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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잉 Apr 06. 2021

엄마인데 페미니스트인 게 가능해?

우리 딸은 더 나은 사회에 살아야 하니까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여성학 수업은 어쩐지 어렵고 기괴하게 느껴졌다. 마냥 놀고 싶고 혈기만 왕성했던 때여서 그랬을까?  개인의 본성을 억압하는 결혼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외도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만 생각나고 다른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여성으로 스무 해 넘게 살면서 처음 접한 이론이 이렇다면, 페미니즘은 나와 영원히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취업 준비 기간 동안 비슷한 자격 요건을 갖춘 스터디원 중에 유독 남자 구성원만 빠르게 취업이 될 때도 그저 개인의 실력이라고만 생각했다.


여성으로서 느낀 '현타'는 다름 아닌 임신 기간에 찾아왔다. 출산 후 몇 개월을 쉴지 결정하는 절차에서였다.임신 소식을 말하고 휴가 계획을 제출하는 그 순간까지 여기저기서 들었던 얘기와 통계 등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했는데, 어쩌면 내 얘기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같은 기업에 8년째 근무하던 한 친구는 회사에 임신 소식을 전하자마자 권고사직 권유를 받았고,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던 한 후배는 출산 후 3개월 만에 돌아온 상사가 안쓰러우면서도 자신도 그렇게 해야 하나 싶어 답답해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2020년 4월 기준 통계청 자료만 봐도 1554세 기혼여성 6명 중 1명은 육아와 결혼 등으로 일을 중단해 경력단절 상태라고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9개월의 육아휴직을 내고 지금은 복직해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고유의 문제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지난 날의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부당함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물타기'하려고 노력했다면,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게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한 개인이 구조적인 문제에 치여온 일상을 좀 더 여실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나 역시 '기혼 여성'과 '페미니즘'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어머니'이자 '아내', 또는 '며느리'라는 지위는 가부장제를 잉태하는 결혼제도의 핵심 구성원이기에 개인의 선택과 자율성, 평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과 공존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혼 여성, 혹은 아이가 있는 여성이야말로 남녀 불평등의 간극을 좁히는 주체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을 찾고,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아이에게 성평등 교육을 실천하면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페미니즘이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남자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남성의 세계관과 경험만을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로 만드는 힘을 조금 상대화시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내가 이해한 페미니즘이 맞다면, 이 철학은 앞으로 우리가 자녀가 살아갈 사회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 브런치북에는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와 그 이후의 했던 행동, 책과 영화를 보며 든 생각, 개인적인 경험 등을 담았다. 알게 모르게 여성으로서 받았던 차별을 드러내거나 안경을 쓰는 등 이른바 '꾸밈노동'에 반대해 썼던 글도 여기에 포함했다. 기혼 여성의 글 쓰는 모임인 '부너미'에서 읽은 책의 서평도 함께 엮었다. 


이런 시도가 사회에 작은 영향이라도 미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딸을 키우며 이후의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든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내가 했던 고민을 기록하기 위해 이 책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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