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안 쓰는 날의 일기 - 자의식의 세계에서 허우적대다
한동안 그리던 일기를 업로드하지 않은 지 4일 정도 지났다.
그리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힘든 적이 많이 있었지만 이번엔 이유의 결이 조금 다르다.
'나를 똑바로 보기가 힘들다'
는 게 바로 그 이유이다.
나에겐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런 시기가 찾아온다.
정확히 생리 일주일 전이며 나는 알면서도 속수무책이다.
정교하게 짜여진 각본처럼 이 모든 것은 계획된 것들이며 자연스럽게 생겨난 게 아니라는 걸 머리론 알지만
그 각본으로 완성된 작품을 보는 시청자처럼 진짜라고 여기게 된다.
마치 원래 있었던 우울처럼 자연스럽게. 스무스하게.
하지만 여운이 아무리 길게 남는 이야기라도 끝난 후에 기다리는 건 현실의 감각이다.
나도 이 주기만 지나면 거짓말처럼 성실하고자 하는, 인생에서 의미를 찾는 인간으로 돌아온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삶은 잠든 맹수처럼 순하고 아름다워진다.
우울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삶은 뾰죽한 이빨 투성이의 아가리 앞에 선 것처럼 두렵기만 하다.
나를 똑바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너무 못났기 때문이다.
이건 외모의 이야기가 아니다.
못생긴 얼굴보다 곱절은 괴로운 게 추한 내면이다.
나는 내 마음이 못생겼다고 생각한다. 이 기간에는.
형태로 치면 누군가 반죽하다 집어던진 찰흙 덩어리같이 이곳 저곳 어그러지고 뭉개졌다.
그렇지 않다고 누군가 말해줘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진짜 내 마음이 어떻든 그냥 그렇게 보게 되는 것이 이 기간 나의 가장 큰 약점이니까.
나는 이 기간의 내가 쓰는 글과 그리는 그림이 창피하다.
술자리에서 만취해 너무 많이 내뱉고 후회하는 사람의 심정이 된다.
울퉁불퉁하고 못난 마음.
평소엔 그런 마음도 그런대로 가다듬어 그려낼 수 있었으나 이 시기만큼은 그럴 수 없다.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나는 내가 젊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게 된다.
젊음이라는 빛나고 커다란 옷을 입은 쪼그라든 늙은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젊음은 어찌나 크고 밝고 둥그런지
나는 그걸 내가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두려워서 울고 싶어진다.
힘든 시기도 있었고 ··· 블라블라
책에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한 구절을 읽듯 우울을 그렇게 무심하게 받아들이고 싶은데
이 시기가 오면 나는 구절을 읽는 독자가 아니라 책 속에서 그 우울을 겪는 주인공이란 걸 자각하게 된다.
인생에 좋지 않은 날들이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실재하는 하루이고 오늘이라는 게 우울하다는 것이지.
한 번도 이런 감정을 가시화한 적이 없었다.
글로 쓰는 이유는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대책없이 허우적댄 과거와 조금은 다르게
나를 향해 덮쳐오는 물살에서 가쁜 숨이라도 쉬며 떠 있기 위해서다.
그래서 일기를 그리지 않는 날에도 일기를 그리지 않는 날의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