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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예진 Feb 23. 2019

초대받은 사람들

단편소설


기숙 아줌마의 소식을 알려온 것은 은경이었다. 아줌마네 집에 나를 처음 데리고 간 것도 그녀였다. 은경은 내가 미국에 오자마자 사귄 친구이자 그 지역에서 처음 맺은 인연이기도 했다.


“지아 씨 만나고 나서 얼마나 신이 났던지 저녁에 남편한테 다다다다…….”


나와 말을 트고 전화번호를 교환한 후, 다음 날 수업의 쉬는 시간에 은경이 내게 해준 말이었다. 여과 없이 자신의 속내를 보여주는 은경 덕분에 나는 그 외진 소도시에서 엿보이던 고립감과 거기서 살아내야 할 막막함을 조금이나마 떨쳐낼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다국적 기업에 다니고 있던 남편이 본사 업무를 하게 되는 바람에 미국행을 했었다. 해외 근무의 기회가 우리 부부의 기분을 얼마쯤 바꿔준 건 맞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화려한 뉴욕이나 야자수가 늘어선 캘리포니아가 아닌, 미 중부 지역 낯선 지명의 외진 곳이었다. 큰 기대는 말자고 다짐을 하고도 막상 비행기에서 착륙 안내방송이 나오니 마음이 들뜬 건 사실이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이는 광대한 미시간 호수와 시카고 시가지 풍경이 마치 미지의 신세계인 양 황홀해 보였던 것이다. 최종 도착지는 큰 공항에 내려서 다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고 가야 하는 소도시였고, 그 소도시의 다운타운에 있는 한 호텔이 우리가 미국에서 처음 묵은 곳이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호텔 창밖을 내려다보니 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파리를 죄 떨구어버린 나뭇가지들이 늦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사진이 아닐까 의심하리만치 정적인 곳이었다. 호텔 바로 건너편에 도서관이 하나, 그 옆으로 우체국이 하나, 또 그 건너편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만그만한 건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길 따라 서있었다.


조금 더 시선을 들어보면 다운타운이 끝나는 곳쯤 될법한 위치에 제법 규모가 큰 건물 하나가 우뚝 서있었는데, 건물 상단 모서리에 한국에서부터 많이 봐왔던 남편의 회사 로고가 붙어있었다. 그 옹색한 규모의 다운타운에서 유일한 큰 건물이었다. 나는 아침 세면을 하고 나온 남편에게 창밖 풍경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서부터 저기까지가 이 지역 중심가의 전부인 것 같아.”


우리는 회사에서 붙여준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 샐러리맨들이 주로 사는 주택단지들 근처에 임대아파트를 구했다. 거취가 결정되고 나서는 차를 샀고, 당장에 필요한 생필품들을 갖춰놓고 난 며칠 후, 남편은 예정대로 출근을 시작했다. 한동안은 영어 때문에 고전을 하는 눈치였지만, 본인의 말에 따르면 일 자체가 워낙 기술에 치중이 된 분야라 실상 말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아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동네 지리를 익히자마자 영어강좌에 나가서 은경을 사귀게 된 것이었다.


은경의 남편은 그 동네에 있는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었고, 유학생의 배우자 자격으로 미국에 체류하는 사람에게는 합법적 취업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은경에게는 시간의 공백이 많았다. 나는, 영어수업에 오가는 것을 주된 시간 보내기 방편으로 삼고 있던 은경을 통해 식료품만 살 때는 어떤 슈퍼마켓에 가는 게 좋은지, 생활집기들을 사야 할 땐 어느 상점으로 가는 게 나은지, 쇼핑의 화룡정점인 아웃렛 나들이는 언제 가야 쓸만한 물건을 건질 수 있는지를 배웠다.


기숙 아줌마의 집에 가게 된 것도 바로 그러한 생활정보 공유 차원의 하나에서였다. 그때 우리 부부는 정착 자금을 아껴볼 심산에 중고로 차를 샀었는데, 운이 좋지 않았는지 얼마 안 가 문제가 생겨버렸다. 핸들이 조금 헛도는 듯한 느낌이 있어 아무래도 불안하다고 했더니 은경은 좋은 곳을 알고 있다고 했다. 어차피 그리 값나가는 차도 아닌데 정식수리센터에 가서 고쳐봐야 비싸기만 하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그리 값나가는 차도 아닌’이라는 말이 살짝 거슬리긴 했지만, 은경 부부의 차야말로 당장 갖다 버린다해도 누가 가져가지도 않을 구닥다리였으므로 나는 내 삐딱해진 마음과 타협을 하고 은경의 제안을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그 집 아줌마, 알아두는 것도 괜찮을 거야. 아저씨는 차 고쳐주는 걸로 돈을 벌고, 아줌마는 세탁소에서 일을 받아와서 옷 수선을 주로 하는데, 우리 같은 한국 사람들한테는 무지 싸게 해 주거든.”


다음 날, 은경과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내 차는 두고 와야 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각자의 차를 따로 몰고 갔다. 선두에 가던 은경의 차가 주택지가 모여있는 외곽지역을 벗어나 시내로 진입하자, 뒤따라가던 나는 바깥 풍경의 변화를 보며 차차 불안해졌다. 처음 와서 묵었던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런 지역이 있을 줄이야.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인데, 미국 내 꽤 많은 도시들이 중심부는 빈민촌이 되어가는 반면 외곽으로 나올수록 생활이 안정된 중산층들의 주택가가 펼쳐지는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동네는 바로 그런 슬럼화 된 중심부의 전형이었다. 바짝 졸아 운전을 하고 있는데, 이 집 저 집의 현관 앞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우리 쪽을 빤히 쳐다보는 통에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대개가 어두운 색 피부를 가진 이들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계층 특유의 빈곤과 피로를 얼핏 봐도 감지할 수 있었다.


우리의 차 두 대는 어떤 집의 진입로에 나란히 섰다. 낡은 타이어들, 차량의 부속품들 및 공구들이 널브러진 마당 한쪽 끝에서 누군가가 절뚝거리며 걸어 나왔다. 비쩍 마른 초로의 백인 남자로, 땟국 절은 청바지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길러 산발한 머리카락에서 담배 냄새와 싸구려 맥주 냄새가 풍겨 나올 것 같은 행색이었다.


“하이, 미스터 비머!”


은경이 인사를 건네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하우디!”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하우디’는 그 아저씨의 고향인 텍사스 식 인사였다. 영어라면 간단한 인사말 외에는 입도 못 떼던 시기라 주눅이 든 나를 대신해 은경이 나서서 내 차의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데 집안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남자와는 반대로 살집이 퉁퉁한 중년 여자, 바로 기숙 아줌마였다. 잠깐이었지만, 백인 남자와 아시아계 여자 커플의 조합은 흑인 밀집 지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내 의식 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왔어?”


은경을 보는 아줌마의 얼굴에 반색이 가득했다. 아저씨가 내 차의 보닛을 열어놓고 살피기 시작하자, 아줌마는 은경과 나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오는 김에 이거 가지고 왔는데 기장 줄이는 거 금방 될까요?”


아줌마가 권하는 주방 식탁 의자에 앉자마자 은경은 가방에서 바지 하나를 꺼내 보였다. 새로 산 청바지인 듯했는데, 줄여야 할 위치에 옷핀이 꽂혀 있었다. 아줌마는 옷핀을 뽑아낸 뒤 그 자리에 초크 선을 긋더니, 금방 해준다면서 바로 재봉틀 앞에 앉았다. 재봉틀 소리가 요란한 틈을 타 은경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지아 씨도 앞으로 옷 수선할 거 있으면 여기서 해. 기장 줄이는 거 5불이면 돼. 세탁소로 가져가면 아무리 못해도 15불은 받거든.”


나는 은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집안을 살폈다. 고작 5달러 받고 해주는 일이 생활에 보탬은 될까 의심스러워 나도 모르게 살림살이를 훑어보게 된 것이다. 폐품이라고 분류해도 될 만큼 낡은 살림들 사이에서 정돈되지 않은 옷가지들과 저장식품들이 나뒹굴었고, 제대로 가꾸지 않은 집 특유의 어수선함이 곳곳에 고여 있었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건 냄새였다. 궁핍한 살림살이만큼이나 민망했던 퀴퀴한 냄새.


금세 바느질을 끝내고 돌아온 아줌마가 우리에게 차를 권했지만 솔직히 거기서 뭘 먹거나 마시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사양에도 불구하고 아줌마는 부득불 물을 끓여 차를 내왔다. 은경의 속내까지야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은경은 아줌마가 가져온 머그컵 속의 차를 홀짝거렸고, 나는 찻잔에 입을 대는 둥 마는 둥 하며 시간을 벌었다. 어차피 자동차 핸들의 상태에 대한 결론이 날 때까지는 자리를 뜰 수 없었으므로 우리는 아줌마네 부엌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아줌마가 이야기를 하는 쪽이었지만.


가난하고 식구 많은 집안의 천덕꾸러기로 자라 기지촌으로 흘러들어 갔었다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군복 바느질을 하나가 미군과 결혼해 한국을 뜨게 되었다는,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왔던 다정한 남자가 제 나라에 와서는 돌변했다는, 걸핏하면 술과 마약에 취해 두들겨 패고 바람을 피우더니 어느 날 자취를 감추었다는, 유일한 재주였던 바느질 기술로 봉제공장을 다니던 중 다행스럽게 착한 남자를 만났었다는, 그 착한 남자의 고향인 이 지역으로 이주해서 아이를 낳고 살았는데 어느 날 그가 사고로 죽었다는, 다시 혼자가 되어 어렵게 돈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웠는데 느닷없이 전 남편이 찾아왔다는, 병약해져서 돌아온 탕자를 다시 받아줬고, 그게 바로 현재 마당에 있는 저 남자라는, 그리고 지금은 둘 다 지병으로 고생하며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사연이었다.


아줌마의 목에 붙은 큰 반창고는 얼마 전에 수술받은 임파선 쪽 종양이 빠져나간 흔적이라고 했다.


“아저씨가 밉지 않으셨어요?”


믿기 어려운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와버린 말이었는데 아줌마는 기분 나빠하는 기색도 없이 피식 웃었다.


“밉지! 그래도 뭐 어떡해. 지도 오죽했으면 나한테 왔겠어. 그래도 옛날에 한국에서 살 때는 서방 노릇 잘했어. 지금은 저래 보여도 그때는 군복 입고 딱 서있으면 진짜 훤칠했다니까.”

“아저씨는 그럼 그동안 뭘 하고 사셨대요?”


조심스럽게 묻는 은경의 질문에 아줌마는 남의 이야기를 하듯 덤덤하게 답했다.


“뭐, 오토바이 타고 오만 군데 다 싸돌아다녔대. 이 여자랑 살다가 훌쩍, 저 여자랑 살다가 훌쩍. 뻔하지 뭐. 피가 끓는 인간이라…….”


아줌마의 집을 나와 은경의 차를 얻어 타고 돌아오던 길, 아줌마가 이 동네에서 친구 하나 없이 외로운 처지라는 말에 내가 물었다.


“아까, 한국 교회가 하나 있어서 거기 다니신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참, 은경 씨네도 크리스천이라며 그 교회 안 나가?”


은경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자신들은 영어 실력을 쌓기 위해 일부러 미국 교회에 나간다고 했다.


“그 한인교회…… 지아 씨네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어차피 안 나갈 테니 뭐 별로 상관할 일은 아니겠지만, 사실 좀 그래.”

“뭐가?”

“그 교회가 이 동네에 생긴 지 십 년 정도인가 밖에 안 됐는데 목사님이 벌써 세 번째로 갈렸잖아.”

“왜?”

“교인들 수준이 너무 높아서.”


운전을 하는 은경의 옆모습을 통해 희미한 조소를 머금고 슬쩍 올라가는 입술 꼬리가 보였다. 이어진 설명을 요약하자면, 근방의 한국인들이 종사하는 직업은 대개 둘로 나뉘는데, 한 무리는 근처의 종합병원 또는 그 병원과 연계된 클리닉의 의사들이고, 다른 몇은 은경의 남편이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의 교수들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들 모두는 한국에서 같은 대학을 나온 동문들이라고 했다. 지금처럼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유학의 기회가 주어질 수는 없던 시절에 미국으로 와서 학위를 받은 연령대들이니 그럴 만도 하지 싶었다. 같은 교회를 다닌다 해도 기숙 아줌마가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도 짐작이 되었다.


아줌마네를 다녀오고 난 얼마 후였다.


“이런 동네에 무슨 동문회가 다 있어? 한국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에 내가 보인 반응이었다. 돌아오는 주말, 누군가의 집에서 모여 저녁을 먹는 동문 모임이 있는데, 우리 부부도 초대를 받았다는 거였다. 그러자, 지역 내 한인들 대다수가 모국에서 같은 대학 출신들이라던 은경의 말이 생각났다. 남편이 말하기를, 그중 누군가가 남편이 일하는 회사에서 오래전부터 근무해 온 사람인데, 한국에서 새로 왔다는 우리 부부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는 연락을 해온 모양이었다. 남편의 출신학교까지 알고 있는 것이 놀랍기는 했지만 회사 웹사이트를 통하면 이력 확인이 가능할 법도 했다.


모임 장소인 집은 말끔히 단장된 고급 주택가에 있었다. 당시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데다가 놀러 가 본 집이라고는 은경이 사는 캠퍼스 내 학생 아파트가 전부였던 내게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큰 집이었다. 현관 벨을 누르자 오십 대 쯤으로 보이는 주인 부부가 나와 우리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새로 오셨다는 말 전해 듣고 궁금했어요.”


집주인 부부는 우리를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다이닝룸 쪽으로 데려갔다. 전부 일곱 쌍인 커플들로, 사십 대에서 육십 대까지 이르는 연령대가 고루 갖춰진 모임이었다. 그중 딱 하나, 삼십 대로 보이는 부부가 있었는데 여자 쪽은 나를 보자마자 얼굴에 호기심을 띄웠다.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신참이 나타나 반가운 눈치였다.


“92학번이면 도대체 나이가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가 그렇게 늙었나?”


남편의 입학 연도를 두고 누군가 한마디 하자 다들 희미하게 웃었다. 성별대로 나뉘어 수다를 떠는 것이 관례인 모양인지 저녁 식사 후 남자들은 식탁 주변에 그대로 남아 술을 마셨고, 여자들은 벽난로와 소파가 있는 거실 쪽으로 모여 앉게 되었다. 벽난로 앞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던 중, 누군가가 커피 잔을 들며 한마디를 던졌다. 그날 미용실에 다녀온 듯 우아하게 머리를 틀어 올린 중년 부인이었다.


“그런데 참, 미세스 리는 전공이 뭐라고 그랬죠?”


질문을 받은 미세스 리는 다른 부인들과 비교했을 때 차림새가 남다른 편이었다. 머리 모양과 옷차림이 감각적이어서 얼핏 보기에 예술가 같은 인상을 풍기는 외모랄까.


“저는 독문학 전공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왜요?”

“아니, 나는 미대 출신인 줄 알았어요. 워낙에 독특하게 하고 다니셔서.”


나는 일순 얼어붙었다. 상대방의 차림새를 면전에서 대놓고 비꼬는 것을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본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더욱 이상했던 것은 두 사람의 대화 안으로 툭 치고 들어오는 또 다른 사람의 반응이었다.


“에이 너무했다 그건. 미세스 리를 어떻게 보고.”


옷보다는 보석을 입고 나온 것처럼 보이는 그녀가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며 핀잔을 주자 올림머리는 실수를 깨달았다는 듯, 한 손으로 자신의 입가를 막았다.


“어머, 그런 뜻 아니었어요. 미세스 리가 워낙에 멋쟁이 셔서. 하긴, 어딜 봐서 미세스 리가 그런 날라리겠어요. 미안해요 미세스 리. 오해 말아요.”


독문학과 출신 미세스 리는 올림머리의 황급한 사과를 너그러이 받아주려고 애는 썼으나 언짢은 기분이 담긴 표정은 숨기지 않고 대응했다.


“괜찮아요. 나 그런 얘기 듣는 것 좋아해요. 센스 있다는 말이잖아. 아닌가요?”

“그럼요, 그럼요.”


올림머리가 얼른 수긍했으나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대화였다. 미세스 리를 기껏 ‘미대나 나온 날라리’로 본 것이 문제의 핵심인지, 올림머리의 비꼬는 말투가 실례였던 건지. 다만 그때 내게 떠오른 것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같은 데서 얻어온 잔상이었다. 드레스를 차려입고 우아한 찻잔을 든 채 나긋나긋하게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는 부인들 사이의 긴장감.


분위기를 바꾸려고 그랬는지 집주인 여자가 내 쪽에 대고 물었다.


“참, 미세스 고도 우리 동문인가?”


나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미세스 고’라는 호칭도 익숙지 않았지만, 그녀가 묻는 동문의 의미가 그 모임을 동문회라 이름 붙이게 만든 해당 학교를 지칭하는 것인지, 질문자의 졸업학교를 묻는 것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누군가가 슬쩍 일러주었을 때에야 나는 질문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가 같은 여자대학 출신이라는 거였다. 이 지역에 사는 한국 남자들 모두가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것만큼이나 공교로운 사실이었다.


“아, 저는 그 학교 안 나왔고요…….”


내가 출신학교를 말하자, 조금 전의 어색한 정적이 다시 흘렀다. 마치 그런 이름의 학교는 난생 처음 들어본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어쩐지 삐딱해져 버린 나는 심술을 부리고 싶어 졌다. 내 전공이 무용이라는 것까지 밝히는 것으로 그 이상한 긴장감에 정점을 찍어보고도 싶었으나, 이전의 전공 관련 화제가 아슬아슬했었던 이유 때문인지 아무도 내게 그것을 묻지는 않아 기회를 갖지 못했다.


거기서는 서로가 성을 이용해 호칭했다. 이를테면 남자들은 모두 조 박사, 이 박사, 손 박사 등이었고, 여자들끼리는 미세스를 앞에다 붙이고 남편의 성을 따라 부르는 식이었다. 졸지에 ‘미세스 고’가 된 나는 오가는 대화 주제들에 금세 흥미를 잃고 다른 구경거리를 찾아내는데 재미를 붙여 시간을 보냈다.


학교 오케스트라 대표로 지역방송에 출연하게 된 아들 자랑을 차마 대놓고는 못해 옆 사람에게 속닥거리는 미세스를, 두 사람의 말소리를 안 듣는 척 엿듣고 있다가 고까운 표정이 되는 미세스를, 죽자 사자 매달려 결혼에 골인했었다는 미세스 아무개의 소싯적 사연을 세기의 러브스토리인 양 화제에 올리면서 당사자의 일그러지는 얼굴을 못 본 척하는 미세스를.


모두가 각자의 심중을 꿰뚫어 보듯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도, 미소를 곁들여 치고 빠지는 대화로 경계 태세를 굳건히 다지는 것에 이골이 나 있는 것으로 보였다. 고작 몇 시간에 불과했던 모임이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랜 세월 한 지역에서, 한국인이라는 그리고 또 동문이라는 공통점으로 엮여 만나오고 있지만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날 나를 보고 반색했던 삼십 대 부부의 여자 쪽이었다. 모임이 끝날 무렵 잠깐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각자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나눠가졌던 터였다. 커피를 마시러 나가 들은 바, 그녀의 이름은 재희였고, 나보다 네 살이 더 많기에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동문회 재미없었죠?”

“아 네, 뭐 그냥…….”


재희 언니는 알만하다는 듯 웃으며 덧붙였다.


“이 동네 어르신들이 좀 그래요. 적적한 동네에서 이방인으로 오래 사셔서 그런지 성격들이 별나시긴 하죠. 나도 애 아빠가 그 학교 출신인 데다 교회에서 늘 보는 분들이 오라니까 빠지지 않고 가긴 하는데, 갈 때마다 조마조마해요.”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도 알아들을만한 이야기라서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다들 타국에서 외롭게 지내는 처지니까 우리는 그러지 말고 잘 지내요. 내가 이 지역에서 몇 년 살며 쭉 지켜봤지만 결국은 늘 한국 사람들끼리 뭉쳐요. 미국 사람들하고 가까워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다정한 미소를 띠고 건네는 말이 믿음직스러워 나는 단박에 재희 언니가 좋아졌다. 재희 언니는 예쁘장한 외모만큼이나 살림 솜씨도 깔끔했고, 남편이 비교적 일찍 교수직을 잡은 터라 생활도 안정되어 있어서 지인들에게 베푸는 씀씀이도 넉넉했다. 나는 재희 언니를 통해 그 지역에 사는 내 또래 한국 여자들을 한꺼번에 알게 되었다. 은경의 경우처럼 모두가 유학생 아내들이었다. 다들 기숙 아줌마나 동문회원들과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어서 모임의 명분은 대개 성경공부인 듯했다.


모임은 학생 부부에 비해 형편이 나은 재희 언니가 주로 주도하기 마련이었고, 그녀는 점심식사를 차려내거나 직접 구운 과자를 곁들여 차를 내곤 했다. 재희 언니네 집에서 하는 모임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나도 늘 꼈다. 어차피 목적은 나이가 얼추 비슷한 한국 여자들끼리 어울려 놀자는 것이었으니 실상 허울뿐이었던 성경공부는 개의치 않아도 되었다. 솔직히, 좁은 아파트에 있다가 쾌적하고 잘 꾸며진 큰집에 가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서 재희 언니의 초대가 매번 기다려지고는 했다. 그녀들, 그러니까 남편이 지도교수에게서 받아오는 쥐꼬리만큼의 연구보조비로 빡빡하게 살며 학위 받을 날만을 고대하고 있던 유학생 아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모임에 속하지 않은 은경이 가끔씩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그러나 은경에게는 모임 이야기를, 모임에서는 은경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은경을 안다고 말했을 때 모임에서 조성되던 침묵 때문이기도 하고, 재희 언니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내 말에 급격히 굳은 은경의 표정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든 갑자기 친구가 많아진 내가 은경에게 연락하는 횟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었고, 은경 역시 전처럼 나를 자주 찾지 않았다. 더구나 은경이 영어수업에도 잘 나타나지 않기에 염려되어 전화를 했을 때, 나를 상대하던 은경의 목소리가 어찌나 시큰둥했던지 나도 기분이 상해 더 이상은 연락하기 싫어진 것도 있다.


그날은 예외적으로 저녁 외출을 해보자고 모인 날이었다. 모처럼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나온 여자도, 아이가 없는 여자도, 심지어 임신 막달이라 배가 터질 듯 부푼 여자까지도 한껏 멋을 내고 나와 금요일 저녁 레스토랑의 북적대는 분위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인교회와 또 거기서 알게 된 사람들과의 늘 같은 만남 외에는 이렇다 할 약속 없이 지내온 처지들이라 모두가 들떠있었다. 레스토랑 직원들과 매끄럽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주문하는 미국인들 틈에서 살짝 주눅은 들었지만, 우리는 재희 언니 덕분에 기본적 체면은 지킬 수 있었다. 재희 언니는 우리 중 제일 세련된 매너를 가지고 있어서 다들 재희 언니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다가 따라 했다.


재희 언니가 화장실을 가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가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화두를 꺼내는 바람에 나는 재희 언니의 친정아버지가 고국에서 꽤 알려진 중소기업의 대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재벌까지야 아니지만 한국인이라면 대개 들어봤음직한 이름의 회사였다. 누군가가 말했다.


“어쩐지. 아직 테뉴어도 안 받았는데 집이 너무 좋더라.”


재희 언니 남편의 종신교수 심사가 다음 해로 잡혀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어떤 이는 신세한탄을 했다.


“에휴, 어쨌거나 우리는 앞으로 남편이 교수가 된다 해도 결국 재희 언니만큼 넉넉히 살지는 못한다는 거네. 역시 친정이 든든해야 모든 게 순탄하다니까.”


재희 언니가 돌아오는 바람에 화제는 거기서 끊겼고, 우리는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기로 하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이동할 장소는 전국 체인의 대형서점과 커피숍이 맞물려 있는 형태로, 미국 어디를 가든 상점가 근방에는 하나쯤 있게 마련인 곳이었다. 우리는 전부 다섯이었고, 그날은 카풀을 하자며 두 차에 나눠 타고 다녔다. 학생 아파트에 사는 셋이 한 차로 움직였고, 나는 나를 픽업 온 재희 언니의 차에 동승해 움직였다. 재희 언니와 내가 앞서 도착해 미리 들어가게 되었다. 커피숍은 서점 입구로 들어서서 오른편의 잡지 코너를 통과해야 나오는 안쪽에 있었다.


“지아 씨, 먼저 가있을래? 나 우리 아들이 사고 싶어 하는 책 있나 좀 보고 올게.”

“그러세요, 언니. 제가 자리 맡아 놓을게요.”


재희 언니가 정면의 어린이 도서 코너 쪽으로 사라지고 나서 내가 커피숍 방향으로 걷고 있을 때였다.


“지아 씨!”


은경은 잡지 코너 앞에서 월간 요리책 하나를 펼쳐 들고 보다가 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반가운 표정을 지어야 했고, 그동안 서로 연락이 뜸했다고는 하나 우연히 만났으니 다른 때라면 그 우연을 관계 회복의 기회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처할 상황에 진땀이 난 나는 스스로의 표정을 인식할 여유가 없었다. 은경은 아직 재희 언니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어색함이 걸러지지 않은 말투가 나왔다.


“어? 어…… 다 저녁에 어쩐 일이야? 신랑하고 같이 왔어?”


쭈뼛거리는 나와는 달리 은경의 얼굴에는 점점 더 반가운 기색이 번져갔다. 목소리에 의식적인 친밀함을 섞어 넣는 것으로 보아 지난번의 시큰둥한 통화를 만회하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오늘 늦게까지 실험할 게 있다고 해서. 그냥 혼자 바람이나 쏘이려고 나왔지. 지아 씨도 혼자야?”


그때, 왁자지껄한 한국말이 들려왔다. 뒤늦게 도착한 세 사람이 서점 안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소리의 주인공들은 거리를 좁혀오다가 나를 먼저 발견했다.


“지아 씨, 안 들어가고 뭐해?”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되돌리니, 돌처럼 굳어버린 은경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정적이 흘렀지만 민첩한 누군가가 인사를 건넸다.


“어머 은경 씨!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이유야 알 수 없으나, 맞닥뜨린 것이 반갑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 멋대로 동석을 제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은경만 남겨두고 커피를 마시러 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재희 언니가 곧 나타났다. 다른 방향을 통해 커피 숖으로 들어가려던 재희 언니는 우리 쪽을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가 은경을 알아본 즉시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고, 그와 동시에 은경의 얼굴도 흙빛으로 변했다. 무리에 섞여 커피숍에 앉아있는 동안, 나는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은경이 재희 언니를 보자마자 황급히 서점을 빠져나가버리는 바람에 내가 태도를 선택해야 하는 곤경은 면했지만 마음까지 편할 수는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느닷없이 아줌마 네를 찾아간 것이 나의 우회적 돌발행동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날과 관련은 없되 은경을 아는 사람을 만나 찜찜한 마음을 풀어보고자 했던. 그때는 생각했다. 내게는 그저 수선해야 할 원피스가 있을 뿐이라고. 그곳에 혼자 간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동네 거리를 지날 때는 조금 무서웠으나 막상 아줌마네 집의 푸른 외벽이 보이자 마음이 놓였다. 벨을 누르자 한참 지난 후에 문이 열렸다.


“하이.”


문을 열고 인사를 건넨 사람은 아줌마의 딸인 것 같았다. 고등학생쯤 되었을까? 흑인 특유의 자글자글한 곱슬머리에 다갈색 피부. 눈은 엄마 쪽을 닮은 모양인지 쌍꺼풀 없이 맨송맨송했다. 사고로 세상을 떴다는 아이 아빠의 인종을 알고 나자 아줌마가 왜 그 동네에서 섞여 살 수 있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아이의 몸집을 보니 문을 여는데 시간이 걸린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정크 푸드로 연명하는 미국 저소득층 아이들의 전형적인 비만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 찾아요?”


한국말로 해야 할지 영어로 해야 할지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아줌마 딸이 어눌한 한국말로 물어온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아줌마의 딸은 안쪽에다 대고 소리쳤다.


“마암! 섬원 이스 히어!”


아줌마와 내가 원피스를 펼쳐놓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줌마의 딸은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면서 어쩌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씩 웃어 보였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십 대 치고는 표정이 너무도 천진해서 그 아이의 육중한 몸집이나 피부색 때문에 품었던 선입견이 어쩐지 미안했다. 원피스가 다루기 힘든 천으로 만들어진 거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며 아줌마는 이틀 후쯤 다시 와서 찾아가라고 했다. 그러마고 일어서려는데 아줌마가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와 내밀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덩어리로, 랩에 꽁꽁 싸인 갈색의 내용물이었다.


“청국장이야. 좋아해?”


사실 나는 청국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더구나 냄새 때문에 아파트에서 끓여먹을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아줌마의 친절에 무안을 주고 싶지는 않아 얼른 받아 들며 연기를 했다.


“좋아하죠! 그런데 이걸 어디서 구하셨어요?”

“구하긴 어디서 구해. 만들었지.”

“정말요? 어떻게요?”

“콩 사다가 삶아 띄워서.”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나는 아저씨가 싫어하시지 않느냐고 물어봤는데, 아줌마의 대답은 사뭇 당당했다.

 

“싫어하거나 말거나. 지는 지 먹고 싶은 것 먹고, 나는 나 먹고 싶은 것 먹고 살아.”


그러고 보니 아줌마네 집에서 나던 냄새는 미국 음식의 느끼한 냄새와 청국장 및 김치 냄새가 묘하게 뒤섞인, 다른 집에서는 흔히 맡을 수 없는 냄새가 아닐까 싶었다. 집 밖으로 나서는데 아줌마가 내게 손짓을 했다. 아줌마가 이끄는 대로 집 모퉁이를 돌아 뒷마당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내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나왔다.


“와아!”


킹사이즈 침대 두 개 정도를 길게 이어 붙인 규모쯤 될까. 아줌마의 텃밭에는 애호박, 오이, 고추, 아욱, 상추, 깻잎, 대파 등이 나란히 줄을 지어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7월의 햇살을 받으며 노랗게 피어난 호박꽃을 보니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에서 자란 내 기억 속에도 분명 애호박 꽃과 함께 떠오르는 고국의 여름 풍경이 있었으니.


아줌마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텃밭의 작물들을 골고루 따서 소쿠리에 담았다. 너무 많은 양을 따기에 저걸 다 한꺼번에 어쩌려고 하나 싶었는데 아줌마는 안으로 들어가 커다란 비닐 백을 가져오더니 그것들을 전부 옮겨 담아서 내게 내밀었다.


“가져가서 먹어. 약 하나도 안 쓰고 기른 거야”

“이렇게나 많이요? 다 남 주시면 아주머니는 뭘 드시려고요?”

“아이고, 이걸 뭐 혼자 다 먹으려고 키우나? 내 친구들이야, 요 녀석들이.”


아줌마는 텃밭을 내려다보며 늦둥이 자식을 본 늙은 엄마 같은 표정을 지었다.


“거기 있는 호박잎 있잖아. 그거 줄기 따라 거친 거 잘 벗겨내고 쪄먹으면 맛있는 거 알지? 참, 얼마 전에 은경이가 왔길래 내가 청국장 끓이고 호박잎 쪄서 줬는데. 오늘 올 때 같이 오지 그랬어.”

“은경 씨가 왔었어요?”

“뭐, 우리 집 양반한테 차 고친다고 왔었는데, 얼굴이 하도 해쓱해서 내가 밥 한 끼 차려줬었어. 아주 맛있게 먹더라고. 입덧 때문에 제 손으로 잘 못 챙겨 먹다가 남이 해주니까 먹을만했었나 봐.”


내 표정 때문인지 아줌마의 얼굴도 바뀌었다.


“아기 가진 거 몰랐어?”


순간 부끄러워진 나는 거짓말로 얼버무렸다.


“아, 저, 알았는데 입덧이 그렇게 심한 줄은 몰랐어요.”

“입덧을 심하게 하는지, 아무튼 먹다가 울기까지 하더라고.”

“울어요?”

“그렇다니까. 한참 호박잎에 밥하고 청국장 얹어서 신나서 싸 먹더니 갑자기 고개를 푹 수그리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잖아.”

“…….”

“왜 우냐니까, 너무 맛있어서 그렇대. 너무 맛있어서 그냥 막 눈물이 난다는 거야.”  


아줌마는 ‘너무’를 강조해 발음하더니 눈가를 찍어냈다. 경험해 본 바가 아니라 공감까지는 못하더라도, 아줌마가 태중에 아기를 품고 사람 설고 음식 설은 곳에서 보낸 자신의 지난날을 반추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코끝도 뜨거워졌다. 물론 내 감정의 소용돌이는 다른 방향에서 오는 것이었지만.


나는 날짜를 가늠해보다가 물었다.


“은경 씨가 온 게 언제였어요?”

“글쎄…… 가만있자, 한 일주일쯤 된 거 같은데?”


푸성귀들이 잔뜩 들어있는 비닐 백을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에 속이 시끄러웠다. 은경이 아줌마한테 간 것은 서점에서 무리와 마주친 이틀 후쯤일 터였다. 마음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밥을 먹다가 쏟아냈다는 은경의 눈물 때문인지, 아기 소식 때문인지, 아줌마네 텃밭이 너무 예뻐서인지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내 심경의 근원을 포착하기엔 모든 게 뒤섞여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집에 돌아와 밭에서 가져온 것들을 다듬다가 무언가 꿈틀거려 기겁을 하고 손을 털었다. 자세히 보니 흙과 함께 딸려 온 벌레였고, 얼핏 봐도 네댓 마리는 되어 보였다. 한꺼번에 여러 마리의 벌레를 상대하는 것이 징그러워 머뭇거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시어머니였다. 안부인사가 오가고 난 후, 언제나처럼 아들 입장만을 고려한 당부가 이어졌다. 이어 민감한 화제까지 더해 신경을 건드리는 시어머니에게 짜증이 난 나는 말을 돌리기 위해 기숙 아줌마에게서 얻어온 텃밭의 작물들 이야기를 꺼냈다.


“벌레가 많다는 걸 보니 정말 약을 안 친 유기농인가 보구나.”

“그러게요 어머님. 그런데 막상 벌레가 움직이는 걸 보니 징그러워서요.”

“그래도 그 귀한 걸 요즘 세상에 어디 그리 쉽게 얻어먹을 수 있니? 고맙다 생각하고 잘 손질해서 써라. 그런데 그 사람은 누군데 그렇게 너한테 잘해줘?”


화제가 바뀌어 기분이 나아진 나는 기숙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문제는 아줌마의 간추린 인생사를 전해 들은 시어머니가 툭 던진 한마디 말이었다.


“아니 얘, 그럼 그 이가 양 색시였단 말이야? 세상에. 미국에 가니 별 사람들이랑 다 말을 섞고 사는구나!”


나도 몰랐다. 내 반응이 그렇게 과격하게 나올 줄은.


“어머님!”

“왜 그러니, 갑자기?”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라 바느질했다잖아요. 그리고 누가 요즘 그런 말을 써요. 좀 듣기 거북해요.”

 

정적이 흘렀고, 시어머니는 한참 동안 숨을 고르다 한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알았다. 너처럼 교양 있고 고고하지 못해 미안하구나.”


비꼬는 말로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 후로 시어머니는 그 표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물론 내게 설득되어서 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때 내가 왜 그리 발끈했었는지 잘 모르겠으니까. 언제나 그렇듯, 시원하게 입바른 말을 했다고 해서 속이 편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시어머니 마음을 풀려면 공을 배로 들여야 할 테니까.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는 기분에 며칠을 사로잡혀 있다가, 모임 중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처음으로 둘만 만나자고 하니 그녀는 조금 놀라는 것 같았다. 물론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모임 인원 중 아직 아이가 없는 사람은 그녀와 나 둘 뿐이었으므로 제 아이 챙기느라 대화의 맥을 끊기 일쑤인 이들과는 달리 우리는 서로에게 말하기 편한 상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일부러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확률이 낮은 곳을 약속 장소로 제안했고, 차를 마시던 중 슬쩍 말을 꺼냈다.


“이거 좀 곤란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는데, 자기…… 은경 씨가 도대체 이 모임에 왜 안 끼는 건지 얘기 좀 해줄 수 있어? 다들 은경 씨와 아는 사이이긴 한 모양이던데.”


그녀는 잠깐 고민을 하는 눈치였지만 별 수 없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 끼는 게 아니라 못 끼는 거지. 은경 씨가 재희 언니한테 찍혔거든.”

“찍혀?”

“응.”

“…….”

“지아 씨는 재희 언니를 어떻게 생각해?”


기습적인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나 내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화두는 아니었는지 그녀는 스스로 말을 풀었다.


“재희 언니 호인이지? 늘 베풀면서 사니까 사람들도 많이 따르고. 그런데 지아 씨, 재희 언니 화나면 무섭다?”


무슨 이야기가 나오려나 싶어 나는 귀를 세웠다.


“사실 처음에는 은경 씨가 재희 언니랑 제일 친했어. 은경 씨가 재희 언니한테 음식을 해주다가 그랬었지 아마? 재희 언니가 임신했을 때 입덧이 심했거든. 은경 씨 손맛이 좋아. 워낙에 그 지역 출신들이 음식 잘하잖아. 암튼, 처음에는 은경 씨도 입덧하는 재희 언니가 딱해서 그냥 호의로 몇 차례 그랬던 건데, 은경 씨 솜씨에 맛들은 재희 언니가 나중에는 아예 반찬까지 대서 먹고 싶어 해서 은경 씨가 그걸로 알바를 하게 됐어. 그러다가 재희 언니 출산하고 나서는 가끔씩 베이비시터도 하고. 은경 씨한테도 괜찮은 일이었을 거야. 푼돈 벌이라도 남편 공부하는 동안 보탬이 되니까. 그런데 그러다가 일이 터졌지.”


“무슨 일?”


“은경 씨가 재희 언니 아기 이유식 먹일 때 실수를 했었어. 어쩌다 보니 재희 언니 허락 없이 평소에 안 쓰던 재료로 국을 끓여 아기한테 먹였는데 그게 사달이 난 거야. 잣을 갈아 넣어 끓이는 미역국이었대. 알고 보니 아기가 견과류 알레르기였고. 애가 응급실에 실려 가고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에 은경 씨가 더 이상 재희 언니네 일 안 하게 됐어.”


“그것 때문에 절교한 거야?”


“아니. 일은 안 하게 됐어도 은경 씨는 재희 언니한테 계속 속죄하는 태도로 대했어. 그동안 아기하고 정도 들었으니까 교회에서 만나면 안아주려고도 하고. 근데 은경 씨가 아기 근처에만 가면 재희 언니가 눈도 안 떼고 살피다가 은근슬쩍 다른 데로 데려가더라고. 나도 그때 재희 언니 눈 보면서 그런 생각 들더라. 다정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자기 것에 조금이라도 흠집 내면 찬바람이 쌩쌩 도는구나 하고.”


“…….”


“재희 언니가 하도 그러니까 나중에는 은경 씨도 심정이 상했는지 언제부터인가는 아기한테 가지도 않고 눈길도 안주더라고. 그때부터 둘이 진짜 소원해졌는데, 때마침 은경 씨 남편이 제대로 결정타를 날렸지.”


“은경 씨 남편?”


“응. 은경 씨 남편이 좀 직선적이면서 살짝 주책이잖아. 그때가 교회 친교시간이었을 거야. 재희 언니 남편이, 자기 할아버지가 예전에 동경에서 유학했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어. 근데 그게 좀…… 왜 그런 거 있잖아, 대대로 학자 집안인 거 은근히 흘리는 느낌? 아닌 게 아니라 은경 씨 남편이 듣고 있다가 고까웠는지 한방 날렸잖아.”


“뭐라고?”


“그 시절에 그렇게 누리고 사셨으면 일본이랑 꽤 친하셨겠어요,라고”


요약하자면, 재희 언니 남편의 얼굴은 벌게졌고, 재희 언니는 늘 그렇듯 점잖은 태도를 유지했지만 어쨌든 그 뒤로 은경은 모임에서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은경 씨를 안 볼 이유가 없었지만, 모임을 주관하고 장소를 제공하는 쪽이 대개 재희 언니네였으므로 다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은경 씨네가 떨려 날 수밖에 없었다고.


재희 언니네 시댁이 실제 친일파였는지 아닌지는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재희 언니가 나중에 은근슬쩍 흘린 말에 의하면, 재희 언니네 시댁이나 친정에서는 원래가 그 지역 사람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음식으로 유명한 고장 출신의 손맛에 찬사를 보내며 임신 기간 동안 톡톡히 덕을 본 일은 깨끗이 잊었다는 듯.


묵묵히 듣고 있던 내게로 별안간 질문이 넘어왔다.


“어머 참! 나 이런 얘기하는 거, 혹시 실수 아냐? 자기 서울 사람 맞지?”

“응? 어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으니 거짓은 아니었다. 이미 말을 뱉어버린 그녀를 위해서나 그리고 또 나를 위해서나, 내 어머니가 은경과 같은 고장 출신이라는 것까지는 그 상황에 구태여 밝힐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뭔가를 숨기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개운치 않았다. 가끔씩, 고향 사람들에 대한 험담을 잔뜩 듣고 나서 출신 지역에 관한 질문을 받곤 했던 엄마가 그때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땀을 흘리던 것이 떠올라 씁쓸했다.


은경에게 전화를 한 건 다음날이었다. 점심을 함께 먹자고 하자 은경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내 초대에 응했다. 차마 청국장을 끓이진 못했다. 냄새가 강한 음식을 해 먹으면 간혹 이웃들이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신고를 한다는 소리를 들은 바 있었다. 대신 기숙 아줌마가 해준 말을 토대로 은경을 입맛 돌게 만들었다는 것 위주로 상을 차렸다.


풋고추를 잔뜩 썰어 넣고 끓여낸 강된장에 호박잎을 쪄서 곁들여 놓고, 오이를 썰어 매콤 새콤한 양념에 무쳤다. 모두 기숙 아줌마네 밭에서 가져온 것들로 만들었다. 대도시로 나들이를 간 김에 들렀던 한국 슈퍼마켓에서 사다 놓고 아껴먹느라 냉동실에 모셔두었던 삼겹살은 혹시 몰라 해동만 시켜놓고 미리 굽진 않았다. 입덧을 하는 사람 중에 더러 고기는 냄새도 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였다. 식탁에 차려놓은 것을 보자 은경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말했다.


“기숙 아줌마 네 서 얻어온 거.”

“거기 갔었어?”

“응. 며칠 전에.”


차려진 음식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를 견뎌내야만 했다. 먼저 말문을 튼 건 나였다.


“입덧 때문에 고생이 많다며. 진작 말하지 그랬어.”

“뭐…… 그럴 기회가 없었잖아. 서로 바쁘기도 했고. 만나게 되면 말하려고 했어.”


정적이 흘렀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냈다.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은경 씨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아서 신경이 많이 쓰였어. 내가 처신을 잘 못 한 것 같아. 미안해 은경 씨.”


직설적인 고백에 놀랐는지 은경은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지아 씨 왜 그래. 뭐 그렇게 심각한 일이 있었다고. 나 아무렇지도 않아. 자기 그것 때문에 나 보자고 한 거야? 아유, 아무튼 난 그 덕에 점심 얻어먹게 되어서 좋네.”


은경이 억지로라도 배실 배실 웃어가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지만 내게는 아직도 숙제가 남아있었다. 넘어야 할 산.


“그리고, 아기 소식 축하해. 이 말도 얼굴 보고 하고 싶어서 불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은경은, 얼마 동안을 음식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있어야만 했다. 굳게 마음먹었던 바와는 달리, 나는 축하의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한 채 말끝을 흐려버렸다. 눈물 한줄기를 내려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나는 한참을 울었다. 그야말로 목을 놓아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우리 부부의 운명을 알게 되고 나서 미국행을 결정한 후, 그 누구 앞에서도 허락하지 않은 내 껍질의 분열.


아줌마의 풋고추가 들어간 강된장이 차갑게 식고, 아줌마의 호박잎에서 수분이 날아가고, 아줌마의 오이가 양념에 절어 숨이 죽을 때까지, 은경은 울고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한참 후 통곡이 종료된 다음에도 나는 내 눈물의 이유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그로부터 10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은경 역시 내게 묻지 않았다.


이후 오래가지 않아 남편은 미국에 불어 닥친 불황의 타격으로 실직을 했다. 우리는 우리를 미국으로 오고 싶게 만들었던 것과 같은 이유로 한국에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새로운 밥벌이를 시작해야 했다. 그곳에서 차로 두 시간쯤 떨어진 지역의 쇼핑몰에 좋은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휘몰아치듯 가게를 계약하고, 이사를 하고, 난생처음 해보는 장사를 시작했다. 한식과 일식을 적당히 접목한 도시락 가게는 염려했던 것에 비하면 순조롭게 운영이 되었다. 처음에야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일이 손에 붙어, 우리는 알맞게 바쁘면서도 무리하지는 않아도 될 만큼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다.


은경은 현재, 나와 처음 만났던 소도시를 중심으로 비슷한 거리의 반대 방향에 있는 또 다른 소도시에 살고 있어서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일 년에 서너 차례씩 긴 통화로 수다를 떤다. 은경은 그 사이 아이를 하나 더 낳아 남매를 두게 되었고, 은경의 남편은 학위를 받은 후에도 한참을 박봉의 객원연구원으로 버티다가 둘째가 초등학생이 되기 직전 간신히 2년제 대학의 교수직을 얻게 되었다.


학력과 관련 없는 일을 하게 된 남편은 더 이상 동문회 같은 데서 연락을 받지 않는다. 가끔은 우리도 소속감이라는 것이 그리울 때가 있어 종교적 가치관과는 별개로 한인교회에 다니기도 했으나 얼마 안 가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우리가 일부러 아이를 갖지 않는다고 멋대로 짐작한 사람들이 무심히 던지는 말들을 견뎌내지 못했다.


기숙 아줌마의 소식도 그맘때쯤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줌마가 어떠한 연유에서 거기를 찾아갔는지는 모른다. 절대로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지병이 있으면서 어째서 그토록 취해버렸던 걸까. 매번 자신에게는 전달되지 않은 채 벌어졌던 모임들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던 것일까. 목사 내외가 끼어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동문회와 다를 바 없는 인원 구성으로 이루어진 모임이 있었던 그날 밤, 아줌마는 파티가 벌어지고 있던 집으로 찾아가 현관문 앞에서 취중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고 한다.


“야! 네가, 네가, 그러고도 네가 목사야! 이 따위 게 무슨 사랑의 실천이고 은혜로운 말씀이냐고! 하나님이 그러던? 사람 차별해가며 복음 전달하라고 그러더냐고! 썅! 잘났다! 니들끼리 다 해 처먹으라고!”


뒤뜰에서 바비큐를 하던 교회 사람들이 현관 앞의 소동을 수습해보려고 달려왔으나 곧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고 했다. 주거지의 평화를 침해하는 것에서라면 용서가 없는 이웃주민들이 발 빠르게 신고를 한 것이었다. 출동하면 어지간해선 그냥 돌아가는 법이 없는 미국 경찰은 일단 아줌마를 연행해갔다는 것. 여기까지가 내가 들은 아줌마의 소식으로 가장 최근의 것이었다.


“아저씨도 텍사스 출신이라 중부지역에는 친지가 없다더라고. 아줌마 쪽 지인도 전혀 없으니 나한테 연락을 하지 않았나 싶어. 피붙이도 딸 하나밖에 없잖아.”


오늘 은경이 전화를 한 이유는 아줌마의 장례식에 같이 가줬으면 해서였다. 그 동네를 떠난 지도 벌써 한참이 지났으니 혼자서 장례식에 간다는 것이 아무래도 좀 멋쩍은 모양이었다.


“가게 때문에 힘들까?”


은경이 조심스럽게 다시 물어왔다. 가는 데만도 꼬박 두 시간은 걸리는 거리이니 장례식에 참석하자면 하루 종일 남편 혼자서 가게를 봐야 했다. 더구나 토요일의 쇼핑몰은 평소보다 훨씬 붐빌 것이다. 은경에게는 다시 전화를 해주겠다고 하고 주방 입구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업소용 밥솥을 열고 있던 남편이 뜨거운 김을 맞으며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내일, 나 어디 좀 갔다 와야 될 것 같은데 마이클 부르면 안 될까?”


마이클은 일손이 달릴 때마다 전화를 해서 부르는 우리 가게의 비상 인력으로, 근처의 대학을 다니는 대만인 유학생이었다.


“어딜 가게?”

“저기, 기숙 아줌마 기억나지? 은경 씨한테서 전화 왔었어. 아줌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데 장례식에 올 사람이 없다나 봐. 은경 씨가 나더러 같이 갔으면 하던데…….”


말끝을 흐리고는 생각했다. 우리 부부의 장례식에는 누가 올까. 마음속으로 손가락을 꼽고 있는데 불쑥 대답이 들려왔다.


“갔다 와.”


남편은 열기를 받아 벌게진 얼굴로 주걱을 놀리고 있었다. 매일 이 시각, 변함없이 행하는 일.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한 채로 저마다의 행성에서 살아가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속 인물들이 떠올랐다. 숫자만 세는 사람, 스스로 왕위를 부여하고 백성도 없이 사는 사람, 술을 마신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술만 마시고 있는 사람. 문득, 우리가 발을 딛고 서있는 가게가 행성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이 도시락을 만들어내는 별.


“도시락 행성.”


불쑥 튀어나온 말에 남편은 뜬금없어했다.


“뭔 소리야 갑자기?”

“우리 가게 이름, 그렇게 바꾸면 어때?”

“그건 너무 막막하고 쓸쓸하게 들리는데.”

“그런가?”

“행성 말고…… 섬은 어때?”

“섬은 뭐 안 쓸쓸한가?”

“그래도 그건 지구에 있잖아.”

“그럼, 도시락 섬?”

“아니. 기왕이면 아메리칸 스타일로, 도시락 아일랜드.”

“그게 뭐야.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니고.”


둘이 킥킥대고 있는데 오늘의 첫 손님이 가게로 들어서고 있었다. 짧은 금발을 깔끔하게 손질한 중년 부인이었다. 잠깐이었지만, 벽에 붙은 메뉴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물어볼까 망설였다. 그러나 아침부터 장례식을 화제로 삼는다는 건 어쩐지 개시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미국식 조문 예절쯤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알아볼 수 있겠지.


잠시 후, 주문한 도시락이 완성되고, 셈을 치른 손님은 뒤돌아섰다. 활기로 분장한 목소리가 섬을 나서는 그녀를 배웅했다.


“땡큐! 해브 어 나이스 데이!”




 ⓒ홍예진 - 2014년 재외동포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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