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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May 09. 2024

건명이의 첫 입원

일상기록

건명이가 입원했다. 태어나서 첫 입원이다. 따지고 보면 태어날 때 산부인과 신세를 지니  생애 '첫 입원'은 아닐지 모른다. 암튼 출생 당시를 제외하면 건명이가 입원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디가 아파서라기보다는(아픈 게 맞긴 하지만) 검사를 위해서 하루 입원하는 거라 짐은 단출했다. 밍기가 어려서 큰 수술을 여러 번 받아 병원 짐 싸는 게 익숙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병원에 입원하는 건 늘 밍기였는데 그렇게 튼튼하고 운동 잘 하는 건명이가 환자가 되어 입원을 하게 되니 몹시 낯설었다.

병원 침대에 아주 편하게 누워계신 강건명 군

보호자용 보조침대가 그리 생경하지 않았다. 왠지 멀지 않은 과거에 누워봤던 느낌이다. 생각해 보니 작년 초, 밍기가 벨마비 때문에 5일 입원한 기억이 났다. 매년 아이들이 돌아가며 아플 줄은 몰랐다. 이정도 키웠으면 한숨 놓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덕분에(?) 나는 아플 권리가 없다.


정식 검사는 내일로 잡혀 있고, 오늘은 심전도와 엑스레이,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했다. 내일 검사 시간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검사 당일에야 시간이 정해진단다. 병원은 역시 불안정한 기다림의 장소.


진료과가 소아청소년과라서인지 같은 병실 환자들이 다 어린아이들이다. 오후에는 건명이 침상 건너편의 아이가 한 시간을 넘게 지치지도 않고 울어대어 '와 진짜 심하다. 저대로 밤새 울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지나가며 힐끗 보니 아이의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었다. 아주 작은 아이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순식간에 아이의 울음소리에 너그러워졌다. 아이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원했지만.


환자들이 누워 있는 침대마다 "두두두두" 하는 기계음과 "딩동댕"이라 해야 할지 "뿅뿅뿅"이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내가 모르는 각종 장치에서 나오는 알림음이 서로 질새라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건명이 건너편 침대에 새로 들어온 아이는 상태가 좋지 않은지 수시로 간호사가 와서 하염없이 아이 등을 톡톡톡톡 두드려 준다. 조용한 건 우리 자리뿐이다. 그렇잖아도 소리에 예민한 나는 아이의 입원이라는, 초연해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오만가지 소음들 때문에 머리가 터지기 일보직전이지만 달리 어찌할 도리도 없다. 이 긴 밤, 결코 지나가지 않을 것같은 기세로 마지못해 발걸음을 느릿느릿 옮기는 시간의 뒷모습을 나는 하릴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기적을 바라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가장 효율적인 치료방법을 모색하는 게 나은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고민과는 무관하게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을 테지만, 그래도 나는 내일 있을 검사에 마지막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 비록 그 기대가 하루도 안되어 헛된 바람으로 판명될지라도.

입이 짧은 건명이는 입원하자마자 "여기 부페 안 돼요?"라고 물어서 간호사들이 한바탕 웃었다. 녀석은 나보다 훨씬 씩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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