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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커 Oct 22. 2022

컬러링이 왜 서울사이버대학이세요?

드립으로 흘려넘겼던, 한번도 진실로 답변하지 않았던 이유

010-XXXX-XXXX.

내 휴대폰 번호를 누르고 잠시 뒤 울려 퍼지는 컬러링.


"서울사이버대학을 다니고 나의 성공시대 시작됐다!"

"서울사이버대학을 다니고 나를 찾는회사 많아졌다!"

"서울사이버대학을 다니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


통화가 통화로 끝나는 관계를 제외하면 누구나 한 번쯤 내게 묻는다.

대체 왜 컬러링이 서울 사이버 대학이냐고.

원체 농담을 좋아하고 기행을 자주 벌이는 나의 캐릭터에 맞춰

"그냥 공짜고, 재밌잖아요. 교직원인 줄 알고 스팸전화도 중간에 끊어요"

라고 답하곤 하지만 사실 이유는 다른 것이다.


나는 서울사이버대학 CM송을 잊지 않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서울사이버대학 CM송을 통해, 잊지 않아야 할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컬러링으로 설정해 둔다.


먼저, 서울사이버 대학교 CM송은 합목적적 크리에이티브다.


누군가 대리운전 광고를 바꿔보겠다고,

장초수의 심오하고 멋진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나는 그 광고가 아무리 멋지고 크리에이티브해도, 기존의 광고를 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광고는 오로지 그것의 목적을 얼마나 잘 달성했느냐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리운전은 99% 취중에 이용하는 서비스다.

취하면 기억도 흐릿하고, 익숙한 쪽이 아니면 손이나 머리가 꼬여서 이탈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

이러니 손쉽게 기억하고 부를 수 있는 번호를 배정받고, 그것을 기억시키는데 집중하는 것이다.


내 생각과 세계를 설득하려는 순수 예술이 아닌 이상에야,

광고주와 브랜드가 원하는 목적을 해내는 것이

광고인과 광고 대행사의 존재 이유이고 그것을 지켜내는 광고인을 나는 좋아한다.


서울사이버대학교의 케이스로 돌아와 본다면, 이 케이스는 아주 합목적적 크리에이티브다.

사이버대학교는 평균적으로 한 학기에 150만원 가량의 등록금을 지불해야 하고,

몇 년동안 직업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꽤 고관여의 서비스이다.

하지만 학벌의 서열화와 편익의 수준이 비교적 투명한 지표로 공개되는 일반 대학교와 달리,

이름을 제외하면 사이버대학교 간의 확실한 편차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고관여의 서비스이지만 구매 고려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 제공이 미흡한 시장인 것이다.

이런 경우,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편익에 대한 기대치를 쉽고 직관적으로 전달해

구매 고려군으로 진입하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의 목적일 것이다.

서울사이버대학교의 CM송은 이런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짧은 세 줄의 가사 안에 브랜드 언급 충실하게 하고, 편익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학문의 요람이 아닌 커리어 패스 개발에 초점을 둬야 할 사이버 대학에 걸맞는 편익으로.

흔히들 세일즈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구매 고려군 진입이 아닌 구매 유도를 위한

크리에이티브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광고는 원래 존재 목적 자체가 직접적인 구매 유도에 있지 않다.

(심지어 이 사실은 대학교 광고학개론 1교시 쯤에 배운다.)

그 차이를 알고 있는 광고인이 쓴 합목적적 크리에이티브란 생각이,

내가 서울사이버대학교 CM송을 좋아하는 첫번째 이유다.


두번째 이유는, 이 크리에이티브가 예산과 매체의 핑계를 대지 않는 광고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짜치는 프로젝트라고 말하는 캠페인이 있다.

브랜드의 카테고리나 목적도 짜침의 정도(?)는 영향을 미치지만,

사실 대개 예산이 짜고 매체가 주목도가 낮은 경우 짜침의 오명을 쓰는 경우가 많다.

나 자신도, 꼴랑 몇 천만원 제작비로 유튜브에 조금 송출되는 바이럴 필름이라고

짜친다고 눈살을 찌푸렸던 경험이 있다. (매우 반성하고 있다)


그런 짜침을 부르짖는 광고인들을 비웃듯,

서울사이버대학교 CM송은 매체와 예산의 한계를 넘은 효과를 보여주었다.

CM송 제작비가 아무리 비싸봐야 영상 한 편 각 잡고 만드는 돈만 할까.

라디오 광고가 사장되어가는 매체라는 생각은 너무 당연해서 반론도 불러오지 못한다.

짜치는 광고의 모든 요건을 충족한 이 캠페인은 치밀한 전략과 선명한 크리에이티브로

세상에 기억되었으며 브랜드의 목적을 달성하였고 밈이 되기까지 했다.


이 CM송을 들을 때마다 나는 크리에이티브는 주어진 조건에 핑계를 대지 않고 빛난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금 되새긴다.


서울사이버대학교 CM송을 설정한 이유는 이런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사실을

잊지 않고 자주 상기하기 위함이다.


아직 심지가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때론 광고의 목적보다 화려하고 삿된 것에 마음이 가고

매체와 예산을 원망하며 캠페인 시작도 전에 기세가 꺾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광고를 떠올린다.


개선 장군에게 노예가 외쳤던 "메멘토 모리" 처럼,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잊어 균형을 잃고 위태로워진 크리에이티브를 하지 않기 위해.


P.S 이런 엄숙한 이유 말고도 이 CM송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는데,

바로 한국의 21세기 크리에이티브 중 유이하게 진짜 밈이 된 광고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불 좀 꺼줄래의 에센코어)

밈에 대한 이해도가 극히 낮은 광고인이 가끔 광고로 억지 밈을 만들려는 꼬라지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데 (심지어 밈을 만들려는 광고라고 직접 언급하기까지 한다!)

이 크리에이티브는 쏙쏙 박히는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로 진짜 밈이 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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