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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May 15. 2024

그래도 견뎌야지 어쩌겠어

일상기록

지난 월요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과장님을 뵈러 갔다. 이제 곧 공로연수에 들어가실 분이라 사무실에서 뵐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따로 시간을 냈다. 요즘 너무 힘들어서,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었고 아이처럼 칭얼거리고도 싶었다.


덕수궁길을 조금 걸어 핸드드립 커피가 맛있는 카페에서 과장님과 마주앉았다. 과장님과는 실제 같이 근무한 기간이 2주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서로 오래 알고 지내게 된 건 몇 년 전 같은 부서에 근무할 때, 휴게실에서 마주친 인연 때문이다. 그때 그분은 옆 팀 팀장님이었고, 나는 우울증이 막 발병하여 세상 모든 것이 다 힘들어서 틈틈이 휴게실 가서 멍때리곤 하던 시기였다. 혼자 그러고 있을 땐 누가 옆에 와도 달갑지 않았는데 그분과는 몇 번씩 마주치고 나니 어색함과 불편함이 누그러졌고 이야기하기가 편해졌다. 그렇게 서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중에 같은 부서에서 과장과 선임 주임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비록 내가 발령이 나서 함께 근무한 기간은 짧았지만.


나는 커피를 홀짝홀짝 마셔가며 과장님께 그간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과장님은 정말 힘들었겠다며, 어떻게 견뎠냐며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견뎌야지 어쩌겠어, 안 그래?"


나이가 지금보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그래도 견뎌야지" 혹은 "참아봐야지"라고 하는 말이 그렇게 서운하고 싫을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당장 못살겠다고, 더는 못하겠다고 비명지르고 소리치고 있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위로라고 하지, 정말 너무하네. 내가 앞으로 속 이야기를 하나 봐라, 이런 원망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가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니 알겠다. "견뎌야지"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도저히 못살겠다, 더는 못 견디겠다라는 비명이 절로 터져나오는 일들은 살면서 느닷없이 생긴다. 내가 그런 일들을 이겨내고 감당할 상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운명은 내 사정을 봐줘가며 시련을 던지지 않았다. 그런데 운명이 던진 시련이 너무 많고, 너무 무겁다고 하여 "나 안 해!" 하며 도망갈 수도 없었다. 갈 곳도 없고, 설령 눈앞의 어려움을 잠시 못본 체 하다가 슬쩍 눈을 떠 보면 시련은 빚에 이자 붙듯이 더 큰 덩어리가 되어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러니 너덜너덜해진 몸을 일으켜 어떻게든 그 상황을 견디고, 버티며 수습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견뎌야지 어쩌겠어" 하는 과장님의 말에 "그렇죠, 견디고 이겨봐야죠" 라고 답하며 나는 오래 전, 어른들의 그런 말에 무척 서운하고 속상했던 어리고 작은 내가 내 속에서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있음을 느꼈다. 봄볕이 화창하고 따스한 덕수궁길을 걸으며 과장님은 내게 "걱정 마, 내가 큰오빠 해 줄께!" 하셨다. "저 그럼 오늘부터 오빠 생긴 건가요?"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까르르 웃었다.


(10년차가 되니 그간 알고 지냈던 분들이 하나 둘 퇴직하거나, 퇴직 준비를 하시게 되었다. 믿고 의지했던 분들이 조금씩 떠나는 것을 보며 마음이 허전하다. 그 말은 이제 내가 누군가가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나는 아직 누군가를 보낼 준비도, 누군가를 도와줄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이를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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