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족쇄인 줄만 알았는데
부업으로 차린 무인카페를 운영한 지도 2년이 지났다. '회사'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벗어나 막상 제대로 된 '세상'에 나오니 새롭게 배울 것도 많고, 울타리 너머 민낯의 삶을 볼 때도 많다. 하루의 시작이 무인카페 청소가 된 지금은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됐다.
회사에서는 각자의 직급, 직책, 업무에 따라 보이지 않는 경계선들이 있었다. 적당한 긴장감, 적당한 편안함 속에서 모두가 무사 귀가를 기원했다. 하지만 선배를 따라 작은 홍보 회사의 직원이자 동업자로 주된 업무를 하면서도 무인카페 운영,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는 지금은 아까운 시간을 짜내듯이 쓰고 있다. 생각보다 이룬 것도 많지만, 이뤄야 할 것도 많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주말이다. 다른 업무야 잠시 쉬면 되지만, 고객들이 많아지는 주말에 무인카페는 더 손이 간다. 회사를 다닐 때는 주말에 최대한 늦잠을 자려고 했지만, 이제는 손님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할 생각에 침대에서 꾸물댈 시간은 별로 없다.
그날은 지난 평일 업무가 힘에 부쳤는지 침대에 몸이 붙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며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 보니 시간은 오전 1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점심때가 되면 붐빌 무인카페 걱정에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무인카페를 이용 중인 손님은 없었다. 편하게 청소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가 하루 매출이 어떻게 나올지 금세 걱정이 됐다. 같이 일하는 선배에게 월급을 받으니 고정적 수입은 있으나 단 둘이 일하고 운영하는 회사이다 보니 항상 마음을 졸일 수 밖에는 없다. 당장 홍보 업무 일이 모두 끊기는 순간이면 '고정 수입'은 그대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혼자 무인카페 청소하는 순간엔 여러 생각들이 서로 꼬리를 문다. 음악 소리에 맞추어 신나게 청소를 하다가도 갑자기 걱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던 회사에서 매달 월급을 받던 시절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하루의 시작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모두가 내 판단이고, 내가 선택한 일이므로 결국 잘 헤쳐나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퇴사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우연히 버스를 타다가 집 근처에 있는 부대찌개 집이 눈에 들어왔다. 회사를 다닐 때나 직원 겸 프리랜서 겸 자영업을 하고 있는 지금이나 집으로 가는 길에 언제나 보는 식당이었다. 왜 그랬을까.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박혀있는 '원조 부대찌개'라는 간판을 보자 눈물을 글썽였다. 정작 그 가게의 부대찌개는 눈물 나게 맛있진 않다.
'부대찌개 사장님 정말 대단하다.'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가게나 장사하시는 분들이 존경스러웠다. 부대찌개 재료들을 매일 구입하고, 아르바이트나 일하시는 분들의 월급을 주고, 가게 월세를 내고…. 직원으로만 있을 때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장의 고민을 알게 됐다. 그리고 뉴스에서 나오는 '불경기'라는 단어가 손님 수에 직결되고, 매출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 까지도. 상황이 어려워지면 재료를 구입하고, 월급을 주고, 가게 월세를 내기도 힘들 다는 것을 말이다.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는 밖에만 나가면 족쇄를 풀고 마음껏 세상을 호령할 줄 알았다. 그동안 생각하고 기획했던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다. 게다가 돈은 자연스럽게 뒤따라 오는 줄로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여러 일을 하다 보니 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분들의 인생에 겸손해지고, 때로는 묵묵히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돈은 어느 정도는 눈치껏 좇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고 회사 안에 있었으면 안정적이었을까.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나이가 찰수록 승진도 해야 했고, 상사와 후배 사이에서 소득 없는 희생을 해야 했다. 이 모든 것도 결국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결국 인생에 정규직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너무 멀리 있지 않은 내일을 위해 오늘 고민하고, 오늘 있는 대로 힘을 내보는 것이 아닐까. 누구는 운이 따라야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성공이 아니면 어떠하랴. 짐작하지도 못할 내일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삽질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