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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뷰몽땅 Dec 13. 2024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아무데도 가지 마세요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12월 3일. 가르치는 아이들이 먼저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뜬금없이 선생님 절대 시위 나가지 말라는 말부터 하니까요. 나는 그 시간에도 열심히 여행기를 쓰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세상 돌아가는 일이 너무 답답해서 차라리 무관심으로 치부하는 것이 더 편했으니까요. 늘 보던 진보 유투브 방송도 보지 않았고 캐롤을 듣고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보내고 있던 밤이었습니다.


아이가 무슨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알았죠. 그래서 저도 장난으로 답했습니다. 선생님은 키가 작아서 사람들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고요. 그랬더니 아이가 팔짝 팔짝 뛰듯이 말을 하는 거에요. 절대 안된다는 거였습니다. 큰일나니까 절대 나가지 말라고요. 서울의 봄 영화도 못 봤냐고 묻는데 그때서야 무슨 일이 났나보다 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나는 언니 오빠들과 삼촌 이모들이 호헌철폐를 외치며 거리를 가득 메우던 그 날을 기억합니다. 대구 도심에 위치한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날은 아예 학교 수업을 할 수도 없을만큼 거리는 최루탄으로 가득했어요. 호헌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서서히 알아가던 시기였습니다. 왜 헌법을 철폐하라는 건지 아직도 명확하지 않았던 때였죠.


그때의 나보다 더 어린 아이가 절대 시위에 나가지 말라며 급하게 전화를 했던 그 날 밤은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무섭다거나 두렵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그 시간. 사람들은 국회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끔 아이들을 모아놓고 한국의 근대사와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역사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학습에도 도움을 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역사적인 사건들을 제시하고 그에 관한 잘못된 이야기들을 수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어른으로서의 할 일은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눈에 선생님은 불의에 항거사는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불의에 눈 감고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별로 나서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죠. 그러니 그 날 아이가 말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이불 속에 누워서 유투브를 보며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지켜보았을 것이며 가끔 지겨우면 쇼츠로 드라마를 보기도 했을텝니다. 실제 그렇게 했고요.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그 날 밤 나에게 톡을 보내준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런 핑계마저 없었다면 따뜻한 이불 속에서 손가락질이나 하고 앉아 있었던 나에 대한 부끄러움을 어떻게 감당했을지 지금 생각해도 까마득합니다.


정의를 가르치는 것은 쉽습니다. 개혁을 가르치는 것도 쉽습니다. 정리되어 있는 내용을 듣기 좋게 말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정의를 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도 행하지 않으면 이루어낼 수 없죠.


저는 참 부끄러운 한 주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은 당연히 선생님이 어떤 행동을 취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저는 추운 날씨를 핑계로 그리고 응원봉을 들고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핑계로 또 하나 더 아이들의 시험기간이 다가온다는 핑계로 집에 있었습니다. 물론 마음으로는 응원하고 있지요. 


드디어 내일입니다. 어쩌면 또 다음주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 부끄럽지 않은 공부방 쌤이 되기 위해서 조금 일찍부터 서둘러 나가려고 합니다. 


부끄러운 것보다는 추운게 낫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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