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이제는 자취를 감춰갈 무렵 노을이 진강산 봉우리에 걸치었다.
바람이 불적엔 차락차락거리던 수천수만의 종소리 대신
논에는 잘라놓은 볏짚만 뒹굴고 있다.
그렇게 바알갛게 달궈진 사잇길로 아비와 어린 아들이 걸어간다.
아들을 태운 구루마를 보며 거뜬없다던 처음의 허세는 어디 가고,
아빠는 점점 말이 없어졌고 가뿐 숨소리만 들리 운다.
그렇게 산책은 때론 뜻하지 않게 노동이 되곤 한다.
"아빠, 우리 집 고양이들은 언제 죽어?"
뜬금없는 질문이 헐떡이는 아비의 가슴에 파고든다.
몰래 숨겨놓은 쪽지를 들킨냥 날씨보다 더 서늘한 기운에 쭈뼛하다.
"왜 그런 걸 물어?
태연하게 대답하려 하지만 이미 구루마는 멈추었다.
"고양이들도, 사람들도 정해진 만큼 살았으면 좋겠는데..."
아들은 고양이의 나이가 마치 건전지처럼 딱 정해져 있길 바랐다.
뜻밖에 일찍 떠난 고양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어쩔 줄 몰라했다.
건전지처럼 수명이 정해져 있다면
그 아픔이 덜할까?
아니 그 이전에 건전지라 해도
그 끝나는 날을 예측할 수나 있을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하고,
아비는 무어라 설명했는지 기억을 잘 못한다.
아들에게 고양이 중 유난히 예뻐하는 고양이가 생겼다.
그리고 그 애정이 커져가자, 이별이 두려워진 모양이다.
아비가 그렇게 잊고 살고자 하였던 그 단어를
이제 아들이 맞이하고자 하는 순간이었다.
아비가 벼 익는 줄 모르고 사는 동안
아들은 그렇게 자라나 있었고,
아비도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해 버렸다.
"갈 길이 멀다. 어서 가자."
한없이 길어진 그림자를 끌며
아비의 구루마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