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같은 속도로 고등학생이 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환이 떠나고 얼마지않아 타운에서 한국인 모녀를 만났다. 마트 앞에서 모녀 중 '녀'를 만났는데, 우리는 서로를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 헷갈려 하다 불현듯 나타난 '모'가 '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인사했다. 모와 녀는 나를 많이 좋아했다.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녀는 우리나라 나이로 열일곱 살이었다. 나는 녀의 나이를 한국 교육과정 중 '고1'과 배치시키다 조금 갸웃했다. 한국은 아직 학기 중이기 때문이다. 섣불리 묻지 못하는 내게 모는 익숙하다는 듯 녀가 휴학 중이라고 설명했다. 배움을 쉬게 된 이유가 궁금했지만 함부로 묻는 대신 나는 그들을 하이랑카로 초대했다. 두 사람이 냄비에 팔팔 끓인 한국 라면이 먹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이랑카는 그들이 묵는 숙소에서 많이 멀었지만 사용이 자유로운 주방이 있었다. 모녀는 드디어 한식을 먹는다며 좋아했고, 나는 한식을 먹을 때 맞은편에 앉아 있어 줄 사람이 생겨 좋았다.
세계를 여행 중인 두 사람에겐 떠돈 지 오래된 사람 특유의 바깥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아무렇게나 자른 손톱, 뿌리와 끝 색이 차이 나는 머리카락, 까슬해진 발등, 인종을 바꿔버린 그을린 피부에서 가장 강하게 풍겼다. 히란은 하이랑카를 방문하는 세 번째와 네 번째 한국인인 모녀를 반겼다. 나이순으로 치면 모가 세 번째고 녀가 네 번째겠지만 현관에 발을 들인 순서로는 녀가 먼저였다. 따지고 보면 둘 다 지아의 손님이지 하이랑카의 손님은 아니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끝이 뭉툭해진 낡은 포크로 라면을 건졌다.
한 냄비에 든 음식을 마구 나눠먹는 동안 나는 모와 녀에 대해 조금 알았다. 두 사람이 여행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었다는 것. 스리랑카 전에 방문한 나라가 인도였다는 것. 앞으로 여행 기간이 6개월도 넘게 남았다는 것. 그리고 녀의 휴학을 모가 먼저 제안했다는 것도 알았다.
"배움이란 게 꼭 책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모는 녀에게 조금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녀가 너무 자라기 전에. 현실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녀 역시 모의 제안이 좋았다. 뭐가 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고, 여행이 하고 싶었고, 반드시 남과 같은 속도로 고등학생이 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10대 시절의 열 칸 중 한 칸쯤은 비워도 된다는 것에 동의했고, 그래서 올해 초 각자 학생과 주부에서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나는 모녀의 대화를 조금 대단하거나 남다르거나 특별하게 들으며 부러워하거나 감탄하거나 질투했다. 내가 해보지 못한 생각과 처해보지 않은 상황을 맹렬히 지나는 중인 두 사람이 부러웠다. 지금 이들이 테이블에서 나눠먹고 있는 건 라면일까, 시간일까, 그 어떤 정서인 걸까. 나는 이들이 지난 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다음 날 나는 타운에서 모녀를 다시 만났다. 이번엔 처음 보는 중년의 남성도 함께였다. 남성이 코이카 소속 단원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나를 서현지라고 소개했다.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