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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May 06. 2024

친구가 없는 삶

일상기록

연휴 마지막 날 저녁, 남편이 오랜 친구를 만나러 외출했다. 오늘 만나는 친구 말고도 남편에게는 오랜 친구가 많다. 그뿐만 아니라 회사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사적으로 만나는 경우도 많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 사람은 대체 인간관계를 어떻게 관리한 걸까, 궁금함과 부러움이 절로 일어난다.


나도 친구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많지는 않지만 오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가 몇 있었고 그중 몇몇과는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멀리 살거나, 시간을 내어 만나기에는 '현생'에 너무 지쳐 있다. 몇 년 전, 중고등학교 동창 다섯 정도가 모여 단톡방을 개설하고 일년에 한 번이라도 보자고 호기롭게 뜻을 모았으나 우리는 겨우 한 번 만나고서 그 뒤로 만나지 못했다. 각자의 일정을 맞추는 것부터가 문제였는데, 필경 이 모임이 자신의 다른 일정을 양보하게 할 만큼 중요하거나 비중있는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었겠지.  그 후 우리의 단톡방은 유령도 왔다가 깜짝 놀라 도망갈 정도로 조용하기만 하다.


대학 친구도 마찬가지다. 나는 대학 때 친구 여섯 명과 함께, 그러니까 일곱 명이 같이 다녔는데 우정(?)은 그때뿐이었다. 친구들은 나를 빼고 모두 고시공부를 이유로 졸업을 미루고 휴학을 하였으며, 그래서 4년만에 졸업한 건 나뿐이었다. 그리고 그 애들은 모두 졸업 후에도 오래도록 공부를 하거나 유유자적 여가를 누리며 백수생활을 즐겼다. 나는 갓 입사한 사회 초년생으로 하루하루가 너무 힘겨웠고 기성세대들의 온갖 부조리에 울분을 감추기 어려웠던 시기였다. 친구들을 만나 그 이야기를 토해내며 공감을 구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허탈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취직을 안하는 거야"


그런 중에 유일하게 한 친구와는 관계를 오래 유지하였다. 그 친구는 내가 두 아이를 낳아 키울 때에도, 뒤늦게 공무원시험을 준비할 때에도 옆에 있었고 우리 집에 몇 번 놀러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친구와의 관계는 내가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면서 정리되고 말았다. 그 친구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가 뜻밖에(?) 빨리 붙어버렸고, 그 사실은 친구에게 엄청난 충격이 된 게 분명했다. 친구는 나를 서서히 멀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완전히 끊기게 되었다. 나는 그 동생(다행히 동생에게는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을 통해서 친구의 생사라도 알고자 했으나 허사였다. 그렇게 나에게는 남은 대학시절 친구가 없어지게 되었다.


현 직장에서도 나는 동기가 없다. 나는 다른 기관에 공채로 들어갔다가 인사교류를 통해 이 기관에 온 것이기 때문에 동기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없고, 여기 오기 전 다녔던 기관에는 동기가 열몇명 정도 있긴 했지만 내가 공무원시험에 늦은 나이에 합격하여 그들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기도 했고 다른 기관으로 옮긴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동기'라고 부르기도 뭐하게 되었다. 작년인가, 동기 중 한 명이 투병 중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장례식장으로 달려가서 그들과 대면했지만 "왜 왔지?"라는 표정으로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던 사람들 아니었던가.


지금 몸담고 있는 기관에도, 10년 정도 다니니 얼굴 아는 이들도 제법 많아지고 점심 약속도 심심찮게 생기지만 그들 중 과연 몇 명에게 내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까. 6시에 일어나서 6시 40분에 집을 나서 7시 40분에 회사 도착, 저녁 6시까지 근무 후 7시 좀 넘어까지 세사대 강의를 듣고 일주일 중 두 번 정도는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 후 집에 헐레벌떡 뛰어와서 집안일 하고 애들 챙기고 겨우 잠드는 생활을 반복하는 나는, 그래서 일상에서 숨쉴 틈이 없다. 유난히 힘든 올해 상반기, 연휴인데 건명이가 자꾸 아프다. 내일 큰 병원에 검사도 예정되어 있는데 자꾸 아프다고 한다. 남편은 저녁에 짬을 내어 친구를 만난다고 나갔다. 그렇게 만날 친구도 없는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도망갈 구석도 없고 숨쉴 겨를도 없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마치 숨을 참고 물 속에 들어앉아 들이마신 조금의 호흡이 줄어들어가는 것을 느끼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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