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정신병자들에게
마블을 좋아한 지 어느덧 10년입니다. 코로나 시절 전까진 영화관에 마블 영화가 걸렸다 하면 부리나케 달려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직 영화를 보기 위해 용돈을 모았었죠.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부터 시작해서 <썬더볼츠>까지 마블과 함께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초등학생 때 처음 봤던 윈터솔져를 대학생이 되어서 하원 의원, 버키 반즈로 만났습니다. 오늘은 뉴 어벤져스인 썬더볼츠에 대해서 얘기해보려 합니다.
재밌는 영화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입니다. 네, 저 지금 무척 신납니다. 사실 <샹치, 텐 링즈의 전설>과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이후의 마블 영화에 계속해서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블이 <썬더볼츠>로 화려하게 돌아왔습니다. 마블 특유의 유머와 가벼운 분위기, 그리고 적재적소에 넣은 타이밍은 마블의 황금기 시절 영화를 보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의 메시지가 눈에 띄었는데요. <문나이트>에 이어 마블은 히어로 영화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해서 다룹니다.
영화는 옐레나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블랙 위도우> 이후의 옐레나의 심정을 솔직 담백하게 담아냅니다. 어릴 적 받은 레드룸 훈련으로 인한 트라우마, 언니인 블랙 위도우의 부고, 1년째 연락되지 않는 아빠, 무의미한 업무와 반복되는 일상. 옐레나는 건물 옥상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공허하다는 말과 함께 옥상에서 툭 떨어집니다. 항상 유쾌하고 가벼울 것만 같은 히어로 영화의 무거운 시작이었습니다.
옐레나에 이어 등장하는 등장인물들 모두 옐레나와 같이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애정결핍과 학대는 물론이고 생체 실험까지 다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로 인해 등장인물들은 시시각각 불안정하거나 어딘가 뒤틀려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이들이 서로 타협이 잘 안 되어도 공유하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외로움입니다. 영화는 이 '외로움'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히어로 영화에서 히어로의 역경과 고난이나 어떤 캐릭터의 서사는 사람들에게 덕질 포인트로 소비됩니다. 그냥 흥미로운 설정값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제작진들은 캐릭터의 매력을 더하기 위해 더 많은 설정을 써붙입니다. 그리고 캐릭터가 계속 양산되는 세계 속에서 누구의 서사가 더 자극적인지 대결을 펼칩니다. 불행할수록 캐릭터의 매력은 증가합니다. 그리고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의 기억에 더 잘 남을뿐더러 빌런의 경우 그의 행위가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그런 설정값들을 가진 캐릭터는 영화에 비치는 순간 외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오고 있을까요? <썬더볼츠>는 외로움을 통해 그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불행한 서사를 가진 등장인물들은 조울증, 무기력증,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등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서로 물어봅니다. 외로움을 어떻게 이기냐고요. 옐레나는 극 중 밥에게 마음속 깊이 밀어 넣고 모른 척한다고 답합니다. 제가 썼던 방법이기에 공감이 갔습니다. 처음엔 저도 무기력감과 우울감을 모른 척했습니다. 어차피 지나가는 감정이니까 지나갈 때까지 모른 척하고 있으면 나아질 거라 믿었습니다.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다시 찾아올지언정 그 순간만 버티면 다시 찾아오기 전까지 평화로워지니까요. 하지만 영화 말미에 옐레나는 이 질문에 다시 답합니다.
"내가 전에 했던 말은 틀렸어, 밥. 모른 척은 못 해. 그런 건 아무도 혼자 감당 못 해. 밖으로 꺼내놓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해. 텅 빈 느낌은 남더라도 분명히 더 가벼워질 거야."
<썬더볼츠>의 흥미로운 점은 정신병의 시각화입니다. 등장인물 중 밥은 조울증을 얘기합니다. "좋은 날들도 있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날. 그런데 나쁜 날도 아주 많지. 뭐가 어떻게 되는 말든 상관없는 날." 그리고 밥은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보이드'라고 칭하며 하나의 인격체로 분리합니다. 보이드는 그림자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타인을 그림자 속에 가두어 각자의 트라우마 속에 가둬버립니다. 밥은 보이드가 강하다며 트라우마 중 가장 나은 기억 속으로 숨어버리죠. 이 그림자의 모습은 트라우마와 정신병을 시각화하는 한편 옐레나와 밥의 과거를 보여주는 장치가 됩니다.
영화 마지막 밥과 보이드의 싸움은 처절합니다. 보이드, 즉 밥의 부정적인 감정과 트라우마는 밥을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외부 세계와 분리시키고 가스라이팅 합니다. 그런 보이드를 밥은 때려눕히지만 보이드는 타격이 없어 보입니다. 아무리 때려도 보이드는 타인이 아니고 밥의 일부입니다. 번아웃과 우울증에 힘들어하던 나날이 떠오릅니다. 당시 전 의사 선생님에게 우울감은 마치 괴물과 같아서 나를 늪으로 끌어들인다고 토로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저에게 우울감은 괴물이 아니고 나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르고 달래주고 신경 써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치 아픈 아기 고양이 같은 존재라고요. 보이드는 없앨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보이드를 달래는 방법은 있습니다. 외롭고 힘든 우리를 위해, 밥을 위해 썬더볼츠는 끝까지 함께 해줍니다. 꽈악 끌어안고 말이죠.
이 영화가 '외로움'이라는 키워드를 주력으로 잡으면서 스토리 진행의 중심에는 '탈출'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벗어납니다. 옥스 데이터 저장소에서, 보이드의 그림자에서, 공허함에서, 외로움에서. 외부와 단절되고 갇히지만 썬더볼츠로 뭉쳐 다 함께 탈출합니다. 처음엔 서로 믿지 못해 혼자 나간 것 아니냐 하지만 공간의 특성상 영화 내내 혼자 나갈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다 같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외로워하는 등장인물들이 '함께'하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려줍니다.
여러분은 현재 외로우신가요? 분명 괜찮은 삶을 사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아픔을 꺼내놓고 어루만지며 그나마 가볍게 만들 방법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잠시라도 썬더볼츠가 여러분을 숨이 막히도록 안아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