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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븐윤 Nov 01. 2020

1. 파피용 도사가 바꾼 운명 上

취업준비생의 직업 찾기



   서울의 압구정에는 용하다는 도사가 있다. 이름하야 삐삐 도사라나 뭐라나.



“황금개띠의 해라니! Golden dog!

엄마아빠오빠, 기운이 좋아.”

“우리 가족 올해는 잘 될 것 같아, 느낌이 좋아”



   잠실 롯데월드 타워에서 새해를 기리는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맞아 올해는 내 해야. 1994년생, 개띠의 해가 왔다고. 금까지 입힌 개라니! 오죽하겠어. 심지어 막학기(마지막 학기)를 앞둔 올해는 취업의 끝은 봐야 한다는 건데.. 좋다 좋다, 골든독 가자. 아자아자.


‘잘 되게 해 주세요. 제 마음 잘 아시죠? 아멘.’


   아멘만 붙이면 다 해결되는 줄 아는 나는 이러나저러나 ‘자매님’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악이 혹시 나는 아닐까 싶은 순간이 대부분이지만 친구들이 “혜븐, 너 교회 다녀?” 놀라 물어봐도 어쨌든 난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러니 나는 주말이 한참 바쁠 수밖에 없다. 토요일 밤엔 친구들과 영원히 놀랴, 집에 가서 먼지를 씻어내랴, 눈은 조금 붙여야겠고. 그러면 단 서너 시간 단잠만에 새로운 경계선이 생긴다. 비로소 일요일이다. (아니, 주일이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 토요일 밤이었지만 눈을 감고 뜬 행위 자체만으로도 주일을 얻은 나는 홀리한 양 매주 교회에 나가려고 한다.


‘모 회사에서 이런 인재상을 뽑던데,

이거 저 같아요. 저 맞죠? 뽑히게 해 주세요.

그럼 교회에 더 잘 나올게요. 아멘.’


   적어도 그렇게 주일을 아침 찬양과 해장 기도로 맞이 하는 나는 자매님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2018년은 남달랐다. 9월의 나는 힘이 쭉 빠진 채로 압구정 로데오역에 서있었다. 연초의 기운은 온데간데 없었다. 힘이 어느 정도까지 풀렸느냐 하면, 국내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일관된 NO 메일(일명, 퇴짜 메일)에 답답한 ‘자매님’이 삐삐 도사를 찾아간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도사님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물론 하늘에 계시다는 하나님보다야 도사님을 만나는 것은 수월했지만 그래도 21세기에 같은 서울 땅에 산다는 도사 양반이, '거참 빡빡하게 구네' 싶었다. 키보드를 치기만 하면 다 나온다는 우리나라의 초록색 검색창에서조차 그 흔한 위치 정보는 단연 없었고, 타고 타고 들어가야만 긴가민가한 그의 연락처가 있을 뿐이었다. 이내 겨우 전화를 걸면 그제야 한 여성분과의 전화 거래를 성사할 수 있었다.


“문자로 갈 계좌번호로 입금해주시면,

토요일 두 시에 뵙겠습니다.”


   계좌 번호가 찍힌 문자에는 위치에 관한 정보도 함께 전해 오는데, 카페 장소에 대한 설명은 참도 모호했던 걸로 기억된다. 빼곡한 건물들이 밀집한 압구정 로데오 지구. 이 동네는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앞이 되기도 또 뒤가 되기도 한다. 하물며 앞이 옆이 되기도 하는 막막한 건물들 사이에서 ‘어느 음식점 앞 건물의 몇 층으로 오시오.’는 내게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이정표 문자였다. 덕분에 나는 9월 1일의 흩뿌리는 마지막 여름 비를 맞으며 압구정 로데오 일대를 쑤시어야만 했다.


   뭐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였겠지만 마음 급한 소비자인 내 입장에서는 여간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취린이(취업준비 어린이)인 나로부터 9월 1일이라는 날짜는 상당히 큰 의미를 부여받은 날이었기 때문에 이 미로 찾기가 마냥 반가울 순 없었다. 이 날은 일명 ‘요이땅!’ - 마라톤 총을 쏘는 날이었다. 나는 취준 마라톤과 개강 마라톤을 동시 출전한 선수였다. 그러니 마음이 더 급급했을 수밖에 없다.



‘집 가서 자소서(자기소개서) 써야 되는데.’

‘인적성도 공부해야 하는데.

에라이, 이 건물은 어딨는 거야.’



   내가 지금 혹 숨바꼭질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보물찾기 놀이를 하는가 싶기도 한 채, 모쪼록 보물이기를 바라는 심마니의 마음으로 카페를 찾았다. 분위기상 카페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 같은 외관이었지만, 카페는 카페였으니까 말이다. 너무나도 연립주택인 건물에 들어서서는 우산을 접고, 어둡고 습하디 습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랐다.


   601호 입장과 동시에 짠 하고 나타날 줄만 알았던 삐삐 도사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비밀의 방처럼 보이는 또 다른 방 문이 뒤로 보였고 그 앞에는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건넨 할머니가 압구정 현대판 모습으로 서계셔 있을 뿐이었다. 마른 체형에 늘어진 똥머리를 한 그녀는 내게 사과 대신 값비싼 메뉴판을 건네었다. 물론 나는 그중에 가장 값이 싼 구천 원의 아이스티를 골랐고, 그렇게 ‘강매’라는 열쇠와 함께 그 비밀의 방 문을 열 수 있었다.







영화 <비포 선셋>

"제가 살아온 삶은 평범했지만 제 관점에서는 저의 삶도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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