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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onica May 24. 2020

타고난 성향

소우주(小宇宙)

  “이 드라마는 맨날 이렇게 진도는 안 나가고 수다만 떤 다니까.” 

근 몇 년 만에 챙겨보게 된 한국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며 흉을 봤는데, 남편이 물었다.

  “드라마에서… 무슨 진도가 나가야 되는 거야? 그냥 저렇게 소소한 대화로 공감을 얻는 게 저 작가 전매특허야.”


  남편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러게, 드라마가 프로젝트도 아닌데, 무슨 진도를 빼냐 이 말이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반문이라 웃음이 나왔다. 드라마에서까지 “진도가 안 나간다”고 불평한 게 너무 ‘나’ 같았다. 목적 지향적이고, 성미 급한 내겐 이야기의 전개, 갈등의 해결과 관련된 장면이 아니면 모든 대사는 쓸모없는 시간 낭비인 셈이었다. 그래서 내가 평소에 드라마에 별 흥미를 못 느꼈구나 하는 깨달음도 덤으로 얻었다.



  요새 유행하는 MBTI 성향으로 치면, 나는 ESTJ와 ENTJ를 왔다 갔다 한다. 입사 당시 MBTI 테스트를 했을 때는 N과 S 1개 차이로 ESTJ가 나왔는데, 시간이 지나며 배포가 커져서인지 요새는 ENTJ도 곧잘 나온다. 보통 이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목적 지향적이고, 계획적이다. 대부분의 일을 ‘쓸모’에 따라 판단하는 냉정한 면모도 있고, 목적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가치 판단을 내린다. 여행에 갈 때면 코스마다 계획을 세우고, 생각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대안까지 마련해 둔다. 책상은 늘 정갈하게 정리돼 있고, 백화점에 가더라도 충동구매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감성보다는 이성, 직감보다는 논리가 더 중요하다. 


  이런 내가 평생을 부러워하고, 동경해온 게 ‘예술가’ 기질이다. 어떤 논리 없이도 직감적으로 의사결정 내릴 수 있는 성향, 목적 없는 감성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때로는 충동적으로 ‘이유 없이’ 시도하는 과감함까지. (평생에 내가 겪어 본 적 없는 것들이라 사실 묘사하기가 힘들다.) 학창 시절에는 내가 다이어리마저 너무 정직하게 ‘작성’하려고 해서, 아무 그림이나 막 그리고, 줄이 맞지 않아도 개의치 않으며 글을 쓰고, 스티커를 붙여 가며 화려하고 예쁘게 다이어리를 꾸미는 친구를 보며 부러워할 때도 있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이런 맥락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을 쓴다는혹은 스토리를 풀어간다는것은 상당히 저속의 기어로 이루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실감으로 말하자면 걷는 것보다는 약간 빠를지도 모르지만 자전거로 가는 것보다는 느리다, 라는 정도의 속도입니다. 의식의 기본적인 작동이 그런 느린 속도에 적합한 사람도 있고 적합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p.20)


  소설을 쓴다는 것은 아무튼 효율성이 떨어지는 작업입니다.  이토록 효율성이 떨어지는, 멀리 에둘러 가는 작업은 이것 말고는 달리 없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까지 듭니다. 맨 처음의 테마를 그대로 척척 명확히, 지적으로 언어화할 수 있다면 ‘이를 테면’이라는 치환 작업은 전혀 필요 없으니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p.23)


  나는 하루키가 말하는 “의식의 기본적인 작동이 느린 속도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으로, 아마 소설가가 됐다면 잘 안 풀렸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효율이 너무 중요해서 목적지에 돌아가는 게 잘 납득이 되지 않는 사람이고, 그래서 ‘예술가’ 기질은 가질 수 없어 아름다운 동경의 한 폭이었던 셈이다. 내가 평생 고민해왔던 문제를 정확히 지적한 구절이었는데, 다른 한편으론 적잖이 위로가 됐다. ‘그냥 타고난 성향이 달라서 못하는 것일 뿐 내가 못나서는 아니다’라는 인생의 대명제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줬고, 동경해 마지않는 ‘예술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또 그 나름대로 고충(“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해 줬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건 타고난 성향은 바꿀 수 없으니, 나를 긍정하고 내가 가진 강점을 기반으로 삼아 더 나은 내가 되면 될 일이라는 거다.


  보통 ESTJ를 관리자형, ENTJ를 지휘자형으로 표현하는데, 그래서인지 회사에 적응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고, ‘일’ 자체를 즐기며 살아온 것 같다. 마케터는 결국 자신의 아이디어를 셀링 하는 사람인데, 내가 팔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객관화하고, 납득시키기 위해 논리와 근거를 찾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젠 내가 나를 넘어서기 위해서 평생 동경해 마지않았던 ‘예술가’ 기질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드는 단계에 온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아직 구체적인 방법은 못 찾았다. 그저 소셜 미디어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내 주변의 예술가 기질을 가진 친구들에게 자주 질문하는 정도로 보완하려 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방법을 알게 되면 다시 한번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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