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ronica Jan 18. 2022

한 해의 스케치

2021년을 회고하며

  2022년이 된 지 벌써 스무 일이 다 되어간다. 작년 말에 퍼블리에서 <한 해를 정리하는 ‘기록 연말 정산’>이라는 글을 읽고, 사진을 활용한 신박한 회고 방법이 담겨 있기에 신년이 오기 전에 나도 꼭 해봐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이런저런 일에 치여서 이제야 정리를 해본다. 구정 오기 전에 작년을 마무리 짓는 데 의의를 두며 기록하는 2021년 최고의 콘텐츠들.


2021 올해의 영화: <  (Don’t Look Up, 2021)>



  사실  영화 때문에 회고를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넷플릭스에 업로드되기만을 기다렸던 영화. 아담 맥케이 감독의 전작 < 쇼트(The Big Short)> 워낙 좋아해서 (어쩌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일지도!) 기회가 되면 필모그래피를 챙겨 보려고 노력해 왔는데,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내내 설레는 영화를 만났다. 실력파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촌철살인 영화화한다면,  영화 같지 않을까. 뾰족하지만 촌스럽지 않게 트럼프 대통령 시대의 미국을 풍자했다.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보는 내게도 위화감이 없었다는  조금은 슬픈 일이지만, 어쨌든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갖되,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는 본인뿐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풍요롭게 한다.


2021년 올해의 다이닝: 모짜



  성북동에 있는 작은 이탈리안 다이닝. 처음 알게  것은 2017 즈음이었고,  방문  감격하고,  후로부터 1년에 두세 번씩은  방문해 왔다. 지금까지  번도 실망한 적이 없었는데, 새삼스럽게 오래 알고 지낸 맛집이 올해의 리스트로 올라온 것은 다름 아닌 임신 때문이었다. 임신 8  즈음부터 시작된 입덧이 10 차에 피크를 찍고 16주까지 지속이 되었고,  삼십  평생 건강 상태 때문에 고생해  적이 없어서 실제로 겪은 고통보다  배로 스트레스받고, 유난을 떨며 보냈다. 16  주말에 입덧이 거의 끝났다 생각하고 실로 오랜만에 모짜에 가서 적당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었다. 입덧이 완전히 사라지고  이후 33주쯤    방문했는데, 이게  , 같은 메뉴를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16 차에 먹었던  맛이 아니었다. 이렇게 맛있었는데 입덧 때문에 울렁거려서  정도에 만족했던 거였다니. 같이  남편에게 지난번엔 오빠 혼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거냐고, 그걸 혼자 즐기고 있었던 거냐며 원망을 했었다. 예전에도 한번 비슷한 주제로 글을 썼는데, (주말엔 '이미 좋은 맛집' 간다.) 평상시에 검증된 맛집을 많이 알아 두면, 인생에 간혹 찾아오는 위기 상황마다  위로가 되어 준다.


2021년 올해의 책: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지난해에는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예년에 비해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강릉으로 1 2 여행을 가서 마음이  넉넉해진 틈에 읽었고, 역시 좋았다. 지금까지 읽은 정세랑 작가의 글은 기본적으로 ‘(Cool) 베여 있다. 심각하지 않게, 그럴 수도 있다는 태도. 이런 자세가 작가의 글을 재기 발랄하게 보여주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에세이에서는 그런 마음가짐이  솔직하게 묻어나는데, 아무래도 작가의 기본 성품이 반영됐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심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재치와 유머가 삶의 근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좋다.


2021년 올해의 요리: 치즈 플레이트



  결혼한  해에는  달에 두세 번씩은 집으로 지인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했었는데, 2021년엔 역병도 장기화되고, 바쁘기도 해서 예전만큼은 못했다.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되면 그만큼 요리도 느는데, 그럴 기회가 없으니 요리 실력도 정체 중이다. 그럼에도  잘해봤다고 생각하는 요리가 있으니, 바로 ‘치즈 플레이트. 지난 4월쯤 남편의 사촌 식구들이 왔을 , 어렵지 않으면서 풍성해 보이는 메뉴를 찾다가 시도했었다. 치즈와 안주 거리들을 골라서 플레이트 위에 올려두는  전부지만, 식탁 위에 올려 두면 그렇게 근사할 수가 없다. 역병도 끝나고, 육아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다시 친구들을 초대해 즐겁고 따뜻한 시간을 많이 보내야지.


2021년 올해의 전시/공연: 조수미&이무지치 내한 공연



  예년에 비하면 지난  해는 집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신상의 이유로 그간 쌓았던 모든 루틴들이 거의  무너졌었는데, 그중 하나가 매달 전시를 보러 다니던 이다. 회사에는  달에  , 본부 직원 전체가 연차를 사용하는 리프레시 데이가 있는데, 그동안은 그날마다 전시를 정해 놓고 보러 다니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에는 프로젝트 때문에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수가 없었고, 하반기에는 임신 때문에 몸이 힘들어서  돌아다니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가는 연말이 아쉬워서 공연을 찾다가, 조수미&이무지치 내한 공연이 있다 해서 티켓 예매 오픈  예약을 했다. 크리스마스 다음  공연이었고, 역병에 방역 패스에도 불구하고 모든 자리가  찼었다. 이무지치가 비발디의 <사계> 연주하고,  곡이 끝날 때마다 조수미 선생님이 나와서  세곡 정도 부르는 형식이었는데, 이무지치가   ‘  소절을 연주할 때도, 조수미 선생님이 처음 등장할 때에도 감격에 젖어 울컥했었다.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 곡으로 ‘옛사랑 들려줬는데, 역시 거장의 진면목은 모든   내려놓고 편안하게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줄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황홀한 공연으로  해를 마무리할  있어 정말 좋았다.


큰일이 많아 평소답지 않게 보낸 한 해였다. 내겐 없을 줄 알았던 인생의 통과의례를 하나씩 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올해도 많은 고비들이 있겠지만, 찰나의 즐거움을 밑거름 삼아 잘 나아갈 일이다. 이제 2021년 회고를 끝냈으니, 2022년 플래너 정리를 시작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빅 플젝을 마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