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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un 19. 2024

짧은(?) 유럽 여행에서 느낀 점

나의 여행_27

6월 5일부터 15일까지 유럽에 있었다. 내가 아시아를 벗어나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예전에는 멀리까지 여행다니는 이들이 부러웠고, 나는 언제 나가보나 했다가(생각해보니 2020년에 짧게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다녀오긴 했다) 나중에는 그런 바람도 없어졌다. 어느새 현생에 매우 안주하게 된 것이다. 그런 바람을 가질 새도 없이 삶이 바쁘고 힘들고 팍팍하기도 했고.


아무튼 큰 바람이나 기대 없이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올랐고, 근 14시간만에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숙소는 바르셀로나의 번화가인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4성 호텔로 잡았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에서 3박 4일을 보내고, 이후 크루즈에 승선하여 7일 가량 머물면서 기항지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 내려 간단히 돌아보다가 바르셀로나에서 최종 하선하여 귀국했다. 그정도 기간에 한 일천한 경험으로 유럽을 알게 되었다고 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간단한 소회 정도는 적어볼 수 있으리라.


1.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정말 많다

어느 나라에서나, 그리고 어느 거리에서나 개를 동반한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두세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개들의 크기도 제법 컸다. 우리나라는 개를 주로 공원이나 하천변 정도에서만 볼 수 있는데 유럽에서는 번화가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영화 '참을 수 없는 사랑'에서 프로 '꽃뱀' 이었던 캐서린 제타 존스가 호텔에 개를 데리고 온 모습

그러나 유럽과 우리나라의 결정적인 차이라면 유럽에서는 '개모차'를 한 번도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모든 개들은 주인을 따라 자기 발로 걷고 뛰고 있었다. 내가 개를 키우지 않기 때문에 왜 개를 개모차에 태우는지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하여튼 우리나라는 개를 직접 걸리기보다 개모차에 태워서 다니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말이다. 개를 키우는 데에 산책이 필수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개모차의 존재 이유가 궁금하기는 하나, 유럽과 우리나라의 어떤 환경이나 문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개모차' 핀매량이 유모차를 앞질렀다는 기사 일부

2. 어린 아기들이 꽤 많다

유럽의 거리나 식당 등은 물론이고 크루즈 내에서도 어린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으며 자연히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투정하거나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투정하고 떼쓰고 우는 것, 그게 아기들이 하는 일이니까.

내가 아이들을 낳아 키울 때만 하더라도 거리에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는 엄마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요즘 우리나라는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많이 보이는 상황이다. 그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다가 유럽 나와보니 우리나라가 심각한 저출생 국가라는 게 확 와닿았다. 게다가 아이들에 대한 혐오와 기피는 또 얼마나 큰가.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일부 개념없는 부모도 한몫 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리나라의 저출생 분위기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까지 와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낯설지 않은 한국은 이제 역사책 속에나 있는 것일까.


3. (바르셀로나 한정) 대중교통의 상징색이 정해져 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거리를 구경하며 눈에 들어온 것은 노란색 대중교통이었다. 내가 탄 택시는 검정과 노랑이 섞인 색이었고, 모든 택시가 크기나 차종에 상관 없이 같은 색을 하고 있어서 멀리서 봐도 저게 택시구나 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버스도 쨍한 노란색이어서 눈에 잘 띄었다. 지하철은 안타봐서 모르겠지만 택시나 버스의 주요 색을 노란색으로 한 걸 보면 지하철에도 뭔가 비슷한 정책이 적용되지 않았을까 싶다.

바르셀로나의 시내버스

서울시도 예전에 택시 색을 '꽃담황토색' 이라는, 주황색 비슷한 색으로 통일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지방선거의 결과에 따라 너무 쉽게 바뀌곤 한다. 적어도 한 도시의 상징을 정하는 일은 집권을 어느 당 누가 하느냐에 좌우되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전 서울시장 때 잘 써먹었던 서울시 브랜드 'I SEOUL U' 를 현 시장 체제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된 현실이 문득 생각난다.


4. 달리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들렀던 바르셀로나나 프랑스 니스,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거의 어느 곳에서나 건강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요즘은 우리 나라도 조깅하는 사람이 예전보다는 많아졌다지만 그나마 그런 사람은 공원이나 하천변 등지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유럽에서는 뛰는 사람이 정말 아무데서나 보였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기에 평일 낮에 저렇게 땀을 내며 달릴 시간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유럽에서 달리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들의 업무여건이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다소 여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파도 병원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없고, 병원에 가면 상당히 부담되는 치료비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저토록 필사적으로 건강관리를 하는 게 아닌가도 싶었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동네 병원이 많고, 약국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는 곳을 유럽에서는 보지 못했다. 병원이라고 아주 가끔 보이는 건 치과 정도였고, 일반 의약품 정도만 판매할 것이 분명한 약국도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나는 혹시 몰라서 한국을 떠나기 전 종합감기약을 챙겼는데 결국 로마에서 감기에 걸려 버렸고, 가져간 약은 아주 유용했다. 안그랬다면 그런 약을 구하기 힘들었을 유럽에서 그냥 쌩으로 끙끙 앓아야 했을 것이다.

귀국해서는 곧장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의료 접근성이 우리나라만한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허나 그런 점 때문에 사람들이 평소 건강관리에 다소 소홀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아프면 바로 병원 가면 되니까.


5. 길거리 흡연이 매우 심하다

유럽 거리를 다니면서 모르긴 해도 아마 담배 한 갑 이상은 간접흡연을 한 것 같다. 그정도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무분별하게 흡연을 해댔다. 담배를 들고 있지 않은 건 어린 아이들 뿐일 정도로 모두가 미친듯이 담배를 피웠다. 이 인간들은 호흡할 때 산소가 아니라 담배연기가 필요한 건가 싶을 정도였다. 우리나라도 '길빵'하는 자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닌데, 유럽 사람들은 일상이 곧 흡연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cannabis', 즉 대마를 구입할 수 있는 점포를 볼 수 있었다. 그런 점포는 대부분 형광빛이 도는 초록 조명으로 장식했고, 캐나다산 대마가 잘 팔리는지 캐나다산을 들여놓았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대마를 접하는 게 엄금되어 있어서, 나는 그런 점포 사진조차도 찍지 않았다.

아무튼 유럽에 머무르며 나는 이 사람들이 '간접흡연' 이라는 용어를 알고는 있는지, 그리고 이들의 폐암 발병률은 어느 정도인지가 궁금해졌다. 흡연 문화에 있어서는 확실히 우리나라가 그들보다 나았다. 아주 많이.


6. 물과 화장실은 당연히 유료다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유럽에서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 물을 마시려면 따로 돈 내고 주문을 해야 했고, 화장실도 별도의 요금이 부과되는 곳이 많았다.(그래서 떠나기 전 남편이 미리 챙겨준 유럽 동전이 아주 유용했다) 화장실도 점포마다 책정 요금이 제각각이었고, 화장실 앞에서는 주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계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사람들을 관리하며 돈을 받고 있었다. 나는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무료 화장실을 딱 한 번 이용했는데, 무료답게(?) 화장실은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겪어보니 깨끗한 마실 물과 청결한 화장실을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우리나라가 참 좋았다.

귀국해서 들른 병원 옆 카페. 상시 비치되어 있는 식수의 소중함


7. 장애인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바르셀로나 그라시아 거리를 쇼핑하면서 몇몇 점포에 들어갔는데 점포에 지하나 2층 매장이 있는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엘리베이터나 휠체어용 리프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다못해 우리가 식사를 했던 타파스 전문 식당에도 지하에 있는 화장실 내려가는 계단에 리프트가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는 장애인용 리프트를 일부 지하철 역사에서만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유럽 거리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휠체어 탄 사람을 꽤 많이 볼 수 있었고, 휠체어의 종류도 일반적인 것에서부터 마치 경주용 자전거처럼 생긴 것, 세발 자전거처럼 생긴 것 등 다양했다.(우리나라에서 많이 보이는 전동 휠체어는 오히려 드물었다)

 유럽의 많은 점포에서 매장 내에 엘리베이터나 리프트를 둘 수 있는 것은 국토의 면적이 우리보다 넓고 인구밀도가 낮아서 공간 사용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장애인은 우리와 뭔가 다르다거나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가 아닌, 그냥 같이 더불어 사는 사람이라는 인식은 어떻게 하면 자리잡게 되는 것인지 새삼 궁금했다.


열흘 남짓 유럽에서 머물며 보고 느낀 것은 대략 이렇다. 언제 또 떠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때는 또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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