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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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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Aug 18. 2023

이토록 나를 사랑하는 아이야

"내일 몇 시에 가? 나갈 때 2호한테 인사 좀 해줘."


며칠 연달아 잠든 아이들을 보며 귀가하고, 잠든 아이들을 보며 출근했더니, 역시 잠든 얼굴만 봤던 남편이 어젯밤 잠결에 말했다. 보통 7시 전에 집을 나서기 때문에 애들이 '엄마 갈 때 나 깨워줘'라고 하소연해도 그냥 재웠는데... 오늘 아침에는 괜스레 마음에 걸려 곤히 자는 아이를 톡톡 두드리며 나긋이 "엄마 갈게"라고 했다.


"으아앙...흑흑..."


이른 시각 탓에 눈도 못 뜨면서, 딸은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라 덤덤하면서도 예상보다 격한 울음소리에, 자꾸 길어지는 끝울음에 난감했다. 기차로 출근하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7시 전엔 집을 나서야 한다. 열대야로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은 아이는 여전히 눈도 못 뜨면서 내 팔을 붙잡았다. 쬐금 더 컸다고, 슬그머니 팔을 빼낼 수 있던 시절은 끝났다.



둘째는 눈물이 많다. 여리다고도, 감정이 풍부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가장 진솔한 마음을 드러낼 때는 아무래도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을 때다. 떼를 쓰는 편은 아니다.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모르지만  마냥 속을 끓일 수 없는 순간에 가장 익숙한 방식이 '아직은 눈물'인 아이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롤러장에 갔다. 바다가 늘 예상보다 큰 것처럼 우리의 몸은 늘 의지보다 굼뜨다.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무대에 발을 올리자마자 아이는 넘어졌다. 5000원을 내고 보조기구까지 빌려줬건만 또 넘어졌다. 급기야 엉덩방아를 찧은 뒤 발라당 자빠지기까지 했다.


살얼음판 걷듯 아스팔트바닥을 엉금엉금 지나 의자에 걸터앉은 얼굴이 제법 어둡다고 생각했던 순간, 눈이 마주쳤다.


"....."


아이는 눈물만 뚝뚝 흘리며 내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1시간쯤 지났을 무렵, 아이가 외쳤다.


"엄마, 이거 봐봐! 나 이제 잘하지?!"


흡사 네발동물처럼 기어 다니다시피 했던 수준에서 걸음마정도로 올라선 것이었지만, 얼굴엔 환희가 가득했다. 어느새 내게서 등만 보이며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다음에 또 오자"란 말도 모자라 "엄마 나 이거(롤러스케이트) 갖고 싶어!"란 요구가 나왔다. "나중에 다시 생각하자"란 주문으로 흥분을 가라앉혀야 할 시간이었다.



어떤 눈물은 슬픔 그 자체여서, 어떤 눈물은 온전한 사랑이라서 가끔 그 눈물들을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이토록 투명하게 온 마음을 보여주는 날들이 얼마나 남았을까도 헤아려본다.


때론 버겁다. 그러나 한 시절의 웃음만이 아니라 눈물마저 아름답다는 것을 벌겋게 변한 코끝과 물기 가득한 눈동자에서 알아채버렸다.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는 또 눈물을 떠올린다. 어떤 마음이든, 어떤 상황이든 이토록 나를 사랑하는 아이의 젖은 얼굴을 자꾸만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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