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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시인 Sep 29. 2017

Chapter.0 여행, 그러 ‘나’의 시작

Day7.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Pokara,Nepal 170104

해발고도 1700미터, 지누의 차가운 새벽 공기가 온천의 따뜻한 기운을 품은 나를 깨운다.

전날 저녁, 전우애로 똘똘 뭉친 네 명의 해군사관생도들과 나는 지누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30분을 걸어 온천에 도착했다. 나흘 전, 새벽에 경험한 온천의 풍경과는 달리, 꽤 많은 사람들이 좁은 탕에서 옹기종기 모여 피로를 풀고 있었다. 땀에 절은 우리는 재빨리 샤워를 하고 따뜻한 기운이 샘솟는 온천을 향해 뛰어들었다. 따뜻한 물이 ‘피로야 가라’ 호통치는 사이, 노곤하게 주변 경치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시 잠겼다. 고요한 명상의 틈을 타 피로가 도망간 사이, 솟구치는 열의 기운을 가라앉히기 위해, 온천 주위를 세차게 흐르고 있는 차가운 계곡물로 첨벙 뛰어들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 나의 온몸 구석구석을 마사지한다.

다리를 건너 목적지를 향해 나가는 크리샤

'우와'인지 '와우'인지 모를 탄성이 절로 터져나온다. 전우애로 똘똘 뭉친 나머지 네 명 또한 나를 따라 계곡으로 첨벙 뛰어들며 시원한 환호성을 내지른다. 금세 온화한 온천의 분위기가 'HOT'하게 술렁인다. 그 광경을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지켜보던 중국인, 말레이시아인, 러시아인들이 '전사의 후예'처럼 차례차례 계곡물에 뛰어든다. 여기저기 쏟아지는 탄성과 웃음소리, 그렇게 우리는 고요한 온천의 분위기를 주도했고 우리의 마지막 밤을 자축했다.

지누의 아침, 누군가가 자고 일어난 빈 자리가 꽤나 허전하다, Jhinnu

지난밤, 가슴 뜨겁게 온천의 분위기를 즐긴 우리지만, 차가운 공기처럼 냉정한 시간이 어느새 다가와 헤어짐의 순간을 알린다. 그래 우리는 이제 헤어져야 한다. 나는 포카라로, 그들은 그들이 정해 놓은 스케줄로 길을 달리해야만 한다.

지누 게스트하우스

따뜻한 티 한 잔을 마시고, 마을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빼곡히 들어찬 나무와 풀, 촘촘히 구성된 흙과 돌을 헤치며 1시간 남짓 길을 걷는다. 마침내 갈림길에 마주 서게 된 우리.

마지막 갈림길에서 4명의 전사, 크리샤와 함께 기념 사진

이틀 전, 비록 눈이라는 복병을 만나 MBC라는 목적지까지 올라가진 못했지만, 덕분에 난 너희들을 만났고, 다음 날, 무리하게 정상에 오르다 고산병을 얻었지만, 난 너희들과의 추억을 얻어서 참 좋다. 고산병은 단 하루의 고통을 안겨 주었지만, 너희와의 추억은 내 기억이 사라질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고, 각자의 발걸음을 돌린다. 고맙습니다. 친구들. 지금처럼 건강히 군생활도 헤쳐나가길! 

그들은 란드룩으로, 우리는 시와이로 발길을 옮긴다

나와 크리샤는 마지막 남은 하산을 준비한다. 아침밥을 먹지 않았기에, 최초 출발지였던 시와이에 도착하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과 계란을 반드시 먹을 생각이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길이 완만해지자 모터 달린 듯 빠른 걸음으로 시와이에 도착한다. 크리샤와 나는 최초의 출발점이자 최후의 도착지에서 최고의 만찬을 즐긴다.

쉬어가는 길에 아주 예쁜 꼬마 단독 사진, 사진을 보내주고 싶어도 보내줄 수가 없어 안타깝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수십 마리의 염소떼가 축복하듯 길거리로 쏟아진다. 처음과 끝을 수미쌍관으로 장식하는 양과 염소의 떼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염소에게 왕관을 씌워주고 싶다. 고맙습니다.  

쏟아지는 염소들, Thank you, Siwai

식사를 마치고 나니 첫날과 같은 택시운전사가 크리샤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산촌 다람쥐>까지 가려면 울렁꿀렁 비포장 도로를 지나 마주오는 차와 지그재그, 앞서가는 차와 엎치락뒤치락 곡예를 다시 한 번 펼쳐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우리를 포카라까지 데리고 가면, 7일간 함께한 크리샤와 이별을 마주하게 된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자, 난 자꾸 마음이 복잡하다. 크리샤가 서운하지 않으려면, 팁을 얼마나 주어야 할까? 속세로 향한 도로 위에서, 바보처럼 나는 세속적 놀음을 하고 있었다.

걷는 도중 활짝 핀 장미 한 송이를 사진에 담는다.

일단, 식사를 같이 하자고 크리샤에게 제안했다. 포카라를 감싸고 있는 페와 호수가의 카페에서 점심을 함께 먹는다. 나와의 이별이 아쉬워서 그런 것인지, 이미 내가 팁을 많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감지한 탓인지, 크리샤의 표정이 좋지 않다. 피곤하냐고 물어봐도, 쓴웃음만 짓는다. 결국 점심을 먹고,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팁을 그에게 쥐어 주고 우리는 조금은 어색하게, 이별을 고한다. 페이스북에서 보자는 말과 함께. 한국 오면 연락하라는 말도 안 되는 약속과 함께. 버스 타고 돌아간다는 크리샤의 뒷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본다. 고맙습니다. 크리샤. 넌 내게 최고의 길동무였어

페와 호수에서 마지막 만찬 with 크리샤, Pewa Lake

이별은 나이를 먹어도 낯설다. 크리샤와 헤어지고 난 뒤, 찜찜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그냥 가진 돈 다 줄 걸 그랬다고 자책한다. ATM기에서 '단기 대출'과 '계좌 인출' 버튼만 잘 구분해서 돈을 다시 찾으면 되는 것인데, 어쨌든 그는 이미 떠나고 여기에는 나밖에 없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 대한 오해는 미지수로 남겨 둔 채, 페와호에서 마지막 남은 이별을 마주했다.  


이별은 아프다. 하지만, 감내할 수 없는 이별은 없다. 결국에는 시간이 모든 것을 치료해 준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누군가는 시간의 약을 구하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는 사람의 약으로 지금의 아픔을 재빨리 치유하는 방법도 있다. 아무래도 좋다. 피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 감정을 잘 소화해야 한다. 그래야 내 것이 된다. 오늘 여러 명의 사람과 이별을 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슬픔이 내게 찾아왔다. 이 슬픈 감정마저도 '나마스떼', 흔쾌히 나의 심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이 감정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지금의 네팔 히말라야 여행은 꽤 로맨틱, 성공적인 끝맺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롭고 고요한 페와 호수, 이곳엔 연인과 함께하고 싶다.

안녕 H. 6일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드디어 나는 포카라로 다시 돌아왔어. 비록 6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히말라야 트레킹은 내게 너무나 많은 고마움을 남긴 것 같아. 우연을 가장한 수많은 인연들에게 가슴 깊이 고맙다는 말을 건넨 것 같아.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는 것. 당연한 삶의 이치를 항상 머리 속에 염두에 두고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이별은 언제나 늘 서툴고 어려운 일인 것 같아. 내게 있어서 만남은 정말 기쁜 일이지만 이별은 정말 무서운 일이란다. 우연한 만남으로 서로가 인연을 맺고, 홀린 듯이 사랑을 하고, 사랑이 식은 다음 이별을 하는 윤회 패턴. 너 없으면 죽을 것 같은 미친 사랑의 불꽃이 마치 꺼지지 않을 듯 활활 타오르다가도, 어느 순간 거짓말같이 너 있어서 죽을 것 같다고 서로를 향해 미운 이별의 고드름을 차갑게 찔러 대는 것. 그렇게 혹독한 이별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면, 언젠가부터 만남 자체를 두려워하는 불행한 마음이 내 안에 넘쳐나기도 해.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많은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편이야. 고2 때 2주 사귄 여자 친구부터 5년간 사귄 바로 직전 여자 친구까지. 나에게는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자, 나의 반면교사이자, 사랑교사인 같아. 그들과의 혹독한 이별이 있었기에 나를 반성하고 깨닫는 소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던 것 같아. 아마도 그 때의 가슴 시린 아픔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다시 사랑이라는 인연 속으로 첨벙 빠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야.

그.러.나.

이젠 그런 아픔은 나의 벗 '시행착오'와 함께 이곳 페와호에 남겨둔 채, 떠나고 싶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던 히말라야에서 겪은 이 소중한 경험만 가슴에 품은 채로 말야. 그래서 지난 크리스마스 때, 우연을 가장해서 기적같이 내 앞에 나타나 준 네가 더욱 소중하고 고맙다.  

페와 호수가 바라보이는 까페에서 오늘의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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