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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븐윤 Jun 28. 2022

나는.. 해방했다

퇴사와 재입사. 적어도 내가 내린 결정

   추앙한다. 추앙해, 염미정 구씨. 각종 온라인 매체에 생소한 단어들이 줄기차게 떠도는 탓에 모국으로부터 10 시간 거리의 머나먼 카타르 도하에서도 나는 국내 트렌드 <나의 해방일지> 존재를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그리고 기어코 코로나 확진을 벗 삼아 <나의 해방일지> 를 정주행 하게 됐다.

 

아 위대하고 위대하신, 끝내주게 황홀하신 작가님은 현실 꼬집은 대사들로 가히 촌철연쇄살인마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염창희(이민기) 대사가 그토록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영혼이 먼저 알아. 그래서 그냥 몸이 가.'

내가 그러려고 그렇게 때려치우고 싶었던 거야. 근데 생각해보면 뭐 그렇게 미친 듯이 때려치우고 싶었던 것도 아냐. 그냥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아서 그만둔 건데 영혼이 안다는 게 이런 거다.



   2021년 4월

뭐라도 해야겠지 싶어 영어 학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재취준(취업 준비)을 시작했다.


봄이 왔는데 벚꽃이 피었는데, 옷이 가벼워졌는데 난 아직도 제자리였다. 아니, 실직했으니 제자리보다 못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아무리 찾아 헤매도 정답은 없었고 .. 나는 바짝 엎드렸다. 필사적으로 엎드려 신께 기도 했다. 제발 도와달라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그리고 정말 성령이라는 게 있기라도 한 건지 눈물이 하염없이 나는데 조승우의 성령이 오셨네가 들렸다. 참 직관적이라 웃긴데 성령이 왔댄다. 내심 마음이 놓였다.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는댔다.


   2021년 7월 17일

매미가 울 적엔 다행히 새로운 직업과 직장을 얻었다. 그새 한 달 차 직장인이 되었다. 회사의 규모는 나름 탄탄해 5호선 역세권 출퇴근이 가능한 곳이었고, 나는 아침에 눈을 떠서 부대끼러 갈 곳이 있다는 사실과 점심을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단 사실만으로도 즐거웠다. 아마 나는 그저 소속감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퇴근 시간 가까이에 전화 한 통이 왔다. 고모가 위급해 응급실에 실려 가고 있단다. 갑작스러운 암 4기 판정. 그렇게 고모의 임종을 맞이하게 됐다. 난 고모가 가는 순간까지도 신께 기도 했다. 자유케 해달라고. 고모를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 했다.


   2021년 12월 31일

카타르에 돌아가냐 마냐를 두고 한참 동안의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물론 나 혼자 내린 결정은 아니었고 우리집의 둥그렇고 좀 누런 대리석 소재의 사연 많은 식탁에 가족 식구가 함께 모여 앉아 합의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혼이 알았다.


"그래서 너 카타르는 어떻게 할 거야? 그냥 안 간다고만 하지 말고, 잘 생각해 봐야 돼." 오빠가 허를 찔렀다.

언제나 인생 3년 차 선배인 오빠는 28.9살의 인간을 턴다는 인턴 동생이 이성보다는 감정적으로 결정을 내릴까 걱정이 됐는지 현재 쥐고 있는 카드 패들을 신중하게 보라 조언했다.


"너도 내년이면 스물아홉인데 이게 너가 원하는 스물아홉의 모습인지는 고민해봐." 라며 덧붙였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한 500번 즈음의 고민을 반복한 끝에 결국 난 퇴사를 결심했다. 카타르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더이상 필요 없다고 자른 그곳에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나란 사람은 one of them 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꿈은 없었어도, 회사원이 꿈은 아니었다. 그런 내가 2호선/5호선 라인에서 무채색의 옷을 입고 출근하노라면 그 사실이 나를 정말 hopeless 하게 만들었다.


   평범하게 사는 것도 힘든 세상이라고들 한다. 그치만 나는 여전히 평범하게 살고 싶지는 않는 모양이다. 힘들어도, 제법 돌아가더라도 좀 더 스토리텔링 되는 구불구불한 삶을 살고 싶은 듯하다.


   그렇게 스물아홉. 나는 아홉수의 시작에 퇴사를 고했고 카타르에 돌아갈 티켓 날짜를 받았다. 막상 결정을 내리니 제법 후련했다. 이제는 내가 내린 선택을 후회 없는 결정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타인의 생각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해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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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포 선셋>

"제가 살아온 삶은 평범했지만 제 관점에서는 저의 삶도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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