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붕시인 Apr 01. 2024

골프가 체질 EP.2

슬기롭게 위기를 넘기는 방법

“뽀올~”

청량한 가을 하늘 너머 맑고 고운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너도 나도 희희낙락 즐거움을 나누는 순간, 순간을 일년처럼 오직 한 남자만이 티박스 한가운데를 서성이며 목이 빠져라 공의 궤적을 추적하고 있다. ‘그만 내려와…’ 동반자의 만류에, 미련 한 가득 가슴 속에 담은 뒤, 후회와 한탄 몇 스푼 집어넣고 분노와 체념을 섞어 상대방에게 포효한다.

‘해저드야?’, ‘아니, 오비지…’ 이미 떠나간 공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때늦은 후회와 폭발적인 분노로 아무리 스스로를 책망해봐도 나에게 남는 것은 결과에 대한 쓰라린 한숨뿐. 높디 높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들숨 날숨 템포 조절한 뒤, 그저 담담하게 다음 샷을 준비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인생과 닮은 골프?

우리나라 대표 만화 작가 이현세 화백의 국내 최초 골프만화 ‘버디’에는 훌륭한 명언들이 작품을 수놓는다.


‘골프를 보면 볼수록 인생을 생각하게 되고 인생을 보면 볼수록 골프를 생각하게 된다.’


BBC 골프해설가이자 칼럼니스트였던 헨리 롱허스트의 말처럼, 라운딩의 과정은 우리의 인생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시간과 공간의 압박에서 벗어나, 홀에 반드시 집어넣고 말겠다는 일관된 목적을 가지고 드넓은 필드를 바라보며, 홀로 비장하게 티박스에 올라설 때를 상상해보자. 마치 명랑한 아가들의 응원을 받으며 출근길을 터벅터벅 나서는 아비의 무게와 닮아 있지 않은가? 라운딩이 시작되면 시험지를 받아든 수험생처럼 매순간 집중하면서 내가 그려내는 한 샷, 한 샷에 대해 정답지를 써내려가며 수많은 감정들을 쏟아낸다. 그런 과정이 한 데 모여 ‘버디’를 그리면 친구들의 축복과 함께 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고, ‘파’를 그리면 파안대소 웃을 수 있고, ‘보기’가 되면 그린을 바라보며 애먼 홀만 째려보기 바쁘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녹색 잔디 위의 공에 우리는 수만가지 감정을 대입한다.


골프는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이지만, 우리는 동반자에게 반드시 영향을 받는다. 내가 그리는 행동 하나하나를 동반자는 대놓고 또는 넌지시 관찰한다. 그런 동반자의 눈빛에 때로는 무너지기도 하고 가끔은 우쭐대기도 한다. 나의 샷을 지켜보고 있는 동반자가 있기에 나의 행동도 의미를 가진다. 오비가 된 나의 샷이 되레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다면 나의 후회와 한탄은 후련한 안도감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필드 위에선 동반자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 때에 비로소 나는 꽃이 되거나 똥이 될 수 있다. 그렇다. 더불어 산다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는 매너를 잊지 않고 감정의 중심을 잡으며 살아야 한다.


실패는 뒤로하고 앞만 바라본다

22년 8월, 윈덤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주형의 쿼드러플 보기가 큰 화제였다. 1라운드 첫번째 홀에서 김주형이 그린 쿼드러플 보기에 시청자는 그 경기를 보기 꺼려했고 김주형은 모든 이의 시야에서 멀어져 버렸지만, 그가 가진 진정한 힘은 감정의 중심을 바로 세운 마음가짐에 있었다.


“쿼드러플 보기를 했지만 최선을 다하면 예선은 충분히 통과할 것 같았다.” 라는 약관 20세 골퍼의 뜨거운 멘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스코어를 서서히 녹이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2000년대 출생 최초 우승, 역대 두번째 최연소 우승, 타이거 우즈보다 빠른 우승이라는 수식어를 본인의 것으로 모두 채워 버렸다. 마침내 그는 PGA 모든 대회의 출전권을 획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22년 윈덤챔피언십 마지막 날 김주형, 1R 첫 홀을 쿼드러플 보기로 시작했지만, 골프 장갑을 벗는 순간, 그는 누구보다 활짝 웃으며 경기장을 나왔다.

실패는 두렵다. 가슴 속에 남아있는 미련이 후회와 한탄을 양념 삼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더불어 사는 우리이기에, 카트에 남아있는 동반자는 그런 아픔을 목격할 때마다 큰 목소리로 외치며 앞으로 나아가자고 격려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방금 망친 드라이버 샷이 결과의 끝은 아니다. 나에게는 송곳 같은 아이언이 남아있고 껌딱지처럼 붙어버릴 어프로치도 남아있고 귀신같이 쓱 빨려 들어갈 퍼팅도 남아있다.


그래서 한 홀이 끝난 후엔 버디도 할 수 있고 파도 할 수 있고 아쉽지만 보기도 할 수 있다. 그러니 한 번 무너졌다고 실망하지 말자. 우리에겐 아직 17개의 홀이 남아 있으니까. 순간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우리는 한 홀이 아니라 한 라운딩을 망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실망한 동반자를 향해 훌륭한 동반자는 더욱 크게 외쳐야 한다.


“뽀어, FORE” 

*FORE의 사전적 의미 : 앞부분에 위치한, 앞쪽으로, 공 가요! 


청량한 가을 하늘을 벗삼아 녹아내린 멘탈을 부여잡고 앞을 향해 나가보자! 언제나 내 곁엔 든든한 동반자가 희희낙락 즐거워하고 있을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골프가 체질 EP.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