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장을 빠져나올 때까지는 모든 것이 희망에 차있다.
앞날에 대한 기대감은 지켜질 줄 알았던 수많은 약속들이 증폭시킨다.
특별하거나 특이한 경우를 제하면, 결혼은 교제를 전제로 성사된다.
교제 시절에는 상대의 전부를 보거나 알지 못한다. 적당히 감추고 교묘히 피하고 사소한 신호로 위장되는 그나 그녀의 ‘이상함’을 여간 알아채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상한 줄 모르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고 예식을 치른다.
당신이 실수했거나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가 아니니 안심해도 좋다.
여기서 다루려는 ‘이상함’은 사회 통념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짧게는 20년가량 각자의 인생 루트로 살아온 두 사람이 결혼으로 갑자기 공동체 생활로 바뀌면 크고 작은 갈등과 충돌은 생길 수밖에 없다.
상대에게 나의 방식이 우선이고 옳다는 믿음에서 강요와 설교가 오가면 상황은 복잡해지고 때로는 심각한 데미지를 남기기도 한다.
생활에서 불거진 불협화음은 유대감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그로 인해 점차 대화가 단절되면 돌이키기 어려운 지점에까지 다다라 있다. 어느새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각자 속으로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저 사람 이상해.’
그리고 이와 동시에 자아도취에 빠진다.
‘나나 되니까 저 사람이랑 사는 거야.’
바로 내가 인심이 후해서 인격 성장이 완성돼서 한 사람을 구제라도 해줄 깜냥이 된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이것으로 모든 게 용인되어 안정을 찾았다면 문제는 해결된 셈이다.
하지만 대다수 우리들은 갑갑해서 돌파구를 필요로 한다.
즉, 여전히 상대를 내 입맛대로 조리할 해법을 찾아 수소문한다.
지인에게 고민이랍시고 털어놓고, 타인의 객관적 의견을 들을 요량으로 인터넷을 뒤지거나 사연을 게재해서 댓글로 답을 얻으려고 시도한다.
과연 정답이 있던가?
상대의 이상함은 나밖에 모르는 것이 태반이다. 내 앞에서만 내게만 보이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 신호와 사인들을 알아채지 못하고 무심결에 넘겼을 공산이 크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흐른 후엔 웬 이상한 사람이 내 눈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혹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탈이나 결정으로 아연케 한다.
이 같은 인물로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달과 6펜스' 출처ㆍ민음사ㆍ 스트릭랜드는 아주 평범하고 지루할 만큼 성실한 일상을 살아가는 40대 가장이다.
직업은 주식 중개인으로 부족함 없이 가족들을 부양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오로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아내는 당황하고 당연히 충격받았다.
남편의 이유를 믿지 못했고 그를 ‘이상하다’고 표현하였다.
심지어 그녀는 평소 그림에 대한 열정은커녕 관심도 드러내지 않던 아주 멀쩡한 남편이 하루아침에 예술혼에 불타 중요한 것들(아내와 아이들, 안정적인 직업)을 내동댕이쳤다면 외도가 가장 유력한 이유라고 단정한다.
고작 그림 때문이라면 너무나 사소하고 어처구니없는 결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스트릭랜드의 돌발 결정뿐 아니라 이후 아내가 보인 대처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남편의 잠적(?)으로 전에 없던 능력을 발견하여 세상을 다르게 살아간다.
자발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다수가 꿈꾸는 자신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키를 잡은 것이다.
어쩌면 아내의 결심은 이와 달랐을 수도 있다. 남편의 고집을 꺾을 비책을 고심한다든지, 복종시키기 위해 갖은 함정을 팠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처음부터 아내가 쿨하게 남편이 선택한 길을 가도록 눈감아 준 것은 아니었다.
남편을 설득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땅히 이루어졌어야 할 대화가 오가지 않았고, 일방적 설득과 이해를 구하는 입장차에서 이 부부는 더욱 멀어졌을 것이다.
사실 이 부부의 예는 극단적이다. 더욱이 달과 6펜스가 부부 문제를 주제로 다룬 소설이 아님은 분명하다.
스트릭랜드가 거침없이 가족을 버리는 대목은 그의 예술에 대한 열의를 부각시키는 용도로밖에 쓰이지 못한다.
그럼에도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이 불러온 가정 파탄에서 부부의 예와 존중과 배려의 필요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이 ‘이상함’을 상대의 특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