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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hye Jul 05. 2020

집밥이 바깥밥이 되기까지

나의 첫 비건 팝업식당 운영기(1)


20대를 통과하며 쌓아온 기술 중 가장 중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내게 밥을 잘 해 먹이는 능력'이다. 적은 예산으로 장기간 여행을 했던 이십 대 초반, 매일 지고 다니던 11kg의 배낭 속엔 늘 쌀, 소금과 후추, 마늘, 파스타면이 있었다. 도시를 이동할 때면 숙소는 꼭 공용 키친이 있는 곳으로 잡은 뒤, 짐을 풀고 제일 먼저 그 지역의 시장부터 갔다. 가지고 있는 기본 재료에 그 지역의 식재료를 더해 한 끼니를 해 먹고 나면 그제야 이 도시를 마음 놓고 돌아볼 준비가 되었다. '여기서 한 끼의 생활을 꾸려봤다'는 자신감을 1그람 정도 기르는 일종의 의식이었달까. 덕분에 그 기간 동안 나의 생존 요리 실력은 폭풍 성장했다. 

  

이 등껍질을 열면 마늘 파스타면 소금 후추 등등이 있지 


돌아온 뒤에도 나의 밥 짓기 여정은 이어졌다. 통장 잔고가 바닥인 채 귀국하기도 했고, 다시 아르바이트 생활자로 지내며 학교에 다녀야 했기 때문에 밖에서 밥을 사 먹는 건 내게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밖에서 사 먹을 돈으로 해 먹으면 몇 끼니야..'라는 계산법이 이미 머리에 박혀버려 밥에 돈을 쓰는데 아주 인색해졌고, 그래서 약속이 잡힐 땐 난처했다.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일찍 취업해 연차를 꽤 쌓았기 때문에 나와 씀씀이가 달랐다. 한 번 만나면 식비와 술값으로 몇만 원 나가는 건 쉬웠다. 그래서 2-4명 단위로 모일 땐 내가 먼저 약속 장소를 우리 집으로 제안했고, 좋다는 대답을 받으면 만원 언저리로 장을 보고 한두 시간을 요리해 친구들을 맞았다. 그렇게 해먹은 음식들 중 '오늘 좀 거했네' 싶은 것들은 사진을 찍어 SNS에 #ㅇㅇㅇ집밥 (ㅇㅇㅇ은 내 이름)이라고 해시태그를 달아 모았다. SNS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꽤나 그럴듯한 밥상 사진만 올렸다 보니 주변에서 나를 '집밥 잘해 먹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ㅇㅇㅇ집밥 초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겼다(나중엔 쿠폰을 발행해주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채식을 시작했다. 채식 지향을 시작하고는 돈 때문이 아니라 밖에서 먹을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서 밥을 지어먹었다. 꽤 오랜 기간 페스코 채식을 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선택권이 많았지만, 고기 없는 밥상에 대한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았던 때라서 초반엔 꽤나 헤맸다. 상상력이 빈약한 건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기에, 우리 집에 놀러온 친구들은 고기 없는 밥상을 보며 '오! 채식도 이런 게 가능하구나!'하고 신기해했다. 주변인들에게 채식 집밥을 먹이고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상의 큰 재미가 됐다.

  

나의 채식 집밥들



집밥에서 바깥밥으로


채식과 관련된 굿즈(채식유형 일러스트 에코백)를 판매하던 즈음, 누군가 그 가방을 구매하고 싶다는 DM을 보내왔다. 지인의 지인인 그는(이하 N) 홍대 근처에서 작은 브런치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 집 근처 가게이길래 가방을 직접 배달해줬다.

그리고 어찌어찌하다.. 그 날을 계기로 N과 급속도로 친해지게 됐다. 20대가 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가 요리를 배웠던 N은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비건 메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데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나와 친해진지 얼마 되지 않아 가게를 접은 그는, "다음 스텝을 준비하기 전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다"며, "지인의 와인가게에서 점심에 비건 식당 팝업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음.. 어.. 아무리 팝업이라도, 내가, 음식을 만들어서, 돈을 받고 판다고?" 


내가 우물쭈물하자 친구는 어깨를 으쓱하는 미국 요리사의 모습으로  "Why not? 언니 집밥 잘하잖아"라고 북돋았다(그 친구는 그때까지 내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ㅇㅇㅇ집밥 해시태그 연출이 나에 대한 일종의 이미지를 심어준 셈이다. SNS에서의 이미지란 무엇인가). 그렇지만.. 돈을 안 받고는 마음대로 만들어줄 수 있어도, 내 요리실력으로 장사를 해도 될까? 남 앞에 서는 순간에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때가 많은 나는, 한참을 주저하다 눈을 질끈 감고 "고!"를 외치며 날짜를 잡았다. 나에겐 믿음이 크게 안가지만, N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요리 잘하는 사람이니까, 얘를 믿고 해 보자!   


그리고 얼마 안 가, 폭풍 후회하는 시간을 맞았다. 집에서 맛있게 잘해 먹던 음식들이, 판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맛없게 느껴졌다. 준비 시간을 넉넉하게 잡지 않고 일정을 잡아 메뉴를 테스트해볼 시간이 부족했다. 퇴근 후 메뉴를 만들어 먹어보고(재료비를 엄청나게 쓰고), 빵빵해진 배를 부여잡고 잠든 뒤 출근하는 날이 이어졌다. 맛있단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양으로 승부하자'는 생각에 세트메뉴로 구성을 여섯 개나 넣었다. 친구가 만든 세트 A는 퓨전음식 스타일, 내가 만든 세트 B는 한식 스타일로 꾸려 안내하고, 또 자신감과의 대결에서 진 마음으로 가격도 싸게 정했다. 아주 비합리적인, 친구에게 미안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팝업 주말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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