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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슬 May 24. 2023

5. 장애인이 어떻게 최강대학교에 가냐?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기 전, 늘 그렇듯이 나는 남자아이들 몇몇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각자 학원 가기 전까지 짧은 휴식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날 우리들은 자꾸 공부해라 잔소리하는 부모님에 대한 얘기(라고 쓰고 뒷담화라고 읽는다)를 하며 성토대회를 열고 있었다.


"아! 진짜 짜증 난다. 울 엄마는 자기는 Soso대학교 나오고는 나더러는 자꾸 최강대학교를 가라고,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 장난 아닌 거 알지?"


"어쩔 TV?ㅋㅋㅋㅋㅋㅋ"


"우리 아빠는 우수대학교 나오셨는데, 그럼 공부하라는 잔소리 좀 더 해도 되는 건가?ㅋㅋㅋㅋ"


"저쩔 TV?ㅋㅋㅋㅋㅋ"



  이런 별 의미 없는 성토대회가 오가던 중, 갑자기 한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이응아! 근데 너희 엄마는 어느 대학 나왔어?"


"..."


  나는 대답을 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내가 우리 엄마 ** 대학교 나왔다고 말하면 어쩐지 뻐기는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하고, 또 혹시 아직 말하지 않은 친구 부모님이 하버드나 MIT를 나왔을지 누가 알겠는가?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 평소 나와 절친인 윤택이가 나 대신 말했다.

"얘네 엄마 최강대학교 나오셨는데...“


"와!“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렇게 감탄사를 내뱉는 사이로 갑자기 평소에도 밉상인 혁준이의 비수 같은 한 마디가 꽂혀 왔다.


"야! 장애인이 어떻게 최강대학교를 가냐? 말도 안 돼. 너 거짓말이지?“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우리 엄마가 장애인인 걸 이미 알고 있는 몇몇 친한 친구들은 장애인도 노력하면 다 할 수 있지 그런 말이 어디 있냐며 내 편을 들어주었지만, 혁준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아이 말에 동조하며 내 말을 믿지 않으려 했다.


  나는 더 이상 별말 하지 않고 그 무리를 떠나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을 안고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와서 이 일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다.


  아이들은 참 이상하다. 왜 위인전에 나오는 헬렌 켈러나 스티븐 호킹 같은 사람들은 당연히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 왜 우리 주변에 있는 우리 엄마 같은 평범한 장애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불쌍한 존재로 여기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비록 우리 엄마가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불편한 점이 없지 않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엄마 나름의 비범한 해결 방법들도 많이 갖고 있다는 걸 아이들은 잘 모르겠지?


  우리 엄마는 자신이 필산한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주산을 배워 주판알을 머릿속에 그려서 암산을 하는데 정말 빠르다.


  또, 우리 엄마의 출중한 영어 실력은 우리 엄마 장애 때문인데, 한글 자막을 읽을 수 없는 엄마가 할리우드 영화들을 자유롭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엄마의 영어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이래도 장애인이 최강대학교에 갈 수 없다고? 나는 너무 억울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서 아이들에게 증명해 보일 방법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엄마 방 보석함에서 학교 졸업 반지를 보았던 걸 떠올렸다.


  그래 이거다.


  

  마침 엄마는 집에 안 계셨고, 나는 엄마 방에 들어가서 몰래 그 반지를 찾아가지고 나왔다. 가슴이 조금 두근두근했지만 엄마도 상황을 알면 이해해 주실 거라는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기 전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갔다.


  혁준이를 보자마자 나는 내 손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 최강대학교 나온 거 맞지?”


“…”


  혁준이는 아무 말도 못 했고, 혁준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던 아이들도 “와! 진짜네.”라고 말했다. 이제야 내 속이 좀 뻥 뚫리고 억울함도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이제 우리도 고학년이 되었고, 믿을 만한 친구들에게는 우리 엄마가 장애인이라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도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친구들을 볼 때면 괜히 말했나 조금 후회가 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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