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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un 23. 2024

인생길 함께 돌아가기

일상기록

한국에서 고2라면 정말로, 전력을 다해 입시준비에 매진해야 할 때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바로 할 계획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고, 예전에 비해 직업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분위기라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어느 대학을 나와서 무슨 일을 하는지가 무척 중요하며, 출신 대학이 참 오랫동안 꼬리표로 따라다닌다. 그래서 10대 후반의 아이들이 그 좋은 나이에 인생의 즐거움을 뒤로 하고 어두운 교실에서 좁은 책상에 몸을 욱여 넣으며 깨알같은 글자들을 정복해 보려고 애쓰는 게 아닌가.


큰아이는 고1때는 갑자기 하락한 내신성적과 입시준비에 목숨을 거는 고등학교 분위기에 썩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퇴까지 고려할 정도로 많이 힘들어했고 우울감도 제법 깊어 보였다. 그러다가 올해 고2가 되면서 다시 마음을 바로잡았고, 게임을 좋아하는 생활태도가 아주 고쳐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는 의지가 제법 보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찾아왔으니, 학기 초부터 자주, 심한 어지럼증을 호소하던 아이가 뜻밖의 진단을 받게 된 것이었다.


처음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다시 더 큰 병원을 찾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본격적으로 치료가 시작되었고 검사와 치료로 학교를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게다가 아이는 5월부터 근 두 달간 감기가 떨어지지 않고 열이 자주 나서 애를 태웠다. 기침도 멈추지를 않았다. 아이가 기침을 해댈 때면 내 심장도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아이한테서나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이번엔 또 뭔가 하는 생각에 매일같이 신경이 곤두섰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는 아프지 않은 날이면 학교를 갔고, 그동안 해오던 과외도 꾸준히 진행했다. 그러나 최근에 과외숙제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아이와 그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아이는 2학년 들어 열심히 해보려 했으나 병원에서 그런 진단을 받은 후 왠지 모르게 공부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고 무기력해졌다고 했다. 그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인 나도 충격이 컸는데 당사자는 오죽했겠는가. 아이는 또 이야기했다. 전에는 수학시험 성적이 잘 나오진 않아도 수업내용에서 모르는 건 없었는데 이제는 수업을 잘 모르겠다고, 아이들이 수학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고등학교 생각이 났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한 번도 수업시간에 졸아본 적이 없었다. 공부를 좋아하는 모범생 기질에다 남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겹쳐 나는 수업시간에 늘 가장 열심이었다. 그러나 고1때 뜻하지 않은 사건이 생겨 나는 한동안 학교에 나가지 않았고, 그 시기를 거치며 수학이 망가졌다. 다시 학교에 나갔을 때 수학은 이미 내가 손 쓸 수 없을 만큼 멀어져 있었고 그 격차는 내 힘으로 좁힐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사교육을 지원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수학시간에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어느 날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나를 발견하고는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당연히 수학시험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어느 날 애들이 "00이(나)가 □□이보다 수학 못 봤대!"라며 수근거리는 소리를 듣고 붉어지는 얼굴을 애써 감추려 노력하기도 했다.


큰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딱 큰아이 나이 때에 겪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팠다. 이제 막 열심히 해보려던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 것이며, 자존심은 또 얼마나 상할 것인가. 아이는 학교에서 바보가 되는 느낌이 정말 싫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꼭 그렇지는 않았다. 학교 성적이 잘 안 나오면 바보인가?


나는 아이에게 바보라는 건 지금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이는 4월과 5월에 연속해서 결코 가볍지 않은 병을 진단받았고 치료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병원 잘 다니고 치료에 집중하며 하루속히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다. 병의 특성상 언제 완치가 된다고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기에 더욱 더 치료에 매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치료기간을 하루라도 줄일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공부에 대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해도 그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그대로 두면 되는 것이다. 공부는 몸이 나은 후 나중에라도 할 수 있지만 건강은 지금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지금은 몸이 낫는 것 외에 다른 건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다. 아이들이 수학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과연 모든 반 애들이 그걸 다 이해하고 있을 것 같냐고도 했다. 남들 눈에 공부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기에.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니까. 그럼 과외를 끊고 남는 시간엔 뭘 하나요? 아이의 질문에 나는 세 가지를 답해 주었다. 건강을 위한 운동, 영어공부 그리고 독서.


인생의 위기는 뜻하지 않은 때에, 예기치 못한 모습으로 덮쳐온다. 밍기가 태어나기도 전 뱃속에서부터, 그리고 생후 18개월에 입은 3도 화상으로 위기를 겪었다면 그에 비해 비교적 건강하고 순탄하게 지내왔던 큰아이는 지금 인생의 첫 위기가 닥친 셈이다. 사실 나도 아이와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이 방향이 옳은 것이며 제대로 된 것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늙어서 힘이 없고 판단력이 흐려졌을 때, 혹은 죽어서 없을 때 아이에게 첫 위기가 닥치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쉽지 않은 길이지만 같이 걸어가면 되니까.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볼을 만져주며 나는 힘내, 힘내, 라고 말해주었다. 그건 어쩌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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