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만드는 즐거운 일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 피아노를 오래 배웠어요. 콩쿨 대회에 나가기 위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의 3악장을 엄청 열심히 연습 했었는데 커가면서 피아노 배우는 것을 그만두게 되고 부모님께서 본가에 있는 피아노를 마침 팔아 버리신 거에요. 성인이 되어서는 피아노 칠 일이 거의 없었는데 몇 년전 디지털 피아노를 장만해 취미로 다시 뚱땅거리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으면 거의 30년이 지난 후에도 손가락은 이 곡을 기억하고 있더라구요. 그 이후 지금까지 퇴근한 후에나 쉬는 날, 한 곡 한 곡 늘려가며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어요. 지금 연습하고 있는건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 나온 쇼팽의 곡인데요, 어렵긴 하지만 하루하루 손가락이 길을 찾아 가고 있는 모양새가 뿌듯하여 틈날 때마다 연습하고 있어요. 피아노를 치고 있다보면 내가 머무르고 있던 세상의 북적임에서 벗어나 나 홀로 악보 위를 물장구치고 있는 것 같아요. 때로 조용하게 때로 과감하게, 위아래로 손을 움직이다 보면 음표와 동행하며 몰입의 시간을 갖게 되어요. 그럼 이전의 괴로움도 슬픔도 소리가 공기에 퍼지듯, 조금은 퍼져 나가는 것 같아 기분이 나아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