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다. 심지어 그조차도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아주 작은 칸에 적어 누군가에게 확인받아야만 했기에 적었다. 나이 서른에 내 꿈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생각보다 긴 공백기를 가지게 되자 결국 나에 대해 지독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게 길게 쉬고 싶진 않았다. 그 질문이 앞에 놓아지기 전까진.
"왜 기획이 하고 싶어요?"그 말에 얼버무리듯 이러저러 문제 해결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 아니 그전에 기획 쪽에 몸을 담고 있어서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왜 하고 싶은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모르겠다. 글 쓰는 걸 좋아했고, 학생기자를 했고, 어쩌다 광고에 관심이 가다 보니 짧은 글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들어간 광고동아리에서 디자이너 품귀현상(?)이 일어나자 글을 쓰는 사람은 힘이 없구나 하며 그 꿈을 접었다. 생각해보니 어떻게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분명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내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은 '시인'이었다. 그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었나 생각해보면 그건 모르겠다. 매번 글짓기 대회에 적어내는 시들은 낙방이었으니까. 어린아이 치고 기질적인 고독과 쓸쓸함이 그런 꿈을 만들어냈나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땐 대부분 여자아이들은 피아노 학원과 미술학원을 다녔다. 물론 나도 그랬다. 피아노는 정말 재능이 없어 매번 선생님이 손등에 볼펜으로 그어댄 자국들이 가득했다. 미술학원도 별다를 게 없었다. 수채화 그림을 그릴 때 물 조절을 못해 종이가 한껏 일어난 적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어제는 정말 좋아하는 작가님의 소설을 이틀 만에 완독 했다. 매번 작가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 매번 그의 문장 앞에서는 더뎌진다. 같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런 단어들을 선택하고 잇는지 그의 문장들을 늘 탐이 난다. 가만히 앉아서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해본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꿈은 아무래도 '여성 서사를 다루는 소설가'인 것 같다. 소설은 한 글자도 적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어제부로 내 꿈을 그렇게 정했다.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이룬대도 못 이룬대도 마음속에 꿈 하나는 고이 접어 넣어두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오늘은.
며칠 전 읽었던 아래 강화길 작가님의 작가의 말에서도 용기를 얻었음을 밝히며.
쓰지도 못할 장면을 계속 쓴다. 온종일 30매를 쓰고 정신 차려보면 실제로는 겨우 다섯 줄을 썼다. 그래도 계속 쓴다. 어쨌든 이 과정을 겪어야 소설의 윤곽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때문이다.
-음복 작가의 말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