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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민정 Oct 23. 2021

돌멩이를 보고 뛰기를 멈췄습니다.

아무튼, 산책 - 돌멩이를 치우니 킥보드가 생각나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km만 뛰고 싶은 날이었다. '7시에 나가야지', '10분에는 나가자', '아휴 20분.. 아니다 30분' 결국 34분쯤에 신발을 신고 한강으로 걸어갔다. 20분도 안 되는 시간을 뛰기 위해서 20분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 수고를 기꺼이 하고 있는 나 정말 대단해. 나이키 런 클럽 어플을 켜곤 러닝 가이드 프로그램을 쭉 훑어본다. 5분 러닝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배우 최우식의 목소리다.


"얼마 전에 친구가 러닝을 하고 싶은데, 할 시간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하곤 또 다음 일을 하러 가야 한다고 하길래 물었죠. 언제 가야 하냐고. 30분 뒤라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까진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니까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5분이라도 뛰어라고 헀죠. 고작 5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친구는 그 5분을 달리고 아주 만족스러워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달리기 좋게 만드는 말이었다. 5분을 달려도 러너라는 말도 아주 상쾌했다. 거의 반쯤 달렸을 때, 길 한가운데 놓인 조그만 돌멩이가 보인다. 그 돌멩이를 넘어 한 발을 공중에 띄우다가 잠시 멈췄다. 그 돌멩이를 발로 옆의 잔디 쪽으로 치우고 오르막길을 다시 뛰었다. 하! 5분의 러닝이 끝났다.


(그 돌멩이 누가 그 가운데 놨을까 그것은 미스테리)

돌아오는 길에 잔디 속에 있는 그 돌멩이를 보니 문득 킥보드가 생각난다. 킥보드를 한 번도 탄 적은 없지만, 나와 킥보드는 인연이 깊다. 어떤 킥보드를 보면 나에게 꾸준히 그 사진을 보내주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킥보드냐하면 길을 막거나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것들이다. 아무렇게나 놓인 킥보드를 보면서 분노하는 내 모습을 자주 보던 회사 동료는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킥보드를 보면 꼭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내줬다. 전 회사는 아주 큰 길이 쭉 뻗어있는 테헤란로에 있었는데, 그곳은 아주 많은 킥보드가 있었다. 킥보드 사업이 성황이어서 그런지, 길이 잘 뻗어 있어서 킥보드 타기 최적의 공간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킥보드가 많은 만큼 그것들이 놓인 모양은 아주 제각기였다. 가지런히 줄을 지어있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좁은 길에 한가운데를 막고 있거나, 도로와 인도의 그 경계선을 살짝 걸쳐서 넘어져 있는 모양새도 있었다.


아무렇게나 놓인 킥보드가 그토록 싫어진 건 그 뉴스 때문이었다. '시각장애인에게 킥보드는 지뢰밭'이라는 그 뉴스.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누군가의 편리함을 위해 나온 새로운 것들이 기존의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 될 거라는 거. 그 뉴스를 본 뒤로는 넘어져있거나 길 한복판 중앙에 놓인 그것들을 보면 이상하게 저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인도마저 한껏 긴장하고 다녀야 하는 공간으로 변했다고 생각하니 그랬다.


'저 돌멩이 누가 못 보고 밟고 넘어지면 어쩌지?' 그 생각이 뜀박질을 멈추게 한 거다. 생각해보니 그땐 아무렇게 놓인 킥보드를 어디로 옮기거나 넘어진 킥보드를 세운 적은 없었다. 그냥 '누가 저렇게 놨을까?', '제대로 놓는 게 뭐가 힘들다고 저렇게 버리고 갔을까?'하는 식의 생각만 할 뿐이었다. 얼굴이 화끈해졌다. 누군가의 불편함을 이해한다고 감히 생각했던 그 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오래전에 들었던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말이 불쑥 그 부끄러움에 자리를 차지한다.


"혼자 생각하고 있으면 불만일 뿐이잖아요. 달라지는 게 없죠."


그렇다. 그저 불만만 많았던 사람. 생각만 하고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 오늘 치웠던 그 돌멩이가 아무래도 이제 자주 생각날 거 같다. 불만만 많은 사람이 될 건지, 행동해서 바꿀 건지는 오직 나한테 달렸다는 걸 깨닫게 해 준 그 돌멩이.  



여담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킥보드를 타신다면, 꼭 길 끝쪽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안전한 곳에 놓아주세요. 그리고 누군가가 아무렇게나 놓고 간 킥보드를 본다면 조금 안전한 곳으로 옮겨보는 수고도 같이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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