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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인 Dec 29. 2021

그러니까 뜨개는 인생이야. 인생도 그렇게 풀면 돼.

나는 올 한해 유난히 하늘을 좋아했다.

우리 엄마는 뜨개를 잘하고 좋아한다. 잘하니 좋아하고, 좋아하니 더 잘 해지는 선순환이랄까. 수십년 전 취미로 시작한 그녀의 뜨개 일상은 전시회를 열 정도로 전문성을 갖추게 되었고 많은 축하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작가가 되어 작업실에서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멋져 Mom)


반면에 나는 손으로 하는 것에는 재주가 없는 편이다. 요리는 좋아하지만, 공작과는 거리가 멀고 재능이 없다. 그리고 그런 일에 굳이 애쓰지도 않는 편이다. 못하는 것을 노력하기보다는 잘한다고, 잘하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사람이다 보니, 여태껏 몇 년 동안 뜨개를 배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년전 따스한 가을날 작가님의 첫 번째 전시회. ㅇㅓㄴㅇㅑㄱ
주렁 주렁 감나무까지


현재 자아는 스무 살 즈음에 만들어진 것 같은데, 그때부터 나는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올해의 폭풍우 속에서 굳이 내가 생각한 모든 것들이 맞지도, 그렇다고 틀리지도 않았다는 것을 하나둘씩 알게 되는 계기들이 많아졌다. 이런 마음으로 남들이 뭐라 하던 내가 원하는 걸 해보자는 게 많아지는 요즘엔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있다.

 

나는 내가 잘하는 사진 찍기만 해요..


그래서 며칠 전에는 계란 한 판 인생 처음으로 뜨개 작품에 도전했다. 나에겐 엄청난 도전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거 뭐 어떻게 하는 건지 '차라리 회사에서 야근하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생각보다 찌그러진 가방을 붙들고 끙끙대고 있었다.


그녀는 "이 코가 틀렸는데 푸르고 다시 할래 그냥 할래?"라고 물었다. '아 어쩔까..' 고민하다 그래도 나름 성격은 확실한 편이라 천천히 완성 잘 하자.라는 마음으로 단숨에 풀겠다고 답했다.


그래. 뜨개는 꼬였으면 바로 풀어야 돼.
풀까 말까 고민하고
계속 뜨더라도 결국에는 다시해야해.

나중에 고칠수도 있지만
맘에 걸리면 억지로 끌고 가지 마.
그러니까 뜨개는 인생이야.
인생도 그렇게 풀면 돼.



그녀의 촉은 엄청나다. 최근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어떤 말도 하지 않았으나, 소용돌이 같은 내 마음을 단숨에 읽은 듯 나지막이 뜨개를 풀며 위로한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쪼물딱 쪼물딱 조물 조물 만지다 보니 완벽하진 않지만 나만의 작품이 완성됐다. 예쁘지 않더라도 내가 만든 거라 더 애정이 깃든다.


나는 올 한해 유난히 하늘을 좋아했다.


늘 다 맞지 않아도 되고, 다 완벽하지 않아도 또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더라. 그래 엄마 말대로 뜨개엔 인생이 담겨있더라.


아무것도 없는 실타래를 이렇게 저렇게 묶고 푸르다 보면 나만의 작품이 완성된다. 이미 다 완성해 버린 다음에 눈에 띈 틀린 코는 약간의 묘수를 부려서 중간에 고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냥 두는 것 또한 핸드 메이드의 기쁨이라고 한다.


여기 한 코에는 나의 시간과 정성이, 저기 한 코에는 함께 자리하며 소소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과의 일상이 담겨있고 추억이 들려있다. 매력적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귀여운 친구랍니다.


완성한 가방을 소소히 들고 다니며 자연히 올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때의 나도 뜨개실처럼 휘리릭 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올해의 나는 어떤 작품으로 표현될까?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간다.


말의 무게와 글의 무게에 부담이 많은 편이라 개인적인 일이 많았던 시기이기에 생각 정리가 되지 않아서 글과도 멀리한 2021년이 이렇게 흐른다.


늘 같은 하늘과 바다 일텐데,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느낌적 느낌.


올해 나에게 꼬여있는 저 한 코가 이내 맘에 콕 하고 걸린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것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라 더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수가 없네. 노하우를 배웠으니, 다음 작품에서는 틀리지 말아야지.


제 것은 언제쯤 예뻐질 수 있을까요?


너무 완벽해 지려 하지 말자. 싫은 것보다는 좋은 것들을 더 찾자. 실수가 있다면 틀린 코 처럼 빠르게 풀어버리자. 어쩔 수 없다면 예뻐해 주는 마음을 갖자.


부디 건강하자 몸도 마음도 건강하자. 여유롭게 따뜻하게 다가올 2022년은 나만의 핸드메이드로 따스하게 만들자고 다짐해 본다.


글쓰고 다시 도전. 역시 두번째는 더 나아지는구나? 잘가. 안녕. 2021.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에게 따스함과 행복이 충만한 연말과 새해가 되길 희망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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