질문에 쏟아진다. 나도 잘 모르는 질문들을 받을 때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기자들은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대부분 중요 정보들은 회사 내 임원진만 안다. 연예인의 활동 계획 등 민감한 정보가 세어나가면 영화, 방송사, 광고 등 얽혀있는 관계에 따라 서로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회사 내부 팀에서는 기자들과 접촉하는 홍보팀을 조심스러워하고, 기자들은 홍보팀이 회사의 모든 소식을 안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많다. 미팅 때 무조건 질문만 받는 건 아니다. 기자들과 얘기를 하면서 업계 동향이나 매체 현황 등을 들을 수 있다.



<오후 3시~오후 5시>

소속 배우나 가수들이 제작발표회나 인터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면 홍보팀도 동행한다. 감독, PD, 작가, 다른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영화, 드라마 제작발표회는 부담이 크지 않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진행되는 행사인 탓에 몇 명의 참석자에게만 관심이 쏠리는 탓이다. 하지만 기자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 기자간담회는 쉽지 않다. 언제 어떤 질문이 나올지, 연예인들이 어떤 대답을 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나름대로 인터뷰 예행연습이나 예상 질의응답지를 준비할 때도 있으나 예상치 못한 상황도 곧잘 벌어진다.


<오후 5시~오후 7시>

하루를 마무리하며 어떤 기사들이 나왔는지 정리한다. 혹시 보도 내용 중 오보 등이 없는지도 확인한다.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잘못된 내용의 기사들을 그냥 방치했다가 추후에 그 기사를 뒤 따라 쓰는 기사들을 통해 틀린 정보가 확대될 수 있다. 이 외에도 팀 업무 등에 필요한 내부 결제 등을 진행한다. 흔히 기획사는 다른 업종의 회사들보다 내부 체계가 허술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최근 기획사들은 재무, 회계, 인사 등의 구조가 체계적으로 변하고 있다.




기획사 홍보팀의 업무는 시간별로 정해진 것은 없다. 기획사는 연예인, 즉 사람이 이끌어가는 회사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돌발 변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연예인들의 작품이나 무대가 화려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 안에는 한 명의 연예인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스태프들이 있다. 홍보팀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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