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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un 23. 2024

"애는 어쩌고 왔어요?"

일상기록

방송에 나와 유명해진 이들의 결혼 소식도, 이혼 소식도 심심찮게 전해지던 와중에 한 아나운서 커플의 파경 소식이 있었다. 또 한 부부가 헤어지는구나..그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가 오늘 그 부부 중 아내가 올린 글이 기사에 검색되었다.

개인적으로 그 여자 아나운서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남긴 이 글은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랬지.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해도 유독 여자가 결혼하여 아이가 생기고 나면 "아이는?" 이라는 질문이 징그럽도록 따라붙곤 했지.


예전에, 건명이는 어리고 밍기는 태어나기 전 그대로 집에서 전업주부로 살기는 너무 싫어 오랫동안 후원해 오던 한 시민단체에 입사서류를 낸 적이 있었다. 그 단체에서는 입사요강에 성별과 장애 여부로 지원자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했고, 그때만큼 그 문구가 진정성 있어 보인적이 없었다. 그래, 여기라면 당연히 그러겠지. 나는 건명이를 재우고 나서 밤 늦게까지 지원서를 썼고, 다행히 서류전형에 합격하였다. 당연히 지원서에는 내가 아기엄마라는 점도 기재하였다.


면접 당일, 나는 건명이를 시아버지께 부탁하고 시민단체로 향했다. 총 세명이 면접자였고 가운데에 여자 한 명, 양 옆에 각각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내가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기도 전에 여자 면접관이 물었다. "애는 어쩌고 왔어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당황하였다. 시아버지께 맡기고 왔다고 했는데 그 뒤로 그 여자의 질문은 온통 아이 이야기 뿐이었다. 아이 있으면 일하기 힘들 텐데.. 아이 있으면 출장이 어려울 텐데.. 양 옆 남자들은 내가 그 시민단체의 주력분야와 관련하여 읽은 책이나 단체 후원 경력 등을 보고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지만 그 여자는 끝까지 요지부동이었다. "애는..."  그 여자의 질문은 그냥 그거 하나였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떨어졌다.


결과보다도 그 여자의 면접 태도에 분노했던 나는 단체 홈페이지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결과에 대해 이의는 없다. 내가 아이 때문에 떨어졌을 수도 있지만 아이가 있음에도 합격시켜 주려 했으나 내 역량이 부족했을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의 이력이나 능력에 대한 질문은 한 가지도 없이 애가 있다는 사실만 문제삼을 거였으면 대체 왜 나를 면접에 부른 것이냐. 내가 애 있다는 사실을 숨긴 것도 아니고 지원서에 애 있다고 썼고, 그걸 보고도 날 면접에 부른 건 아이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대놓고 문제삼지는 않겠다는 뜻 아니었느냐. 이렇게 면접에 간 시간이 아깝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고나서 나는 곧바로 단체에서 회원 탈퇴를 하고 후원을 취소해 버렸다.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출장길에 오르면 "애는 어쩌고?" 라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 여자 아나운서가 있고, 최근 개방형 직위 면접을 본 내 대학 친구는 면접관으로부터 "그 자리에 여자들이 잘 없는데 어떻게 잘 해볼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모든 연락은 엄마인 나에게 온다.(내가 급한 일로 정신이 없든 회의중이든 출장중이든 상관 없이) 여자, 그것도 아이 있는 여자라는 게 '핸디캡'이 되지 않는 세상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죽은 후 화장하고 남은 유골로는 성별을 판별하기 어려우니 그나마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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