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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Aug 22. 2023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무겁지만 무겁지 않은 이별일지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지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68)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그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사후의 세계를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98)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 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싫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관계를 맺지 않았다. (138)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나는 불편한 모든 현실에서 몇발짝 물러나 노상 투덜댔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나 있었던 것인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했다.(148)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181)


부모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평생을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친구들의 인생보다도 그 분들의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어머니라는 이름이, 아버지라는 이름이 삶에 전부가 아님을 아는 데도, 무관심은 무심함으로 이어지고 때가 오면 후회가 된다. 


무거운 주제를 적당한 무게로 나눠 분산시킨 느낌이다. 읽는 이의 정치관에 따라 책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겠지만 부모와 이별하는 자식의 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재미있게 슬픈 책이다.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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